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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프라이빗 뱅커는 무슨 일을 할까?

싱가포르 프라이빗 뱅킹의 현장

by Sing

“어제 밤 테슬라 주가가 14% 급락했습니다. (2025년 6월 5일) 뉴스에서 보셔서 아시겠지만, 그 배경에는 일론머스크와 트럼프 대통령 사이의 공개적인 갈등이 있었습니다. 머스크가 트럼프의 예산안 지지를 비판하자, 트럼프는 공개적으로 머스크를 비난하며 정부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는 경고를 내비쳤습니다. 현재 테슬라 주가가 $284.70 인데, 어큐뮬레이터(accumulator)로 테슬라 매수하시면 어떨까요?"


2025년 6월 5일 테슬라 주가가 하루 사이에 14% 하락을 기록하였다. 테슬라 주식은 항상 투자자에게 관심있는 종목 중 하나이다. 전기차, 자율주행, 휴머노이드 로봇 등 미래 산업에 대한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다. 한국 투자자들에게도 테슬라 주식이 보유 미국 주식 가운데 단연 선두주자이다. 일론 머스크가 2024년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를 지지한 이후 주식 가격은 요동을 치며 4백 달러러 이상을 기록했다가 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트럼프와 머스크가 서로 저격하는 글을 올릴때마다 테슬라의 주가는 여지없이 흔들리고 있다. 이날 전기차 구매시 제공되던 최대 7천5백 달러 상당의 세금혜택이 제거될 수 있다는 트럼프의 위협에 테슬라 연간 이익 약 12억 달러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며 시장은 반응했다. 이것은 매수 기회인가 장기적인 테슬라의 위기 신호인가?


프라이빗 뱅커의 하루는 이처럼 시장 상황을 업데이트하고, 고객의 투자 성향과 자산 상황에 맞는 솔루션을 제시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단순히 “주식을 사라, 팔라”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직접 매수 대신 파생상품을 활용해 하방 위험을 방어(downside buffer)하는 방식도 제안한다. 즉, 같은 테슬라 주식에 투자하더라도 고객의 상황에 맞춰 위험을 최소화하며 접근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뱅커의 역할이다.그러나 이외에도 다양하고 많은 업무가 있다. 고객 관련 모든 일은 뱅커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보면 될 것이다.


RM (Relationship Manager)


고객의 계좌 관리를 담당하는 뱅커를 보통 RM(Relationship Manager)이라고 칭한다. 은행에 따라서는 Client Advisor라고 부르는 곳도 있다. RM의 역할은 고객과의 첫 만남에서 시작된다. 새로운 고객을 발굴하고, 그들의 필요와 프로필을 이해하며 계좌를 개설하는 전 과정을 전담한다. 계좌가 개설된 이후에는 투자 아이디어 제공, 주문 실행, 포트폴리오 관리, 그리고 은행 관련 모든 전반적인 사안에서 고객의 첫 번째 접점 역할을 맡는다. 다시 말해, 고객과 은행 사이의 모든 다리는 RM을 통해 연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CACS


대부분의 프라이빗 뱅킹 고객은 광고가 아닌 사람을 통한 소개로 은행에 들어온다. 기존 고객이 친구나 가족을 소개하거나, 비지니스 파트너를 통하거나 회사 기업금융을 이용하다가 프라이빗 뱅킹을 알게 되는 경우도 많다.


고액 자산가들은 쉽게 자산을 맡기지 않는다. 신뢰가 핵심이기 때문에, 누군가의 소개를 통해 단계를 건너뛰고 빠르게 신뢰를 형성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래서 RM들은 늘 새로운 네트워크를 구축하려 노력하고, 특히 싱가포르에 거주하지 않는 고객들을 위해 각국을 직접 방문하며 관계를 다진다.


