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난 그들
스무 살, 대학 신입생.
늘 입던 교복을 벗어던지고 처음 자취를 시작한 3월이었다.
처음 해보는 자취, 각 지역에서 모인 새내기 친구들, 그리고 생전 처음 듣는 전공 수업들.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로워서, 매일이 일종의 모험 같았다.
나는 가족과 살던 아파트를 떠나, 3~4평 남짓한 작은 고시원에 들어갔다.
책상 하나와 침대 하나가 겨우 들어가는 좁은 방.
그곳에서 학교까지는 걸어서 단 10분이면 도착했다.
고등학교 때 하루 200분씩 버스를 타고 오가던 생활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짧은 통학거리는 내게 자유 같았고, 그 자유는 곧 스무 살의 설렘과 맞닿아 있었다.
비록 내가 원하던 전공은 아니었고, 앞으로 무엇을 잘할 수 있을지조차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그때의 나는 평범한 새내기였다.
대면식, MT, 동아리 소개, 술자리…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웃고 떠들며 대학 생활에 적응해 나가고 있었다.
아직도 선명하다.
그날, 그 장소.
서울의 한 지하철역에서 나는 처음으로 ‘그들’을 만났다.
“백혈병으로 미국에 수술 가는 아이를 위해 편지를 써주세요.”
하드보드지를 든 남자 둘이 내 앞을 막아섰다.
키가 크고, 선명한 이목구비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표정이 무서운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낯선 남자 둘이 다가와 말을 건다는 상황 자체가 내겐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죄송합니다. 다음에 할게요.”
나는 급히 몸을 돌려 도망쳤다.
자취방에 필요한 물건을 사야 했으니까.
그러나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마음 한쪽이 이상하게 불편했다.
아마도 ‘백혈병’이라는 단어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단어는 내 안의 기억을 건드렸고, 그래서 더 도망치고 싶었다.
물건을 사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던 길.
나는 다시 그들을 마주쳤다.
이번에는 남자 둘이 아니라, 여자 두 명이었다.
“백혈병 환우에게 편지를 써주세요.”
이번에는 발걸음을 멈췄다.
아까 못 써준 것이 미안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고등학교 시절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했던 기억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때도 늘 백혈병 이야기가 따라다녔으니까.
나는 결국 펜을 들었다.
[잘 다녀오고, 꼭 건강해지길 바래.]
단 한 줄.
그런데 그 아래엔 이름, 전화번호, 거주지를 적는 칸이 있었다.
순간 망설였다.
내가 실제로 살고 있는 곳은 고시원이었고, 행정상의 주소와 달랐기 때문이다.
내가 머뭇거리자, 키가 큰 여성이 서둘러 말했다.
“괜찮아요. 아이가 답장을 쓸 수 있도록 받는 거예요.
유출 같은 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는 그대로 적었다.
이름: 가람나무
전화번호: 000-0000-0000
사는 곳: 경기도 부천시
그게, 그들과의 첫 만남이었다.
짧고 사소해 보이는 순간.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날이 내 인생의 20대를 송두리째 바꿔 놓은 출발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