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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프라이빗 뱅킹 고객은 얼마가 있어야 할까?

싱가포르 프라이빗 뱅킹의 현장

by Sing

프라이빗 뱅킹을 설명할 때마다 꼭 받는 질문이 있다.


“얼마나 있어야 프라이빗 뱅크를 이용할 수 있나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명확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은행이나 자산운용사마다 기준이 조금씩 다르지만, 기본적으로는 개인의 순자산 가치(Personal Net Wealth), 그중에서도 투자 가능한 유동자산(Investable Assets)을 중요하게 여긴다. 여기서 말하는 유동자산이란 현금, 예금, 채권, 주식, 투자펀드 등 금융기관에 맡겨서 운용할 수 있는 자산을 의미한다. 반대로 부동산, 사업체, 자동차, 미술품 같은 실물자산은 일반적으로 제외하며, 부채를 뺀 순수 투자 가능 자산만 계산한다.


프라이빗 뱅킹에서는 이 기준에 따라 크게 초고액 순자산 보유자(UHNWI, Ultra High Net Worth Individual)와 고액 순자산 보유자(HNWI, High Net Worth Individual)로 고객을 구분한다.


UHNWI와 HNWI


먼저 초고액순자산가(UHNWI)와 고액순자산가(HNWI)를 구분하는 정의를 살펴보자.


*초고액 순자산 보유자: UHNWI (Ultra High Net Worth Individual)

한국식으로 말하면 흔히 “슈퍼리치”에 해당하는 계층이다. 일반적으로 순투자 가능 자산이 3천만 달러(약 420억 원) 이상이면 UHNWI로 분류된다. 일부 글로벌 기관은 기준을 더 높게 잡아, 1억 달러(약 1천4백억 원 이상)부터 UHNWI로 보기도 한다. 이들은 프라이빗 뱅크에서도 최상위 고객층으로, 서비스 역시 철저히 맞춤형으로 제공된다.


*고액 순자산 보유자: HNWI (High Net Worth Individual)

UHNWI보다 한 단계 아래이지만 여전히 상당한 자산가들이다. 순투자 가능 자산이 백만~3천만 달러(약 14억~420억 원) 사이인 개인들을 HNWI라고 한다. 은행이나 자산운용사들이 가장 넓게 타깃으로 삼는 핵심 고객층이 바로 이 그룹이다. 이 가운데 5백만~3천만 달러 사이의 고객은 상위 고액 순자산 보유자 VHNW (Very-High-Net-Worth)로 구분하기도 한다.


그 밖의 구분

순투자 자산이 100만 달러(약 14억 원) 미만이면 일반적으로 프라이빗 뱅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이들은 다시 두 그룹으로 나뉜다.


*고소득 고객: Affluent Clients

고소득 중상위 자산가로, 순투자 가능 자산 규모가 25만~100만 달러 가량에 해당한다. 리테일과 프라이빗 뱅킹 사이의 준 프라이빗 고객층이다. 은행들은 종종 프리미어 뱅킹(Premier Banking)이나 프라이어리티 뱅킹(Priority Banking)같은 이름으로 별도 서비스를 운영한다.

*일반 고객: Retail Clients

일반적인 개인 고객군으로, 통상적으로 자산규모 25만 달러 이하인 고객을 칭한다. 일상적인 예금이나 대출, 카드 서비스 등이 주요 은행 서비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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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UHNWI와 HNWI는 도대체 몇명이나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Wealth-X의 자료를 살펴볼 수 있다. Wealth-X는 방대한 초고액 자산가(UHNWI)와 고액 자산가(HNWI) 데이터베이스를 보유한 글로벌 리서치 기관으로, 매년 모회사인 알트라타(Altrata)가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ALTRATA World Ultra Wealth Report를 발간하고 있다. 2024 리포트에 따르면, 3천만 달러 이상을 보유한 UHNWI는 2023년 기준으로 42만 여명에 이르며, 백만 달러 이상을 보유한 HNWI 인구는 3천810만 여명인 것으로 집계된다.


흥미로운 점은 UHNWI는 전체 HNWI 인구 중 1.1%의 작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나, 전체 HNWI의 자산 규모 151조 달러의 32%에 해당하는 49조 달러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단순히 인구 비중만 보면 매우 작은 집단이지만, 부의 집중도를 보면 글로벌 자산 시장의 핵심 주체임을 알 수 있다. 즉, 부유층 안에서도 다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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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UHNWI 집단을 더 세분화해서 보면 또다시 부의 편중을 살펴볼 수 있다.


*하위 UHNWI (3천만~1억 달러 보유자) : 전체 UHNWI의 약 80%를 차지.
*억만장자 Billionaire (10억 달러 이상 보유자) : 전체 UHNWI 중 0.75% (약 3천 명)에 불과하지만, UHNWI 전체 자산의 24%를 보유.


이를 HNWI 전체 인구 기준으로 다시 계산하면, 10억 달러 이상의 억만장자 (Billionaire)는 전체 HNWI의 불과 0.008%라는 극소수이지만, HNWI 전체 자산의 7.3%를 차지한다. 즉, 상위 중의 상위 계층에서도 자산 쏠림이 극명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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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살펴볼 흐름은, 지난 20여 년 동안 UHNWI 인구 비중은 전 세계 HNWI 중 항상 1% 내외였으며, 자산 비중은 32~35% 수준을 꾸준히 유지해 왔다는 점이다. 2023년에는 글로벌 주식시장, 특히 테크 주식의 급격한 성장 덕분에 UHNWI 인구가 전년 대비 7.6% 증가했다. 높은 인플레이션과 경기 둔화에도 불구하고, 금융자산 특히 주식 자산의 강세가 초부유층 자산 성장의 핵심 요인이 된 것이다.


