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의 끝: 하이힐의 여자

by 큐인



나를 괴롭히던 소리의 끝은 생각보다 짧고 굵었다.

대신, 낮과 밤을 상관 않고 내 하루를 통째로 가져갔다.



8살.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어린아이의 기억 속, 오로지 공포심으로 그득히 채워졌던 한 달의 시간에도 끝이 있었다. 다만 마지막이었던 만큼, 그날은 온통 묘한 위화감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대낮부터 다른 사람은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겉보기엔 한가롭고 평화로운 주말의 오후였다. 나는 아주 여유롭게, 엄마가 깎아준 과일을 먹으며 TV에서 재방송해 주는 개그 프로그램을 시청 중이었다. 그렇게 엄마와 함께 TV를 시청하다가, 집 앞 놀이터에서 나를 부르는 동네 친구의 목소리가 들려오면 나가서 놀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마침 TV를 보며 웃고 떠드는 중에 바깥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지수야~”


그 당시 우리 집은 1층이었고, 베란다 밖에 바로 놀이터가 보이는 구조였기 때문에 놀이터에서 나를 부르면 집 안까지 제법 크게 들렸다. 이름이 불리자마자 배란다 창밖을 바라보며, 들고 있던 포크를 내려놓고 누가 불렀는지 확인하기 위해 밖을 내다봤다. 그런데.


“뭐 하노? 왜, 밖에 누가 있나?”


뒤에서 들려오는 엄마의 질문이 귓등을 때렸고. 가만히 서서 바라본 창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멀뚱히 눈꺼풀을 두어 번 위아래로 끔뻑이며 엄마에게 되레 질문했다. 밖에서 내 이름 부르지 않았냐고. 분명히 날 불렀는데 못 들었냐고. 엄마는 내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런 소리는 안 들렸다고 말이다. 하지만, 처음에는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시간대도 볕이 드는 환한 대낮이었고, 엄마가 바로 옆에서 과일을 깎아주고 있었던 터라. 겁이 나지도, 이상하지도 않았다. 그저 순간의 착각이었던 것으로 판단했고, 엄마의 반응에 내가 그럼 내가 잘못 들은 것 같다며 원래 자리로 되돌아가서 다시금 TV를 시청했다. 개그 프로그램은 점점 더 인기 많은 코너를 향해가며 시청 중이던 엄마와 나에게, 계속해서 웃음을 선사해 줬다. 한창 웃고 있는 도중에.


“지수야~!”


또다. 또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놀이터 쪽에서 들려왔다. 이번에는 잘못 들은 것이 아닐 거라고 생각하며 아까와 같이 일어나 베란다로 향했다. 그리고. 사람 하나 없이 휑한 놀이터를 다시 한번 마주했다. 엄마는 또 왜 그러냐며 질문을 해 왔고, 나는 당황스러웠다. 똑똑히 들었단 말이야, 왜 아무도 없지? 자꾸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는 엄마에게 진짜라며 고집 아닌 고집을 부렸다. 내 이름을 크게 불렀는데 어떻게 옆에 있던 엄마가 못 들은 거냐고 따졌지만, 엄마는 그런 소리 안 들렸다고만 말했다. 너무도 단호한 엄마의 반응에 나는 하는 수 없이 제자리로 돌아가야 했다. 그때부터 베란다 밖을 신경 썼던 것 같다. 선명하게 들리는 목소리를 어째서 엄마는 못 듣고 나는 들었는지. 엄마가 장난을 치는 건가? 거짓말하는 거 아니야? 같은 생각도 들었지만, 엄마가 이런 걸로 장난을 칠 리 없었다. 그렇게 마음속에는 의문스러움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혼자 긴가민가하며 마지막으로 남은 사과를 포크로 쿡 찍을 때였다.


“꺄아아아악―!!!”


