세 번 쓰러지고 네 번 일어선 회복탄력성 이야기
"감사합니다, 지구대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도로에 고라니가 죽어 있어요."
"위치가 어디신가요?"
"653 지방도, 사찰 가는 방면으로요."
"출동하겠습니다."
경찰이 동물 사체를 치워야 한다고? 적어도 내가 본 경찰들의 모습 속에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경찰은 어디까지나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이 아니었던가!
나는 어릴 적부터 유난히 야생동물이 두려웠다. 길고양이, 새, 심지어 사마귀조차 내겐 가까이하기 힘든 존재였다. 시골 할아버지 댁에서 동생이 방아깨비를 잡아 방아 찧는 모습을 뽐낼 때도, 나는 멀찍이 서서 박수만 치며 "오, 잘 잡는다" 하고 뒷걸음치던 아이였다. 그런 내가 지금 경찰이 되어 맞닥뜨린 신고가 로드킬이라니. 아이러니하게도, 인생 최대의 위기가 이렇게 찾아올 줄은 몰랐다.
그래도 다행인건 우리 팀 에이스 정 경사와 함께 출동한다. 고라니가 제발 살아서 무사귀환 했길 바라며 순찰차에 올랐다. 운전석엔 이미 정 경사가 시동을 걸고 있었다. 그는 말없이 출발했다. 창밖은 눈부시지만 마음은 그 반대였다.
현장은 통행량이 거의 없는 한적한 시골 외곽도로. 흩어져 있는 자동차 범퍼 조각과 함께 고라니 한 마리가 엎어져 있다. 정 경사는 도로 양쪽을 살핀 뒤, 나더러 사체를 옮기라고 한다. 조끼 왼쪽 주머니에서 장갑 '노터치'를 꺼냈다. 나는 안 닿고 얘가 닿는다는 뜻.
사체에 가까이 다가갔다. 생전 처음 맡아보는 지독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폐비료 냄새보다 더 짙고, 어딘지 모르게 기분을 가라앉히는 냄새. 말로만 듣던 시체 냄새라는 게 이런 건가 싶다. 숨을 얕게 들이쉬며 한 걸음 더 다가갔다. 찢어진 배에서 나온 피와 내장은 아스팔트 위로 번져 검게 굳어 있었고, 비틀린 네 다리는 도로와 나란히 뻗어 있다.
그리고 반쯤 떠 있는 눈. 그 눈은 나를 노려보는 듯했고, 이상하게 죄인이 된 기분이 들었다. 고개를 돌려도 그 시선은 내 뒤통수를 꿰뚫어 오는 것만 같았다.
'고라니야 미안해. 다음 생엔 따뜻한 숲 속에서 마음껏 뛰어놀아.'
침을 삼키고 숨을 고른 뒤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 심장은 미친 듯 뛰고 등줄기는 식은땀으로 젖어 갔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앞다리와 뒷다리를 모아 단번에 들어 올리면 된다는 걸. 그러나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억지로 손을 가까이 가져가는 순간,
"으악!"
사체가 움찔거리는 것 같았다. 숨이 목에서 턱 걸리며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손이 떨리고 무릎은 힘이 풀려버렸다. 결국 다리 하나 잡아보지 못한 채 그대로 얼어붙었다. 서른셋, 늦깎이 순경. 로드킬 신고조차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있었다.
"괜찮아?"
정 경사가 다가왔다. 나는 끝내 입을 떼지 못했다. 그는 단번에 고라니의 앞다리를 움켜쥐고 갓길로 끌어낼 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손에 힘이 실리는 순간, 이미 찢겨 있던 몸통이 '뚝' 소리를 내며 갈라져 버렸다. 당기는 물체의 무게가 순식간에 절반으로 줄자, 고개를 돌린 채 힘을 주고 있던 정 경사가 몸의 중심을 잃고 몇 걸음 튕겨나갔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건 처참히 갈라져 버린 사체였다.
"으아아악!"
정 경사가 자지러지듯 소리를 질렀다. 놀란 나머지 가슴을 움켜쥔 그의 얼굴엔 당혹감이 역력했다. 사실 그는 사체 수습에는 영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신입 앞에서 '팀의 에이스'라는 체면이 있지 않은가. 그래서 태연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고라니의 다리를 덥석 잡아 끌었던 것이다.
그는 더 이상 고라니 근처로 다가가지 못했다.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던 끝에 마침내 입을 열었다.
"사... 삽으로 옮기자."
결국 우리는 깊은 고민 끝에, 순찰차 뒷좌석에 있던 삽으로 두 동강 난 사체를 아주 조심스럽게 갓길로 밀어냈다. 그리고 고라니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하고 현장을 마무리했다.
"처음엔 다 그래. 다음엔 네가 해야 돼."
그의 무덤덤한 위로 앞에서 나는 부끄러움을 느끼면서도 마음속으론 한가지 다짐을 했다.
'로드킬 신고는 정 경사와 출동하면 안 되겠다.'
그날 나는 우리 팀의 암묵적인 불문율 하나를 알게 되었다.
지구대로 복귀하여 신고일지를 작성했다.
"로드킬 출동. 차량 없음. 사체 갓길 이동. 지자체 인계"
이물질이 묻은 삽을 정리하러 야외휴게실로 향했다. 그때 조 경장이 믹스커피 두 잔을 들고 다가왔다. 그는 내게 한 잔을 건네며 슬쩍 웃었다.
"형, 로드킬 신고는 처음이죠? 고라니 명복은 빌어줬어요?"
매뉴얼에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다들 꺼져버린 작은 생명 앞에서, 저마다 마음속으로 기도를 올리는 듯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순간에도 숙연히 고개를 숙일 줄 아는 마음. 경찰이기 전에 사람이기에 가져야 할 태도였다.
그날 나는 깨달았다. 삶이란 크고 위대한 선택 속에서만 의미가 생기는 게 아니라는 걸. 누군가 눈여겨보지 않는 자리, 하찮아 보이는 일 앞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책임을 마주하고 있다는 걸. 비록 서툴고 부족했지만 그 순간 나는 경찰로서, 한 사람으로서 첫걸음을 내디뎠다. 누구의 삶이든 존중받아야 하고 작은 생명 하나에도 마음을 기울일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조금 더 나은 세상에 다가간다.
조 경장이 내 손에 들린 삽을 발견했다.
"근데... 그 삽은 뭐예요?"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곁눈질로 정 경사를 바라봤다.
"정 경사님, 설마 삽으로 현장 정리하신 거예요? 아, 진짜~~"
순식간에 정 경사와 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렇게 나의 첫 로드킬 신고는 막을 내렸다.
그런데 며칠 뒤 문득 이상한 점 하나를 발견했다. 염화칼슘을 뿌리는 겨울도 아닌데 순찰차에 왜 삽이 실려 있었을까?
그 사실은 한참이 지나서야 알게 됐다. 로드킬 신고가 들어올 때마다 잔뜩 긴장한 정 경사가 슬쩍 삽을 챙겨두는 모습을 팀원들에게 들키고야 말았다. 물론 그는 끝까지 "원래 있었던 겁니다!"라며 완강히 우겼지만.
그날 이후 우리 팀의 에이스 정 경사는 선배들 사이에서 '정 경삽'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