싱가포르 프라이빗 뱅크 내부에는 보통 국가별 팀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싱가포르팀, 말레이시아팀, 인도네시아팀, 태국팀 등으로 구분된다. 이는 단순한 언어 차이 때문만이 아니라, 세법, 자본 유출입 규제, 상속 및 증여 규정, 투자 허용 범위 등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고객이 어떤 자산을 어떻게 싱가포르로 이동시킬 수 있는지 여부가 국가마다 다르며, 국경 간 규제도 끊임없이 변경된다. 따라서 고객이 속한 국가의 제도와 문화를 정확히 이해해야만 프라이빗 뱅킹 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할 수 있다.


예컨데 태국의 경우 최근 큰 세제 변화가 있었다. 오랫동안 태국 세법에는 해외에서 벌어들인 소득(foreign-sourced income)도 원칙적으로 과세 대상이라는 조항이 있었지만, 실무적으로는 송금 시기에 따라 과세 여부가 달라졌다. 예를 들어, 한 태국 기업가가 2022년에 홍콩 법인으로부터 배당을 받았다고 가정해보자. 그는 같은 해에 태국으로 배당소득을 송금하면 과세 대상이었지만, 이듬해 2023년에 송금하면 과세 대상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많은 태국 자산가들은 송금 시점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해외 소득에 대한 과세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24년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태국 재무부는 이런 송금 시점 조절을 차단하기 위해, 해외 소득을 같은 해뿐만 아니라 이후에 송금하더라도 모두 과세하는 새로운 규정을 발표했다. 그 결과 태국 고액 자산가들은 해외 자산 운용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다만 이 조치에 대한 예외 조항도 검토 중인데, 2025년에는 해외소득을 획득한 같은 해 또는 다음 해에 송금 시 세금을 면제해주는 2년의 유예기간 도입이 논의되고 있다.


실제로 한 태국 고객은 기존에 싱가포르 계좌를 활용해 투자수익을 관리하며, 필요할 때만 태국으로 송금하는 방식을 써왔다. 하지만 새로운 규제 시행 이후, 수익을 싱가포르에 영구적으로 두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은행 입장에서도 이런 규제 변화를 정확히 이해하고, 고객이 합법적으로 자산을 구조화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 필수적인 역할이 되었다. 싱가포르 은행은 종종 현지 세무 법률 파트너사와 함께 고객 세미나를 열고 주요 규제나 세법 변화에 대한 교육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국가별로 다른 규제 및 언어, 문화를 깊이 이해해야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각 팀은 정기적으로 해당국을 방문해 크고 작은 세미나를 열고 기존 고객 및 잠재 고객을 초대한다. 디지털 시대라 전화와 비디오 콜이 항상 가능하지만, 여전히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는 효과는 크다. 실제로 함께 식사하거나 커피를 나누며 나누는 대화가 신뢰를 쌓는 데 훨씬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이것 역시 문화적인 측면을 잘 이해해야 하는 이유이다. 인도네시아 고객은 대체로 관계 지향적이며, 직접 만나 식사나 골프를 함께하면서 신뢰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 반면 중국계 고객은 일반적으로 빠른 의사결정을 중시하고 경쟁적으로 상품 조건을 비교하는 경향이 있다.


고객 온보딩(Onboarding)


최근 싱가포르 프라이빗 뱅킹 업계의 가장 큰 화두는 고객 온보딩(Onboarding)이다. 새로운 고객에게 계좌를 여는 일이 그 어느 때보다 까다로워졌기 때문이다.


2023년 8월, 싱가포르 사회를 뒤흔든 대형 사건이 있었다. 무려 24억 싱가포르 달러(한화 약 2조 4천억 원) 규모의 자금 세탁 스캔들이 터진 것이다. 싱가포르 경찰은 푸젠(福建)성 출신 중국계 용의자 10명을 체포했는데, 그들의 집에서는 164개의 고급 시계, 68개의 금괴, 수백 점의 보석류와 더불어 수천만 달러 상당의 암호화폐가 발견되었다. 뿐만 아니라 110여 채가 넘는 부동산, 62대의 슈퍼카, 싱가포르 내 여러 은행 계좌에 분산된 11억 싱가포르 달러 예금까지 드러났다. 싱가포르 역사상 최대 규모의 돈세탁 사건이었다.


