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용정보원에서2020년에 발간한 『한국직업사전』(제5판)에는 16,891개의 직업이 등재되어 있다. 그 중 종류가 유사한 직업과 세부 관련 직업을 제외하면 6,000여 개의 직업이 있다고 한다. 2025년 노년인구를 제외한 대한민국 성인 인구가 약 3,000만 명이라고 하니까 한 직업당 대략 5,000명의 사람이 종사하는 셈이다.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어떤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1만 시간이 걸린다는 뜻이다. 주 40시간씩 250주. 1년은 52주니까 대략 5년이라는 시간을 정규직으로 일을 해야 그 분야에서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대략 30살부터 70살까지(요즘은 정년이 지나서도 일을 하지 않던가) 40년 동안 일을한다 치면 나는 8가지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두 가지 인생을 살기로 했으니 16가지 분야에서 전문가가 될 수 있다. 그래도 전체 직업의 0.3%도 안 되니 정말 직업의 종류는 많고 인간의 삶은 짧다.
2. 배우
나는 어려서부터 내성적이었다. 조용하고 밖에서 뛰어놀기보다는 집에 틀어박혀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다. 유창한 말재주도 없다. 그렇지만 나는 연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연기는 말재주가 없어도 할 수 있다. 글자를 읽고 말할 수 있으면 대본을 읽고 말하면 된다.
처음 연기를 접한 것은 뮤지컬 동호회에서 였다. 뮤지컬 작품을 몇 개월 간 연습해서 공연하는 동호회였는데 그동안 군대에서 발산하지 못했던 에너지를 쏟을 곳을 찾던 나에게 분출구같은 곳이었다. 춤도 노래도 못했지만 단숨에 푹 빠져서 열심히 했다. 일주일 내내 연습날만 기다렸고 그렇게 몇 번의 공연을 하고나서는 배우가 되겠다며 연기 학원까지 다니기 시작했다. 당시에 내 앞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연극영화과로 입학해서 몇 년 간 공부하는 길과 무작정 현장에 뛰어드는 길.
나는 후자를 택했다. 당장 연기가 하고 싶었으며 다시 대학교 4년을 공부하기엔 학비와 생활비가 걱정되기도 했다. 그날부로 보조출연(흔히 엑스트라라고도 한다) 알바를 하며 제작사에 프로필을 돌렸고, 오디션을 준비하고 레슨도 받으며 언제 올지도 모르는(어쩌면 안 올지도 모르는) 기회를 위해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 견뎠다. 그러면서 우연한 기회로 몇 편의 영화와 드라마에 단역으로 출연하게 되었다. 흔히 그렇듯 나도 조금씩 성장하며 더 큰 기회를 노려보고자 했다.
하지만 나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는 계속 이 길을 갈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졌다. 내 나이가 서른인데 언제까지고 철없이 꿈만 좇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방향을 틀어 취업을 하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가 터졌다. 그 당시에 영화든 드라마든 연극이든 많이 힘들었다고 들었다. 여러 작품이 무산되기도 했다는 소식을 들으며 힘든 시기에 취업을 할 수 있게 된 것에 정말 감사했다. 그렇게 코로나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조금만 쉬면서 돈을 모았다가 다시 도전해야지!
하지만 누가 알았겠는가? 그 질긴 코로나가 3년이나 활개칠 줄은. 그동안 나는 회사일에 치이면서도 점점 익숙해지게 되었고 월급날이라는 안정감에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예전에 나와 함께 연습하고 공부했던 배우들이 하나 둘씩 스크린과 브라운관에 얼굴을 비추기 시작했다. 반가움도 잠시,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댔나? 저들의 노력과 끈기가 빚어낸 결과가 너무너무 부러웠다. 나도 포기하지 않았다면 저들과 같이 있었을까?
우연히 한 극단을 알게 되었다. 대학로에서 먹고 자며 매일 같이 공연을 하는 극단이 아닌 평일에는 회사원으로 살다가 주말에는 배우로 변해서 연습하고 공연을 하는 직장인 극단이다. 지금의 안정적인 삶과 연기 둘 다 잡을 수 있다. 가슴이 뛰었다. 처음으로 무대의 섰던 그 때의 두근거림이 떠올랐다. 그렇게 나는 다시 연기의 세계에 발을 딛었다.
몇 달 간의 극단 생활에서 알게 된 점이 있다면 그건 내가 했던 것은 연기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연기라기보다는 일종의 대본 암송에 가까웠다. 나는 지금까지 연기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착각했다. 우리가 거짓말을 하는 사람을 보고 '연기하고 있네'라고 말하는 것처럼 연기란 거짓을 꾸며내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연기는 오히려 가장 나다운 모습이 되는 것이었다. 화가 났을 때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울분에 못 이겨 눈물이 나는 사람도 있다. 연기를 한다는 것은 그 상황에서의 내 모습을 진실되게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연기에 '정답'이 없다고 하는 것이었구나.
그것을 깨닿고 나니 연기를 하면서 많은 감정적 해소를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캐릭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가 내가 되었다. 화내는 연기에서는 혈압이 올라 핏줄이 터질 정도로 화를 내었고 슬픈 연기를 할 때는 꺼이꺼이 울어도 보며 나 자신을 투명하게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 자신을 꾸며내면서 답답함을 느끼던 연기를 할 때에는 느낄 수 없었던 경험이었다.
그 후로는 나 자신을 많이 관찰하기 시작했다. 나는 기쁜 연기를 하기 위해서 내가 기쁠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 관찰하고 슬픈 연기를 하기 위해서 내가 슬플 때 어떤지를 관찰했다. 나는 이제서야 진정으로 연기를 만나 비로소 내 안의 진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연기는 가면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벗겨내는 작업이었다. 진짜 나를 마주하고,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싶은지 차근차근 들여다보게 만든 것이다.
스무 살이라면 응당 자신을 탐구하고 인생의 방향을 잡아 삶을 개척하고 행복을 찾아 떠나야 한다. 연기 덕분에 나는 나를 솔직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나는 무엇을 원하는지. 스무 살은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동시에, 방황하기 가장 쉬운 시기다.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하지 않다면 남들이 정해준 길을 따라가며 스스로를 잃어버리기 쉽다.
연기에 정답이 없는 것처럼 스무살 나에게 필요한 것은 '정답'이 아니다. 남들이 옳다고 말하는 길이 아니라,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길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이다. 나를 진실되게 바라보고 나만의 속도를 존중하며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자기 내면의 울림에 귀 기울인다. 그 과정에서 실패나 시행착오가 있어도 괜찮다. 그것마저 나의 스무살일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