귀를 찌르는 어떤 여자의 비명에 당황을 금치 못한 채, 베란다를 바라봤다. 아니다. 이번에는 진짜다.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빠르게 베란다 밖을 내다봤다. 등 뒤에서는 나의 반복되는 행동에 엄마가 짜증이 난 듯 진짜 왜 그러냐고 했지만, 꿋꿋하게 창밖의 놀이터를 확인했다. 뭐지? 비명 소리였잖아. 무슨 일이 생긴 거면? 하지만, 시야에 비친 것은 아무도 없는 고요한 놀이터뿐이었다. 누구도 존재하지 않아 모래바람만 휘날리는 텅 빈 놀이터. 확실히 이상한 상황이었다. 평소라면 무서웠을 법도 한 그 상황에서 나는, 그때의 내 감정은 무섭기보다는, 그래. 짜증이 났던 것 같다. 계속 무슨 짓이냐며 장난이면 그만하라는 엄마의 짜증 섞인 목소리에 나도 덩달아 짜증으로 대답했다.


“아무도 니 이름 안 불렀다! 그만해라.”


“방금은 내 이름 불려서 본 거 아니거든? 비명 소리 들렸잖아! 엄마는 왜 모른 척해??”


“뭐라하노 자꾸. 이리 와서 앉아라!”


“아 진짜라고!!!”


“앉으라 했다.”


짜증으로 가득 찬 말로 대답해도, 엄마에게는 언성을 높여 봤자였다. 내가 하는 말은 고집으로 치부되기만 했고, 이상한 소리 말고 남은 과일이나 마저 먹으라며 타박만 받았다. 지금 생각하면 수상쩍을 만큼 엄마도 나도. 그렇게 짜증을 냈었다. 서로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서였을까. 하지만 어린 나는 화가 나면 무서운 엄마에게 말을 더 얹지 못하고, 남은 사과를 입에 욱여넣었다. 왜 내 말을 믿어주지 않는 건지 억울했다. 진짜로 내 이름을 불렀고, 비명을 질렀는데. 정말 엄마는 못 듣고 나만 들었다고? 말이 안 되잖아. 엄마가 분명 거짓말을 하는 거야. 괜히 속상한 마음에 욱여넣은 사과를 억지로 삼키고는 곧장 방으로 들어갔던 것 같다. 여덟 살 아이의 최대 반항이었다. 그리고 그날은, 그 누구도 놀이터에서 놀지 않았다. 초저녁이 될 때까지도, 정말 아무도 없었다. 하루가 모자랄 만큼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기를 좋아했던 동네 친구들의 머리카락 한 올도 안 보이는 그런 날이었다.


어느덧 찾아온 밤. 내일은 일요일이니까 학교에 안 가도 된다는 생각에 신난 마음으로 침대에 누웠다. 오늘 밖에서 못 놀았으니까 내일은 놀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누워있는데, 막상 불을 끄고 누워있으니 대낮의 일이 떠올랐다. 누구의 목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하게 내 이름을 외쳤던 목소리. 그리고 이어지는 여자의 비명. 같이 있었음에도, 엄마는 듣지 못하고 나만 들었던 소리. 어딘가 께름칙했다. 그래도 날이 밝을 때 있었던 일이었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그 일을 야심한 밤에 떠올리니 괜히 소름이 오소소 돋는 것 같았다.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눈을 꾹 감은 채. 오늘은 새벽에 어떤 소리도 듣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내비쳤다. 마침 피곤하기도 했고, 금방 잠들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여전히 고요한 밤은 무서웠지만, 그래도 3주 이상 이 일을 겪으니 오기를 부리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어떻게든 자 보겠다고 감은 눈을 뜨지 않았다.