중국계 용의자 10명은 다양한 나라의 이중 또는 다중 국적(캄보디아, 키프로스, 터키, 바누아투 등)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들은 스캠이나 불법 온라인 도박 등의 범죄 자금을 돈세탁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2024년 4월 첫 판결을 받은 슈 웬치앙(Su Wenqiang)은 13개월 징역형에 소유한 590만 달러 규모의 자산을 모두 압수당하였다. 이를 시작으로 용의자 모두 징역형과 대부분의 불법 자산은 압수되었다.


이 사건은 국제 금융 허브로서 싱가포르의 신뢰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더욱 큰 충격은, 이 범죄자들이 무려 16개 금융기관에 예치한 예금과 투자금액이 3억7천만 달러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들은 단순히 예금을 받아준 것만이 아니라, 그들의 회사 설립과 부동산 취득 과정에도 모기지 대출을 지원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싱가포르 금융감독원(MAS)은 은행권 전반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조사에 착수했으며 전례없는 개혁과 강경한 대응책을 모색했다.


이 스캔들 이후 은행들은 고객 온보딩 절차를 강화할 수밖에 없었다. 과거에는 신규 고객의 직업, 소득 수준, 배당 내역, 그리고 언론에 부정적 뉴스가 있는지 정도만 확인하면 계좌 개설이 가능했다. 이 과정도 보통 1~3개월이 걸렸지만, 이제는 훨씬 더 많은 증빙 자료를 요구한다.


사업체를 운영하는 고객이라면 감사받은 재무제표와 주주명세서를 제출해야 하고, 월급이나 배당 소득 역시 증빙해야 한다. 더욱 어려운 점은 과거 이력까지 소급해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객이 현재 어떤 사업을 하고 있는지뿐만 아니라, 대학 졸업 이후 어떤 직업을 거쳐왔는지, 그 과정에서 자산을 어떻게 축적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은행은 이 자료를 토대로 자금 출처(Source of Funds)와 자산 원천(Source of Wealth)을 맞춰보며 고객의 ‘합리적 총자산 규모’를 추정한다. 어떤 잠재 고객들은 이 과정에서 많은 정보를 밝히는 것을 꺼린다. 아니 대다수의 고객들은 이 과정을 불편해한다.


은행 내 심사팀은 계좌개설을 검토 및 승인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되었다. 이 스캔들 이후, 계좌 개설이 6-12개월까지 걸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은행들 내부적으로 고객의 백그라운드를 체크하기 위한 많은 추가 자료를 검토할 인력과 시스템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싱가포르 금융감독원(MAS)에서 요구하는 새로운 기준을 맞추기 위해 은행과 고객 모두 진통을 겪었다.


“개인 계좌를 여는것 뿐인데 왜 회사 재무재표를 달라고 하나요? 법인 계좌를 개설하는게 아니잖아요!”


“이미 사업체를 정리한지가 5년이 넘었는데 지난 자료를 달라고 합니까? 은행에서 내 말을 못믿는건가요?”


“이혼하고 전남편에게 받은 자산이데, 예전에 이런 내용 확인하지 않고 은행 계좌를 열었는데, 왜 물어보나요?”


싱가포르에 이미 계좌를 열어본 경험이 있는 고객일수록, 바뀐 기준을 이해하지 못하고 은행이 고객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느끼기도 한다. 뱅커 입장에서는 이런 불만을 받아내며, 고객이 불쾌감을 느끼지 않도록 대화를 이끌어야 한다. 대화 가운데 자연스럽게 고객의 인생 경로와 자산 형성 과정을 파악하고 정리해내는 것이 뱅커의 중요한 기술이 되었다.


