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이야기의 시작은 내가 처음 느낀 게 아니었다. 지난 글에서 언급한 사촌 언니. 사촌 언니가 가장 먼저 목격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때는 언니가 한참 한국에 머물렀던 시절인 초등학교 3학년. 우리 집에서 섬뜩한 가위에 눌렸어도, 종종 이상한 검은 형체를 마주해도. 그래도 언니는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와서 나랑 놀기도 하고, 식사를 같이한 후에 집으로 돌아가기도 하였다. 그렇게 지내던 하루가 이틀이 되고, 사흘이 되고, 나흘이 되며. 생각보다도 더 자주, 더 많이 오가던 시절이 있었다. 바로 그 시기였다.
아무도 잊지 못하고,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기억하세 되는 일을 겪은 것은.
사촌 언니와 그 집 막내가 우리 집에 놀러 오면 항상 하던 일은 대부분 떠들며 노는 것뿐이었다. 사촌 언니가 장난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나와 막내를 사소한 것들로 놀려 먹으면서 티격태격하고. 자주 어울리긴 했지만, 여덟 살이나 어린 나랑 막내와는 달리, 다섯 살도 차이 나지 않는 내 친오빠와는 곧잘 서로만 아는 대화로 넘어가기도 했다. 그러면 나와 막내가 대화에 끼고 싶어서 기웃대는, 그저 그런 평범하고 익숙한 날이었다.
그날따라 날이 빨리 저물었던 것 같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환절기라 해가 짧아져서였을까. 함께하는 시간이 즐거워, 쥐도 새도 모를 정도로 빠르게 흘러가서였을까. 수평선 너머로 해가 머리를 감추고, 하늘에는 어둠이 가득 차는 시간이었다. 사촌 언니와 막내, 친오빠, 나. 이렇게 네 명은 소파 위에 나란히 앉아 TV를 보고 있었는데. 누군가 입을 열었다.
“심심한데, 숨바꼭질이나 할래?”
사촌 언니였다. 뚫어져라 보는 TV의 스크린 앞에서 우리 넷의 표정이 시큰둥한 것을 제일 먼저 알아챘었나 보다. 재미있는 것을 방영하거나 재방송하는 곳이 없어, 리모컨을 붙잡고 채널 돌리는 버튼만 계속 누르다 보니. 사촌 언니가 가장 먼저 흥미를 잃어버린 모양이었다. 모두가 심심한 참에 잘됐다는 듯이 반응하면서, 언니의 제안은 가볍게 승낙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숨바꼭질. 규칙이야 모두가 아는 그대로였다. 가위바위보에서 진 사람이 술래가 되는 것은 당연했고, 벽을 마주한 채 눈감고 초를 세는 위치는 안방이었다. 숨고, 찾고, 잡히기를 반복하며 술래의 차례가 한 바퀴를 돌 때쯤. 사촌 언니가 술래가 되었다.
이번에는 정말 찾기 어려운 곳에 숨어야지. 감쪽같이 숨어야지. 뭐 이런 생각을 하며 좋은 위치를 찾아 그곳에 어린아이의 작은 몸을 구겨놓고 찾아주기만을 기다렸던 것 같다. 그런데 어딘가 이상했다. 분명히 “이제 찾는다!”라는 말은 들었는데, 좀처럼 사람을 찾거나 잡히는 소리가 들리질 않았다. 보통은 어디 있는 거냐며 큰 소리를 내며 찾아다니는 언니와 발견 당하면 꺄르르 웃거나 아쉬운 듯 탄식하며 잡히는 목소리가 들려야 했다. 하지만, 정말 아무것도 안 들리지 않았다. 3분도 더 넘는 시간 동안 똑같은 위치에 숨어 있으니 의문이 들었다. 집이 커 봤자, 얼마나 큰 집이라고. 여태껏 못 찾을 리가 없었으니까. 그래서 그냥 나가 볼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칠 때였다.
“꺄아악―!!”
짧았지만, 확실하게 귀에 꽂히는 언니의 비명이었다. 너무 놀란 나머지 숨어 있던 곳에서 벌떡 일어나 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안방으로 향했다. 안방 문 앞에서 막내와 마주쳤고, 이유는 몰라도 닫혀있는 방문을 열고 막내와 같이 방 안을 살펴봤다. 안방 내부에는, 언니와 오빠가 있었다. 그리고 그 둘은, 한눈에 봐도 겁을 먹은 상태였다. 언니는 용기를 낸 건지, 종종 하던 것처럼 갑자기 욕설을 퍼부었고, 오빠는 적잖게 당황한 듯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상황 파악이 덜 된 나와 막내는 서로의 얼굴을 잠시 바라봤다가 금방 질문을 던졌다.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왜? 왜 그러는데? 뭐야, 왜 그래. 같은 말을 하며 언니와 오빠를 번갈아 보는데, 오빠가 검지로 조심스레 벽장 쪽을 가리켰다. 손끝을 따라 시선을 돌리는데, 그 순간.
- 휙
정말 ‘휙’이라고밖에 표현하지 못할 만큼 찰나의 순간, 빠르게 지나가는 무언가를 봤다. 안방에는 불이 꺼져 있었고, 방문을 열면 거실의 불빛이 들어와 내부에 드리운 어둠 사이로 빛이 들어 그림자가 잘 보이는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그림자였다. 사람의 그림자 같은 것이 휙 하고 지나간 것이었다.
“…어?”
