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는 세 개

by 최스물

나는 나이가 세 개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37살, 한국 나이로 36살, 만으로는 35살.


나는 내 나이가 싫었다. 1월 생이라 학교에서는 친구들이 "형이라 불러라"라고 장난치는 것이 나에게는 큰 스트레스였다. 또 대학교 1학년 때 당당하게 술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민증검사라도 할까 봐 불안해하며 나중에 합류하거나 민증검사 안 하기로 소문난 술집만 찾아다녔다. 어쩌다가 나 때문에 뺀찌라도 먹으면 얼마나 친구들에게 미안하던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게다가 빠른년생이랑은 족보가 꼬인다며 친구 안 한다는 이야기를 듣기라도 하면 괜히 죄지은 것처럼 움츠러들었다.


'아, 2주만 빨리 태어났어도 이런 스트레스는 없었을 텐데...' 늘 그렇게 생각했다. 누구는 나중에 사회에 나가면 어린 게 좋은 거라며 위로했지만 나는 37살(혹은 36살, 또는 35살)이 될 때까지 어린 게 좋은 거라고 느껴본 적이 없다. 한국사회가 어린 사람이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문화 아닌가!


난 내 나이가 부끄러워 나이를 애써 외면하며 살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 스물한 살, 스물두 살... 서른다섯 살, 서른여섯 살. 내 나이를 느껴보지 못한 채 20대가 지나고 30대 중반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지금은 늘 그렇게 생각한다.


'아, 스무 살로 돌아가고 싶다.'


누군가는 그 시절을 열심히 살면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한다. 그때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또 다시 그것을 또 반복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스무 살부터 지금까지 덧없이 흘려보낸 세월들을 후회한다. 매일 밤 잠자리에 누워 다시 돌아가면 이렇게 살지 않을 것이라 다짐하고 또 다짐하면서 혹시 도라에몽이 나타나 나를 다시 스무 살로 되돌려 주지 않을까라는 헛된 망상을 매일같이 해왔다.




오늘도 나는 누워 잠이 들기를 기다리며 핸드폰을 한다. 그러다 예전에 즐겨봤던 드라마인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기획의도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왜일까.
청춘이 매력적인 근본은, 남아도는 체력에 있다.

무언가를 좋아할 체력, 좋아하는 것에 뛰어들 체력,
뛰어들었다가 실패하고 좌절할 체력,
그 와중에 친구가 부르면 나가 놀 체력,
그래놓고 나는 쓰레기라며 자책할 체력.

유한한 체력을 중요한 일들에 신경 써서
분배할 필요가 없는 시절,
감정도 체력이란 걸 모르던 시절,
그리하여 모든 것을 사랑하고
모든 일에 아파할 수 있는 시절.

그 시절의 우정은 언제나 과했고,
사랑은 속수무책이었으며, 좌절은 뜨거웠다.
불안과 한숨으로 얼룩지더라도, 속절없이 반짝였다.

스물다섯 스물하나 - 티빙(http://program.tving.com/tvn/twentyfivetwentyone)


청춘이 매력적인 근본은, 남아도는 체력에 있다는 것. 감정도 체력이라는 것. 그 말이 난 너무 와닿았다. 내가 내 나이를 부끄러워 하며 외면했던 나의 스무 살에게 사무치게 미안해졌다. 나는 내가 영원히 푸를 줄 알았어.


그런데 지금의 나는 하루하루 무기력하게 흘러가는 대로 살고 있다. 그러면서 내가 무심코 흘려보낸 체력이 넘쳐났던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다. 모든 것이 신기했던 시절, 무엇을 하든 재미있었고, 모든 것이 궁금했고, 모든 것을 해보고 싶었던 그 시절이 너무 그립다. 그 귀한 순간들을 헛되이 보냈던 것을 후회하고 있다. 버나드 쇼가 그랬던가. "젊음은 젊은이에게 주기엔 너무 아깝다."


젊음은 젊은이에게 주기엔 너무 아깝다.
-버나드 쇼(1856-1950)


내가 늙은 것은 아니지만 오늘은 내가 살아온 인생에서 가장 늙은 날이다. 살아갈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이라고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앞으로의 인생을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문득 옛날 노래가 떠오른다.

"청춘을 돌려다오!"

수 많은 가수들이 이 곡을 부르면서 하나 같이 밝게 웃는 얼굴로 청춘을 외쳤지만 이 곡을 쓴 사람은 인생의 황혼에서 흘러가버린 젊음을 얼마나 애원하고 있을까.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소리치겠지만 그렇다고 고장난 벽시계가 거꾸로 돌아가겠는가.


나는 2008년의 스무 살이 될 수는 없지만

2025년 지금, 나는 "스무살"로 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