현재는 대부분의 은행들이 개선된 심사 프로세스를 정립했고, 뱅커들 역시 교육을 통해 새로운 기준에 익숙해졌다. 이제 다시 평균 1~3개월 내 신규 계좌 개설이 가능해졌지만, 고객의 배경이나 서류 준비 상황에 따라 거절되는 경우도 여전히 적지 않다.


싱가포르의 프라이빗 뱅킹은 이처럼 한 번 문을 열기가 어렵다. 하지만 일단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우고 나면, 고객들은 다양한 투자 기회와 안정적인 금융 환경을 누릴 수 있다. 바로 이 점이 까다로운 온보딩 과정을 견뎌낼 만한 이유가 되는 것이다.


고객 투자 성향 파악


계좌를 열었다고 해서 곧바로 투자가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그 다음 단계에서 뱅커는 반드시 고객의 투자 성향과 니즈를 꼼꼼히 파악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위험 선호도 설문지’를 작성하는 수준에서 끝나지 않는다. 고객이 어느 정도의 위험을 감내할 수 있는지, 얼마만큼의 유동성을 필요로 하는지, 장기적으로 어떤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숫자로만 환원될 수 없는 복합적인 과정이다.


예를 들어, 두 명의 고객이 같은 ‘중간 정도의 위험 선호’를 보였다고 하자. 그러나 한 고객은 안정적인 월급과 보험, 충분한 비상자금을 이미 갖춘 상태일 수 있고, 다른 고객은 기업을 운영하며 매출 변동성에 크게 노출된 상태일 수 있다. 같은 위험 선호를 보인다고 해서 동일한 포트폴리오를 제공할 수는 없는 것이다.


뱅커는 이처럼 정량적 지표와 더불어 대화를 통해 드러나는 정성적 맥락을 읽어내야 한다. 고객이 재정적으로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앞으로 자금이 필요한 계획은 없는지, 혹은 은퇴와 상속이라는 인생 단계적 과제를 앞두고 있는지 등을 이해해야 한다. 때로는 숫자보다 고객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 “아이가 내년에 영국 유학을 가네요”라는 말이 투자 전략의 흐름을 바꾸기도 한다.


실무적으로는 ‘고객 프로파일링 및 고객 필요 분석‘ (Profiling Clients and Performing Client Needs Analysis)이라는 프레임워크가 자주 활용된다. 이는 고객을 이해하기 위한 다섯 가지 요소로 정리된다.


1) Financial situation (재정 상황)
– 현재 소득, 자산과 부채 구조, 보험 보유 여부, 은퇴 계획

2) Non-financial situation (비재정적 상황)
– 가족 구성, 교육 계획, 건강 상태, 은퇴 이후의 생활 구상 등

3) Risk profile (위험 성향)
– 고객이 감수할 수 있는 손실 수준, 수익 기대치 분석.

4) Knowledge and experience (금융 지식과 경험)
– 고객의 과거 투자 경험, 금융 상품 이해 수준

5) Service preferences and expectations (서비스 선호와 기대치)
– 의사사소통 방식(예: 직접 대면, 이메일, 메신저), 보고서 주기, 은행 서비스 기대 수준


이 다섯 가지 요소를 바탕으로 고객의 상황을 총체적으로 분석해야만, 진정으로 ‘맞춤형’ 포트폴리오가 가능하다. 뱅커의 역할은 단순한 상품 판매자가 아니라, 넘쳐나는 투자 기회와 급변하는 시장 환경 속에서 고객에게 가장 적합한 해답을 설계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프라이빗 뱅킹은 종종 ‘종합 예술(art of orchestration)’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뱅커는 고객의 숫자 너머 삶의 맥락을 읽어내고, 재정적 안정과 미래의 꿈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지휘자와도 같다.


Siam Legagl International, Tax Exempt Once More: Rules On Taxation Of Foreign Income Into Thailand Revised Again, https://www.siam-legal.com/thailand-law/tax-exempt-once-more-rules-on-taxation-of-foreign-income-into-thailand-revised-again/?utm_source=chatgp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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