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팥을 좋아하지 않는다. 팥 앙금이 든 빵도, 팥빙수의 팥도 먹지 않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붕어빵은 좋아한다. 그것도 아주.
"팥을 싫어하는데 붕어빵은 왜 좋아해?"
"그건 붕어빵이잖아."
선문답 같은 아내의 답변에 할 말을 잊은 순간, 아내는 그런 것도 모르냐는 듯이 나를 쳐다본다.
아내를 위한 저녁 산책길, 소화를 시키러 나갔다가 그렇게 붕어빵 집을 마주쳤다. 고소한 꼬리, 뜨거운 팥소. 입안을 데어가며 호호 불어 먹었다. 붕어빵을 다 먹고 나서도 산책을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조금 더 멀리 걷기로 했다. 낯선 동네의 풍경이 어릴 적 탐험가가 된 듯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그렇게 걷다 한 프랜차이즈 치킨집 앞에 멈췄다.
"오빠, 저 집 좀 신기하지 않아요?"
호프집처럼 요란하게 꾸민 외관. 그보다 더 신기한 것은, 치킨집 앞에 떡 하니 자리 잡은 붕어빵 포장마차였다.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여성이 붕어빵을 굽고 있었다.
"젊은 나이에 대단하네요."
내가 눈치 없이 말을 걸자 아내가 옆구리를 쿡 찔렀다. '꼰대'처럼 보일까 봐였으리라. 다행히 아르바이트생은 웃으며 대답했다. "아, 저는 아르바이트생이에요. 치킨집이랑 사장님 같아요."
그때였다. 붕어빵 기계 옆에 붙은 계좌번호 옆에 익숙한 이름 석 자가 눈에 들어왔다.
박. 상. 훈.
내가 부동산에 눈을 뜬 건 2017년, 지금의 아내와 결혼을 생각할 무렵이었다. 관련 법령을 혼자 공부하는 것은 자신 있었지만, 실제 시장 현황을 확인하고 조사하는 데는 명백한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부동산 투자자들과 교류하기 위해 부동산 카페에서 운영하는 오프라인 독서 모임에 나갔고, 거기서 상훈이 형을 처음 만났다.
대기업 직원, 교사 같은 멀끔한 사람들 사이에서, 휴대폰 가게를 하던 상훈이 형은 이질적이었다. 건달 같은 외모와 거친 말투. 사람들은 그를 '격이 없다'라고 수군댔지만, 나는 그 격이 없어서 한계도 없는 형이 좋았다.
상훈이 형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특히 상훈이 형의 말투를 싫어했었다. 툭툭 내뱉는 말들은 항상 본론으로 시작해서 끝은 결과를 향해있었다. 그래서 다분히 공격적으로 들렸다.
그렇다고 상훈이 형이 사람들과 관계 맺는데 어려움이 있지도 않았다. 모임에 나가면 관심 있는 사람에게 항상 먼저 다가가 인사하고 교류했다. 모르는 것이 생기면 즉시 제일 잘 알고 있을 것 같은 사람에게 물어보고 답을 구했다. 굳이 자신이 전부 다 잘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잘하는 것과 도움이 필요한 것을 구분할 줄 아는 똑똑한 사람이었다.
상훈이 형과는 달리 나는 내가 제일 잘 아는 사람이어야 했다. 그래서 '공부'했다. 내가 확인하지 않은 사실에 대한 불안함이 있었기에 내 눈으로 반드시 보고, 내 머리로 이해해야 성에 찼다. 그렇게 부동산 시장을 조사하고 분석했다.
나와는 달리 상훈이 형의 생각의 끝은 '수익'이라는 '결과'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실행'이 우선이었다. 형은 부족한 경험과 전문성을 보완하기 위해 다른 투자자들과 관계를 맺고, 그들과 함께 움직이며 '연대'했다. 그렇게 빠르게 부동산 자산을 늘려갔다.
그렇다고 나와 상훈이 형이 시장을 보는 눈이 다르지는 않았다. 오히려 상황을 위기를 인식하는 것은 놀랄 만큼 비슷했다. 한때 모임에서 비상장 주식 사기 논란이 일었을 때, 나와 그는 유이하게 반대편에 섰다. 나는 관련 법령을 조사해 위법성을 '분석'했다. 상훈이 형은 본능적으로 '사기'라 판단하고, 주변 사람을 통해 사례를 '수집'했다. 판단 방식은 달랐지만, 결과는 같았다.
그렇기에 형은 내게 몇 번이나 부동산 투자를 권유했다. "그만 공부하고, 이제는 투자해. 내가 도와줄게." 책 한 권 읽고, 경매를 시작한 상훈이 형이었다. 그때 이미 3채를 낙찰받았었다. 하지만 나는 수중에 돈이 없다는 핑계로 투자를 미뤄 왔었다. 사실은 대출까지 받아 투자하는 리스크가 두려웠던 것을 돈이 없다거나 좀 더 검토가 필요하다거나 하며 투자를 계속 미뤘었기 때문에 상훈이 형 입장에서는 내가 답답해 보였던 것이다. 대신 안정적인 월급과 조직의 울타리를 택했다.