“얼마나 있어야 프라이빗 뱅크를 이용할 수 있나요?”에 대한 구체적인 답을 해보자.


앞서 설명했듯이 이에 대한 답은 은행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최근 싱가포르 주요 프라이빗 뱅크들은 기준을 크게 높였다. 현재는 보통 최소 5백만 달러(약 70억 원) 이상을 유지해야 프라이빗 뱅킹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3백만 달러(약 42억 원), 또는 일부 은행은 1백만 달러(약 14억 원) 정도만 있어도 서비스를 제공했지만, 최근 들어 기준이 60% 이상 상향된 것이다.


만약 계좌 잔고가 은행의 최소 유지 기준(minimum balance) 이하로 떨어지면 계좌 유지 수수료를 부과하거나, 아예 서비스 제공이 중단되기도 한다. 이는 최근 은행 규제 강화, 계좌 관리 비용 증가, 급격히 늘어난 HNWI 인구라는 세 가지 현실을 반영한다. 즉, 은행들은 상대적으로 자산 규모가 작은 고객들을 점차 배제하고, 소수의 핵심 고객에게만 집중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조정한 것이다.


이탈리아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Vilfredo Pareto)가 처음 제시한 20/80 파레토 법칙이 말해주듯, 자산관리 업계에서도 상위 20%의 고객이 전체 수익의 대부분(80%)을 창출한다. 따라서 은행 입장에서는 고객 수를 늘리는 것보다 상위 소수 핵심 고객에 최적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물론 예외도 있다. 작은 부티크(boutique) 프라이빗 뱅크나 일부 은행은 상대적으로 낮은 계좌 유지 기준을 제공하거나 계좌 유지 수수료를 면제하거나 유연한 조건을 내세워 5백만 달러 (약 70억원 상당) 이하의 고객들을 흡수하려는 전략을 쓰기도 한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순자산이 백만~5백만 달러의 하위 HNWI 고객은 프라이빗 뱅크의 핵심 타깃이 아니다. 비율적으로 상당수의 고객들은 두세개 이상의 프라이빗 뱅크에 자산을 분산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프라이빗 뱅크에서 어떤 서비스를 기대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자산가들은 왜 굳이 일반 은행이 아닌 프라이빗 뱅크를 찾을까?

앞서 초기의 스위스 프라이빗 뱅킹에서 살펴 보았듯이, 신뢰를 기반으로 한 고객 맞춤형 서비스(tailor-made)가 가장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나의 신체 수치와 원하는 원단, 디자인을 반영한 나에게 꼭 맞는 양복을 맞추는 Tailor-made 라는 용어가 있듯이, 프라이빗 뱅킹을 맞춤형(tailor-made) 금융 서비스제공이라고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 은행 창구에서 판매되는 펀드, 예금, 보험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제공되는 ‘기성복’과 같다. 요즘은 저렴한 수수료의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서도 쉽게 투자할 수 있고, 금융 정보 역시 어디서나 접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상품이 내 자산 상황에 적합한가?”라는 문제는 여전히 복잡하다.


한 은행 계좌에 최소 70억원 이상 되는 자산을 예치하는 자산가들의 경우, 단순한 상품 소개를 넘어 전체 자산의 균형, 장기적인 자산 보존, 가족 내 자산 배분, 상속 설계, 심지어는 자선사업 계획까지 아우르는 종합적인 그림을 보길 원한다.


그래서 프라이빗 뱅킹의 핵심은 신뢰를 기반으로 한 장기적 관계다. 보통 한 번 고객이 되면 부모에서 자녀로 이어져 세대를 걸쳐 같은 뱅커와 관계를 맺는 경우도 흔하다. 실제로 싱가포르에서는 뱅커가 다른 은행으로 이직하면 고객이 그를 따라 움직이는 사례도 자주 볼 수 있다. 고객 입장에서 최소 수십억 원의 자산을 맡기는 일이니, 믿을 수 있는 한 명의 뱅커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신뢰와 분산의 역설


앞서 오프쇼어 뱅킹(Offshore banking)에 대해 설명했듯이, 해외 외국인 고객들이 싱가포르에 자산을 맡기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그렇기 때문에 믿고 맡길 수 있는 뱅커를 만나는 것은 고객들에게 은행에 거액의 자산을 맡길 때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역설적이지만, 바로 그 ‘신뢰’ 때문에 많은 고객들은 한 은행에 모든 자산을 몰아넣지 않는다. 뱅커도 은퇴할 수 있고, 은행도 위기를 맞거나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명의 메인 뱅커에게 큰 비중의 자산을 맡기되, 다른 은행에도 분산하여 관리하는 것이 일종의 위험 분산 전략으로 자리잡았다. 이는 신뢰를 쌓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고객은 다른 은행의 상품과 서비스 그리고 뱅커를 두고 보는 식인 셈이다.


이 점은 2023년 크레딧 스위스 사태가 보여준 대표적인 교훈이기도 하다. 세계 자산 규모 3~4위에 해당하던 거대 프라이빗 뱅크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사건은 업계 전체를 충격에 빠뜨렸다. 누구도 “그런 은행이 무너질 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이 사건 이후 많은 자산가들은 더욱 신중하게 은행을 선택하고, 자산을 여러 은행에 나누어 두는 전략략을 강화했다. 특히 아시아 고객들 사이에서는 기존에 미국이나 유럽 은행에 자산을 집중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싱가포르 은행에 대한 신뢰와 관심이 높아지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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