금방 잠들 수 있을 것 같은 예상은 적중했다. 잠이 솔솔 오는 듯한 느낌. 여름이라 열린 창문 사이로 가늘게 불어오는 바람. 모든 게 완벽했다. 노곤노곤 눌어붙는 눈꺼풀에, 몽롱한 정신으로 나른함을 즐기고 있었다. 길어봤자 1분. 앞으로 1분 이내로 깊은 잠에 빠질 것 같았다. 정말 오랜만에 기분 좋은 나른함을 만끽하고 있었을까. 복도 형식의 아파트였던 건물로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가 울려 퍼졌다. 종종 있었다. 늦은 밤에 귀가하는 사람들이. 우리 집은 1층이었던 만큼, 창문을 열고 있으면 사람들이 오가는 소리를 불가피하게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창문 밖에서 들리는 발소리는 익숙했다. 느른하게 누워 그저 들리는 대로,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문이 열립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스르륵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 사람은 이제 집에 가는구나. 되게 늦게 들어가네, 피곤하겠다. 생각은 물 흘러가듯, 의식의 흐름대로 흘러갔고. [문이 닫힙니다]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그럼 나는 또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구나··· 하며,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런데, 2초 정도 지났을까. 정말 2초 정도였을 것이다. 아주 빠른 시간 안에 그 엘리베이터는, 띵- 하는 도착 음과 함께.


[1층입니다 문이 열립니다]


스르륵. 또다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좀 전에 들었던, 높은 굽의 하이힐 소리가 건물 밖으로 나가는 소리까지 말이다.



- 또각, 또각, 또각



멀어지는 하이힐 소리와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소리를 끝으로 금방 잠이 들 수 있을 것 같았던 나의 잠이 점차 달아나기 시작했다. 저도 모르게 위화감을 느낀 탓인지, 머리가 굴러갔던 것이다. 사실 그날은, 엄마와 짧은 실랑이를 마지막으로 내 방에서 꽁하게 있다가, 슈퍼에서 뭐 좀 사 오라는 심부름을 받고 잠깐 밖을 나갔었다. 그래서 기억한다. 아파트에서 작동하는 두 개의 엘리베이터 중, 하나가 고장이 나는 바람에 큰 글씨로 ‘점검 중’이라고 적혀 있는 종이가 붙여진 엘리베이터를. 그러니까 말하자면, 엘리베이터는 하나밖에 작동되지 않는다. 그런데 저렇게나 빠르게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것이었던가? 애당초 두 개 다 멀쩡히 작동되었다 한들 말이 되지 않았다.


보통 엘리베이터가 1층에 머물러 있는 상태라면, 열림 버튼을 눌러도 곧바로 문이 열린다는 음성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 그렇다면 안에 들어가서는? 올라가야 할 층수를 누르면 적어도 해당 층수를 음성으로 한 번 내보내 주지 않는가. 4층을 눌렀다면 ‘4층, 문이 닫힙니다.’ 같은 것 말이다. 내가 기억하는 그 아파트의 엘리베이터는 그랬다. 누른 층수를 무조건 읊어줬고, 올라갔다가 내려오면 그제야 도착 음과 함께, ‘1층입니다. 문이 열립니다.’라는 음성이 나오면서 문이 열렸다. 확실했다. 그러니까 이상했다. 확실하니까.


엘리베이터로 들어간 하이힐 소리를 뒤로 하고, 올라가는 층수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고요한 새벽에 그 소리가 들리지 않을 리가 없는데도, 들리지 않았다. 게다가 위층으로 도착하는 소리도 이상했다. 적막이 내려앉은 새벽에는 엘리베이터가 어디까지 올라가든 도착하는 소리가 들렸었다. 제일 꼭대기 층으로 올라갔다면 모를 일이지만, 7층까지도 높은 곳에서 작게 들렸었다. 멀리서 ‘띵- 7층입니다.’ 같은 소리가 작게 들렸단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무엇도 들리지 않았다. 올라가는 층수를 누르는 소리도, 위층 어딘가에 도착하는 소리도.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럼, 저 사람이 엘리베이터에 가만히 있다가 다시 내린 거라면? 그것 또한 이상했다. 처음에는 ‘문이 열립니다.’로 시작했다. 이건 이상하지 않았다. 반대로 다시 내릴 때는 달랐다. 내릴 때 엘리베이터 소리는.



