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의 직장생활을 마무리하는 순간, 내 마음은 이상하게도 허전하지 않았다.
오히려 텅 빈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수첩은 새로운 여행의 노트를 기다리는 듯 보였다.
이제 남은 시간은 나만의 것이었다. 앞으로의 30년을 어떻게 채워갈 것인가.
나는 답을 이미 정해두었다. 두 바퀴 위에서, 낯선 길 위에서, 그리고 바람이 안내하는 대로.
2022년 7월 29일. 인천공항 출국장에 들어서는 순간, 32년간 매일 아침 타던 자동차 대신 비행기를 타고 떠난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가벼운 여행용 가방 안에는 헬멧과 져지, 그리고 긴 여정을 함께할 믿음직한 라이딩화가 자리 잡고 있었다. 동호회 친구들은 나를 ‘도전형 아저씨’라 불렀지만, 사실 내 마음은 두려움과 설렘이 뒤섞여 있었다.
한 달 동안, 무려 1,600km를 달린다는 것은 결코 가벼운 도전이 아니었다.
비행기는 서서히 활주로를 벗어나 구름 위로 올랐다. 창밖으로 한반도의 지형이 작게 줄어들며, 이제는 되돌릴 수 없는 여행이 시작되었음을 알려주었다.
머릿속으로 지난 직장 생활이 스쳐갔다. 매일 반복되던 보고서, 늘 맞닥뜨려야 했던 민원, 그리고 동료들과의 웃음과 갈등. 모든 것이 구름처럼 흩어져 사라지고 있었다.
파리에서 환승해 지중해의 관문, 프랑스 마르세유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은 밤이었다.
공항의 공기는 한국과는 사뭇 달랐다. 습기가 덜하고, 짭조름한 바다 냄새가 스며들어왔다. 낯선 언어가 오가는 택시 승강장에서, 나는 곧 만나게 될 ‘유라시아 횡단’의 동호회원들을 떠올렸다.
각자 다른 배경을 가진 이들이 모여 같은 꿈을 꾸며 페달을 밟는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특별한 인연 같았다.
첫날의 숙소 창문을 열자, 멀리서 바람에 흔들리는 야자수가 보였다. 한국에서 이곳까지 오는 데 하루도 채 걸리지 않았지만, 내 삶은 완전히 다른 장으로 넘어온 듯했다.
내일은 새로운 길 위에서 첫 페달을 밟을 것이다. 긴 여정의 첫밤, 나는 조용히 다짐했다.
“이 길 위에서 나는 또 다른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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