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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검진 결과 의사 면담

124일 차

by 다작이

이달 초 한국건강관리협회 대구지부 병원에서 공무원 종합건강검진을 받았다. 처음으로 해 본 대장내시경을 비롯해서 위내시경까지 받았다. 아니, 할 수 있는 대부분의 검사를 했다는 게 마지 싶다. 평소에 특별히 아픈 데는 없었다. 다만 슬슬 건강 관리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지인들의 말이 신경 쓰이긴 했다. 그러던 차에 이번 검사가 끝난 뒤 네 개의 용종을 떼어냈다는 말을 의사로부터 들었다. 우리 나이에 건강검진을 받으면 으레 몇 개씩은 있다는 용종이라 애써 별 것 아닌 듯 생각했다.


그런데 지인들의 말을 들어보니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얼마 전에 집으로 온 검사결과지를 보니 떼어낸 네 개 중에 두 개가 용종이 아니라 선종이라고 했다. 나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용어였는데, 용종에서 암으로 넘어가는 중간 단계의 것이 선종이라고 했다. 쉽게 말해서 떼어내지 않고 그대로 놔뒀다면 언젠가는 암으로 발전할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아무리 간이 큰 나라고 해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것도 아니고 대장암이라면 그다지 예후가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 않은가?


지인들과 가족들은 아무 일 아닐 거라며 애써 나를 안심시키려는 눈치였지만, 내게는 그놈의 가족력 어쩌니저쩌니 하는 말이 줄곧 따라다니고 있었다. 6년 전에 아버지가 위암으로 돌아가셨기 때문이었다. 물론 나는 의학적인 지식도 없고 의사도 아니니 전문적인 소견에 대해선 전혀 알 수 없다. 다만 가족 중에 누군가가 암으로 사망하면 나머지 가족 중에서도 암이 발생할 그만큼 크다는 게 바로 가족력의 함정이다.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해서 그 아들인 내가 암에 걸릴 수 있다는 건 도대체 어떤 의학적인 소견에서 나온 것일까?


냉정하게 말해서 떨고 있는 건 아닌데, 의사 면담을 위해 다시 병원으로 지금 가고 있는 중이다. 전화를 걸어온 간호사 말로는 상황에 따라서 별도의 검사를 할 수도 있다고 해서 어제저녁 10시 이후로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그저 한두 끼 안 먹는다고 큰일이 날 리는 없다. 어쩌면 배고픔보다는 혹시라도 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으면 어쩌나 하는 마음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나 싶다. 태연한 척해도 아침부터 내내 긴장이 되는 건 나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다.


글쎄,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가 된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오늘 병원 방문 목적은 검사 결과에 대한 의사와의 면담이다. 경우에 따라선 별도의 검사가 있을지 모른다고 했지만, 그럴 일이 없기를 바랄 뿐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사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삶에 그리 큰 의욕이 없었다. 잘 쓰지는 못해도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오래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내에게 농담처럼 한 말, 100세까지 살겠다는 야무진 꿈을 품었다. 최소한 40년 동안은 글을 쓸 수 있겠다는 계산이 여기에서 나온 셈이다.


글을 쓰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업작가가 아닌 걸로 알고 있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생업을 때려치우고 글쓰기에만 전념하고 싶을 테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그럴 수도 없다. 기본적인 생계가 보장되어야 이 좋은 글쓰기를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50년 넘는 세월, 그 많은 시간 동안 도대체 뭘 하다 이제 와 글을 쓴다고 난리냐는 지적은 기꺼이 내가 감수해야 할 부분이다. 내내 뜬구름만 잡다 인생을 마감할 거냐는 경고도 받아들여야 한다. 인생이란 게 원래 그렇다. 한 가지를 얻으려면 다른 한 가지 혹은 그 외의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 법이다. 상대의 목을 취하려면 내 손모가지의 뼈 하나쯤은 내놓아야 하는 법이다.


부디 별다른 이상이 없었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좋아하는 글을 쓰면서 오래오래 건강을 유지할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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