[1층입니다 문이 열립니다]



내릴 때는, 1층이라고 언급했다. 이건 적어도 위층을 갔다가 내려와야 들을 수 있는 음성이었다. 가장 가능성 있는 것은 2층. 아니, 2층이라고 해도 말이 안 됐다. 귀로 들린 엘리베이터 작동음은 정말로 2초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으니까. 2층을 갔다 오더라도 2초 이상 걸려야 했고, 2층에 도착했더라면 2층에서도 도착 음과 문이 여닫히는 소리가 들려야 했다. 하지만 그런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1층에서의 소리만 명확히 들렸고, 그 텀은 매우 짧은 시간이었다. 말이 안 되지 않는가. 생각을 끝마치자, 몽롱하던 정신을 누군가 잡아끌기라도 하는 듯, 훅하고 빠르게 돌아왔다. 집 안에서 들리는 소리도 무서웠지만, 여태까지는 다른 방식으로 바깥에서 들리는 소리가 너무도 이상하고, 예측할 수 없어서 무서웠다. 아무런 순서도 없었고 그릇끼리 부딪히는 소리나 수돗물 소리 같은 것도 아니었다.


무섭다. 더워서 열어둔 창문을 닫고 싶었다. 닫고 싶은데, 괜히 일어나서 창문을 닫으려다 복도에서 무언가와 마주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창문을 등지고 가만히 눈동자를 굴렸다가 꾹 감기를 반복하며 불안한 기색을 내비치는 것밖에 못 했다. 어떡하지? 어떻게 해야 하지? 이번엔 뭐지? 머릿속에는 물음표가 끝없이 새겨졌고, 낮부터 가지고 있던 위화감에 대한 의구심이 폭발했다. 이게 뭐야, 싫어. 무서워. 하지 마. 내가 처한 상황을 부정하며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몸을 감췄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이불을 뒤집어쓰는 것이 전부라서. 어떤 일이 있어도 이불을 들춰낼 생각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어 수단이었으니까. 나는 이불 속에서 뭐지? 뭐였지?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라는 생각을 멈추지 못했고, 두려움에 잡아먹히고 있었는데, 갑자기 밖에서 아주 요란한 차 소리가 들렸다.


거친 아스팔트 바닥 위에서 과하게 핸들을 꺾어 나는 드리프트 소리.



끼익―, 끽. 끼이이익!!



차체가 중심을 잡지 못하는 듯, 아스팔트 바닥과 타이어의 격한 마찰음이 아파트 내부 주차장에 크게 울렸다. 그러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여자의 찢어지는 비명이 들렸다.



- 꺄아아아악―!!!



그 비명이었다. 낮에 들었던 그 비명 소리였다. 소리만 들으면 사고가 난 게 틀림없었다. 어디에 부딪혀도 단단히 부딪혔구나 싶었다. 격한 드리프트 소리와 함께 마지막으로 들린 비명. 지금은 새벽인데, 누가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닐까? 근데 소리가 컸으니까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신고하지 않을까. 사고가 크게 난 거면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거 아니야? 그치만 무서워. 못 보겠어. 하지만 사람이 다쳤으면? 온갖 생각들이 머리를 뒤흔들었다. 마치 천사와 악마가 속삭이듯이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갈등했다. 그리고 결국, 이불을 들춰냈다. 소리만 들어도 큰 사고인 게 분명한데, 사람이 다쳤다면 한시바삐 신고해야 할 상황일 테니 말이다. 정말 큰 용기를 낸 것이었다. 이불을 들춰내고 나서도, 몇 초 동안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못하고 갈등했다. 하지 말까? 무서운데. 꼭 내가 안 봐도 되잖아. 내가 아니어도···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뻣뻣하게 굳은 몸은 삐걱대며 움직였다.