부동산은 돈으로 사는 게 아니라 '용기'로 사는 것이었고, 난 그 '용기'가 없었기에 상훈이 형과는 자연스레 멀어졌다.
치킨 집 앞에서 내가 알던 상훈이 형일 것 같은 생각에 휴대폰을 꺼내어 상훈이 형 사진을 찾아서 혹시나 하는 생각에 아르바이트생에게 보여줬다.
"어! 우리 사장님 맞아요. 지금 안에 계세요." 라며 치킨집 안을 가리켰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섰다. 마스크를 쓴 남자가 다가왔다. 그가 마스크를 벗었다. 상훈이 형이었다.
나는 순간 형을 알아보지 못했다.
바버숍에서 정돈된 머리. 수분이 가득한 피부. 몸에 딱 맞는 세련된 옷. 과거의 거친 흔적은 지워져 있었다. 형은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길에서 마주쳤다면 형을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와... 형, 정말 오랜만입니다."
"정말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어색하지만 반가운 인사가 오갔다. 우리는 잠깐 가게 한쪽에 앉아, 몇 년간의 시간을 건너뛰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형은 역시나 거침없었다. 코로나는 위기이자 기회였다. 경매로 잡은 부동산이 유동성 장세에서 폭발했다. 그래서 자신이 세 들어 장사하던 건물을 인수했다. 금리가 오르자, 건물을 파는 대신 현금 흐름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새로 입주를 시작한 아파트 단지를 모색해 치킨집을 차렸다. 치킨 집 앞의 붕어빵과 떡볶이는 그가 고안한 '미끼 상품'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다시 건물주에서 다시 사장으로 성장해 갔다.
"이번 여름철에는 월 매출이 1억을 넘었어. 그런데, 이거 휴대폰 가게와는 다르게 너무 체력적으로 힘드네."
손님을 더 잘 접대하기 위해 건달 같던 외모와 말투까지 바꿨다는 상훈이 형 앞에서 나는 놀랄 수 조차 없었다.
형과의 즐겁고 놀란 만남을 뒤로하고, 아내와 함께 다시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원한 공기가 코를 통해 가슴으로 들어오자 정신이 맑아지고 기분도 더 좋아졌다. 머리는 시원했고, 가슴은 따뜻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음표가 되어 가슴 뛰는 산책이 다시 시작되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혼자 걸을 때 처럼,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마치 옆에 아내가 없는 것처럼.
뜬금없지만, 생각해 보면 아내가 싫어하는 것은 팥이 아니라 팥의 식감이나 맛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팥이 붕어빵이 되면 팥에 대한 거부감 없이 붕어빵을 좋아할 수 있는 것 아닐까?
확대해서 생각해 보면 많은 직장인들이 직장생활이 싫어서 경제적 자유를 위한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지만, 정작 싫어하는 것은 직장생활과 일이 아닐 수 있다는 것. 싫은 사람에게 좋은 말을 해야 되는 상황, 짧은 휴가기간, 나와 맞지 않는 동료 등 직장생활에서 경험하는 그런 특정한 몇몇 상황이 싫은 것일 수 있다.
일이 싫다면 일론머스크 같은 사람은 왜 지금까지 잠을 줄여가면서까지 일하려고 하겠는가? 자신이 사장이라서 그럴까? 상훈이 형 말대로 쉬지 않고 계속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하는 자리가 사장 자리다. 경험상 사장보다 더 힘들게 일하는 직원은 없다. 병원을 운영하는 친구는 쉬어도 머릿속에서는 계속 병원 운영 생각을 한다고 한다. 24시간 휴가 없이 일하는 사람들이 사장이다.
일이 싫은 사람은 사장을 하면 안 된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해야 하는 조직생활이 싫은 사람은 사장을 해야 한다. 일을 놓으면 안 된다. 경제적 여유와 상관없이. 평생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선택의 폭에는 제약이 있을 수 있겠지만, 평생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평생직장생활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차 선배'는 이미 조직 안에서 그 답을 찾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는 '쓸모의 증명'이 아니라 자신만의 '성취'를 위해 일하며 자유를 누린다. 그리고 오늘 만난 상훈이 형은, 조직 밖에서 그 답을 온몸으로 증명해 냈다.
산책길에서 만난 밤하늘의 달빛이, 꼭 나에게 건네는 해답처럼 유난히 밝았다. 붕어빵과 산책을 좋아하는 아내 덕분에 상훈이 형까지 만나는 우연한 행운까지 겹친 오늘 하루가 즐겁기만 하다. 마흔이 넘었지만 평생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은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설레는 밤이다. 주머니 속 아내의 손이 따뜻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