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11월에 어느 날, 그 사람은 아버지가 임종을 앞두고 있다는 말과 함께 밀린 연차를 냈다. 아버지는 간암 말기로 너무 늦게 발견한 상태에서 다른 부위로 전이되어 꽤 오랜 기간 동안 화학요법으로 버텨왔다고 한다. 화학요법은 전신적으로 암세포를 억제하는 치료라 임종을 실상 늦추는 것 일 뿐 완치를 위한 치료는 아니라고 했다. 시간이 지나며 의연하게 치료를 받았던 아버지도 아버지의 치료를 받겠다던 굳건한 의지도 점차 약해져 갔고 그러다 호스피스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때 처음으로 호스피스에 간다는 건 어떤 걸 의미하는지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아버지가 임종을 앞두고 있다니 그 사람은 얼마나 착잡하고 무겁고 힘들지 걱정이 되었다. 덩달아서 무거워지는 마음에 연락을 먼저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음에 마음이 아팠다.
회사는 그 사람과의 만남을 허락해 주는 유일한 공간으로 사내에서는 그 사람을 자유롭게 볼 수 있었으며 일을 빌미로 그 사람과 일 외 사적인 말과 감정들을 공유할 수 있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면 위안을 받을 수 있었고 특별한 배경지식이 없어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에도 전전긍긍해할 필요 없이 그 사람이 가르쳐주는 대로 꼭두각시처럼 지껄여 하나하나 해결해 나갔기에 사내에서 나는 바보 소리는커녕 어떻게 그렇게 잘하냐며 대단한 사람취급을 받았다. 첫 회사에서 그 사람은 그런 나를 다른 회사 동료들과 함께 대단하게 보았다. 나 역시 모든 업무적인 역량을 내게 돌려주는 그 사람을 대단하게 보았고, 서로를 그렇게 필요로 하며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했다. 그렇기에 그 사람의 부재는 나에게 더 큰 고립감을 주었다. 모니터 앞에 앉아, 스크롤바를 오르내리며 쌓인 메일의 숫자를 무의미하게 세기 시작했다. '비교우위.' '충족감.' 태훈이와의 대화와 함께 곧 있으면 받게 될 부고장을 떠올렸다. 당시 나는 장례식이라고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기에 드라마에서나 보았던 장례식장을 상상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아버지의 죽음이 그 사람에게는 너무나 큰 여파로 어떤 행색으로 조문객을 맞이할지. 그럼에도 그 사람 옆을 지키며 장례를 잘 치를 수 있도록 발인이 되는 날까지 의연하게 조문객을 대접하는 그 사람의 아내가 떠오르며 문득 한 사람이 크게 무너지는 순간을 겪으며 그로부터 기약 없는 회복에 이르기까지 다른 한 사람이 묵묵히 그 자리를 대신하는 과정이 내가 범접할 수 없는 그 사람과 아내의 영역이었으며 집과 그 사람을 더욱 애틋하게 만드는 동시에 그 사람으로부터 나를 더욱 멀어지게 만들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에게 그렇게 나의 존재가 점차 희미해진다면 나의 존재는 어디서 확인받을 수 있을까?
나는 태훈이에게 퇴근 후 집에서 같이 술을 마시자고 연락했다. 태훈이는 마다하지 않았고 그렇게 우리는 하룻밤을 같이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