뭐지? 내가 뭘 본 거지? 혹시 다른 사람의 그림자가 아닐까 싶은 생각에, 눈앞의 세 명과 나 자신의 발밑까지 순식간에 살펴봤지만, 아니었다. 우리의 그림자는 위치상 벽장에 닿을 수 없었다. 게다가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는데 그림자가 빠르게 지나갈 일은 더더욱 없었다. 내가 그것을 발견했을 때, 옆에 있던 막내도 똑똑히 보았는지 갑자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고, 그 시끄러운 비명에 덩달아 겁먹은 내가 같이 소리를 질렀던 것 같다. 언니는 계속해서 꺼지라며 악을 썼으며 오빠는 자기가 보고 있는 것이 믿기지 않는지 그 자리에 굳어서 가만히 쳐다만 보고 있었다. 욕설을 퍼부으며 악쓰는 언니와 비명 지르는 두 명의 동생들. 겁먹은 채 돌처럼 굳은 오빠까지.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상황이었다. 그림자의 위치는 자꾸 바뀌는 듯, 순간 마주치면 금방 사라지기를 두어 번 더 반복했다. 그러다 검은 형체로 생각되는 무언가가 내 옆으로 슥 스치는 것이 느껴졌던 것 같다. 저도 모르게 등골이 오싹했고,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림자가 안방 밖으로 나간 것을 말이다.
털이 쭈뼛쭈뼛 곤두서는 감각은 아직도 선연하다. 나는 비명을 크게 내지르며 주저앉았고, 언니에게 소리쳤다. 안방 밖으로 나간 것 같다고. 어떡하냐며 울먹거리기까지 했지만, 그래도 울진 않았다. 혼자가 아닌 여러 명이라 고요한 새벽의 공포보다는 견딜 만했던 것일까. 오히려 홀로 싸우던 새벽에는 공포심이 너무 가득한 나머지 울먹거릴 생각조차 못 할 때가 태반이었는데, 그 당시는 언니와 오빠, 막내까지 다 있다 보니 의지할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금방 무너졌던 것 같다. 사촌 언니는 거기에 지지 않고 거실로 나가 고래고래 소리를 쳤고, 오빠는 정신을 차린 듯 나와 막내를 챙겼다. 막내도 자기 친언니의 기이하고 무서운 행동을 자주 봐 왔지만, 그렇게까지 크게 소리치는 모습은 처음인 듯했다. 나와 같이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언니를 바라보고 있었으니 말이다.
허공을 바라보며 꽤 오래 성내던 언니의 날카로운 욕설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사촌 언니를 제외한 세 명이 구석에서 옹기종기 모여 있었는데, 언니가 성큼 다가오더니 이제 됐다며 나오라는 말을 건넸다. 그제야 눈치를 보면서 일어났던 것 같다. 다 같이 이상한 것을 봤다는 것도 믿기지 않았지만, 전반적인 상황의 흐름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앞뒤를 다 자르고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며 물었었다. 숨바꼭질 때문에 저기에서 조용히 숨어있었는데, 3분이 지나도 안 찾아주길래 왜 안 찾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런데 갑자기 언니의 비명이 들렸고, 안방으로 가 보니까 불이 꺼져 있었다고. 그러자 언니와 오빠가 대답해 주기를. 우리가 미쳤다고 어두운 방 안에서 문 닫고 불까지 끄고 있었겠냐며 하소연하듯 말하는 것이다.
언니는 “이제 찾는다!”라고 말한 후에 우리를 찾으러 집안을 조용히 돌아다녔다고 했다. 여태까지는 시끄럽게 굴며 찾아다녔지만, 이번에는 다르게 해 봐야겠다는 생각에 우리를 찾다가 제일 먼저 오빠를 찾았고. 오빠를 찾자마자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로 찍소리도 못하게 입막음한 후, 둘이 안방으로 가서 나와 막내. 둘 중의 하나를 방금처럼 조용히 찾은 다음에 마지막으로 찾게 되는 애를 셋이서 크게 놀라게 하자는 작전을 세웠다고 말했다. 그러는 도중에, 갑자기 방 안을 밝게 비추던 백열등이 깜빡거리더니 훅 꺼졌다고 했다. 일순간 당황했지만, 정전인가? 싶었고. 우리한테 알려주려고 나가려는데, 사촌 언니가 털이 곤두설 만큼 서늘하고, 오싹한 불쾌한 감각을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느꼈다는 것이다. 예상치 못한 감각에 너무 놀라서 소리를 질렀고, 그 비명에 나와 막내가 안방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이었다.
사건의 경위를 들으니,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이후 숨바꼭질을 그만하자는 사촌 언니의 말에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우리 네 명은 일하는 중인 부모님들이 집으로 돌아오기만을 얌전히 기다렸고, 넷이서 모여 앉아 있을 때도 괜히 언니에게 꼭 붙어 앉았다. 언니가 갑자기 다른 사람처럼 돌변하는 것은 무서웠지만, 그래도 든든했으니까. 하지만, 가까이 붙어 앉으니 느낄 수 있었다. 언니의 미세한 떨림을. 가장 나이가 많아서 내색하지 않은 언니도 사실 미성년자였고, 무서웠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의 사촌 언니는 용기 있었고, 멋있었고, 고마웠다. 정체 모를 그림자로부터 우리를 지켜보겠다고 악을 썼던 것이었을 테니까.
그날, 내 부모님과 이모가 돌아왔을 때. 네 명이 함께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입이 닳도록 얘기했다. 부모님은 그런 일이 있었냐며 조금 당황스러워했었고, 이모는 꽤 진지하게 들어줬던 것 같다. 그 이후로 우리 집에 교회 사람들이 왔다 갔는지 어땠는지는 기억이 흐릿하다. 그 그림자는 무슨 이유로, 우리 집에 있었던 것이며, 어떻게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볼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