차가 어딘가에 강하게 부딪히는 소리가 머릿속을 떠나질 않아서. 단순히 무섭다는 이유로 큰 사고를 외면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침을 꿀꺽 삼켜 목울대가 움직이는 것을 느끼며, 용기 내서 얼굴을 창문 앞에 두고는. 차마 바로 눈을 뜨지 못한 나는, 슬그머니 눈을 뜨고 복도 너머의 창문으로 주차장을 확인했다. 그랬는데, 멀쩡했다. 아무 일도 없는 고요한 주차장이었다. 그렇게나 시끄러운 굉음이 있었는데, 분명히 사고가 났을 텐데? 차체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뒤틀리는 소리가 났는데. ······그런 소리가 났나? 소리가 나서 들린 건지, 그냥 들린 건지 알 수 없어졌다. 시선 끝에 닿은 새벽의 주차장은, 너 나 할 것 없이 귀가한 탓에 빈자리 하나 없이 꽉꽉 채워져 있었고, 드리프트를 할 공간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난 분명히 들었다. 들었는데, 들었는데 왜.


목이 바싹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눈을 깜빡이지도 못할 공포심에 숨조차 고르기 어려웠고, 심장이 터질 듯이 뛰어댔다. 쿵, 쿵, 쿵― 어지러웠다. 장담컨대 내 심장 소리를 귀가 울릴 정도로 크게 들었던 것은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나는 눈을 감을 수도, 뜰 수도 없는 긴장감에 시선을 어디에도 두지 못하고 함부로 움직이지도 못했다. 그냥 계속 창밖을 바라본 채 굳어있었다. 움직이면 안 될 것 같았다. 잘못 움직이면 안 될 것 같아서 더 무서웠다. 그렇게 창밖을 가만히 바라본 나는 이상한 점만 자꾸 눈에 보였다. 복도의 창문도 다 닫혀있었다는 것. 내가 기분 좋게 맞았던 바람은? 창문 밖에서 들어왔는데.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이었을까. 이제 어떡하지? 밖에 아무것도 없잖아. 바람은 어디서 불었지? 차는? 여자는? 근데 여자는 뭐야? 낮에도 들었던 목소리잖아. 그러다 문득, 어떤 것이 떠올랐다. 생각해 보면. 그 목소리가 내 이름을 불렀던 게.




- 지수야!




무언가 뚝 끊기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불편한 감각에 인상을 쓰며 감겨 있던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눈앞에는 창문 바로 밑의 벽이 보였고, 나는 천천히 주변을 살펴봤다. 어느새 날이 밝았는지 방 안이 환했다. 뭐였지? 이상한 느낌에 급하게 몸을 일으키자, 온몸이 뻐근했다. 잠을 잘못 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근육통이었다. 꿈? 꿈이라고? 언제 날아갔는지 모를 의식을 되짚으며 창문을 확인했다. 여전히 열려 있는 창문은, 새벽에 내가 차 사고를 확인하기 위해 조금 더 열었던 그 상태 그대로였다. 꿈이 아니다. 나는 분명히 출처를 알 수 없는 소리를 들었고, 두려운 마음을 이겨내고 창밖을 확인하다가.


“아.”


내 머릿속에서 어떤 여자의 목소리가 불현듯 재생되었다. ‘지수야!’ 뭐라고 설명하기 애매한 목소리였다. 아주 높은 하이톤에 이름을 부르는 말의 속도가 너무 빨랐다. 계속 생각나는 목소리에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고개를 숙였다. 목소리를 듣고 기억이 사라진 걸 보면, 듣자마자 기절한 것이 분명했다. 이건 또 엄마한테 뭐라고 말하지? 믿어 줄까. 솔직히 부모님은, 안 믿어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말하지 않기로 결심했던 것 같다. 신기한 것은 왜인지 모르게, ‘끝났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 지겨운 일이 끝난 것 같아서 말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후로, 새벽마다 나를 괴롭혔던 소리는 정말 감쪽같이 없어졌다. 이유 모를 느낌이 맞았던 것이겠지. 처음부터 나를 괴롭히고, 우롱하던 소리의 정체는 그 여자의 짓이었을까. 아마도 그랬을 것 같다.






나의 어린 시절, 초등학교 1학년 여덟 살에게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한 달의 시간 동안. 알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고등학생 시절에도, 성인이 되고 난 이후에도 겪은 일이 있으니. 초등학교 시절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려고 한다. 다 풀지 못한 경험담은 기회가 닿는 대로, 차근차근 풀어보도록 하겠다.


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