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소풍여행
만추(晩秋)의 기록,
시간의 계단을 오르다
#가을여행 #사찰풍경 #늦가을감성 #인생의계절 #만추의색깔
짙푸른 하늘 아래, 산사의 단청이 유난히 선명하게 빛나던 날이었다.
켜켜이 쌓인 돌담 위에 핀 노란색과 보라색 국화들이 만개하여, 마치 세상의 모든 근심을 잊게 만드는 찬란한 카펫처럼 펼쳐져 있었다.
사진 속 "상왕산 개심사"라고 쓰인 건물 앞에 선 순간, 나는 그 장엄한 돌계단 앞에서 잠시 숨을 멈추었다.
이 계단은 단순한 길이 아니었다.
아래에 주차된 차들처럼 현실의 속도를 잠시 멈추고, 마음의 고도를 높여야만 오를 수 있는 시간의 계단처럼 느껴졌다.
계단 양 옆으로 길게 늘어선 국화 화분들은, 마치 이 가을이 우리에게 건네는 마지막 축복처럼 보였다. 화려함 뒤에 숨겨진 쓸쓸함, 그 역설적인 아름다움이 바로 '만추'의 본질이 아닐까.
경내를 벗어나 숲길로 발을 옮긴다.
듬성듬성 놓인 돌을 따라 이어지는 오솔길 은 우리의 삶을 꼭 닮았다.
때로는 평탄하여 숨을 고르지만, 이내 거친 돌계단 이 나타나 발걸음을 재촉한다.
길 위에는 이미 초록을 놓아버린 노랗고 붉은 낙엽들이 가득하다.
땅의 색깔로 돌아가기 위해 잠시 멈춘 시간들, 그 위를 걷는 발자국 소리는 세상의 모든 소음보다 명료하고 솔직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이 길 위의 나그네가 아닐까. 어디로 향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숲 속에서, 오직 앞만 보고 걷는 존재.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 하늘 은, 빽빽한 나뭇가지 사이로 파편처럼 부서져 빛났다.
길은 결국 우리를 품어주는 자연의 깊이와 넓이를 깨닫게 한다.
낙엽이 수면에 가득 떠 있는 작은 수로를 마주할 때, 걷는 속도마저 느려진다.
물에 비친 하늘과 단풍잎들은 마치 깊은 명상에 빠진 듯 고요하다.
저 물길이 산의 기슭에서 시작되어 어디론가 흐르듯, 우리의 기억과 시간도 멈추지 않고 흘러간다.
물 위에 뜬 잎사귀들은 이 모든 흐름에 자신을 맡긴 채, 기꺼이 종착지를 향해 가고 있다.
인생의 고단함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벤치 옆, 작은 강아지 집이 눈에 띈다.
지친 누군가를 위해 마련된 이 소박한 보금자리는, 우리 삶에 필요한 가장 중요한 위안은 결국 '멈춤'과 '쉼'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일깨워준다.
종각 앞에서 만난 화려한 국화들과 서화(書畫) 전시물들은, 이 고요한 공간이 단순히 과거에 머물지 않고 현재의 예술과 문화를 끌어안고 있음을 보여준다.
만추의 풍경은 우리에게 단지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고 앞으로 걸어갈 길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요구한다.
삶은 반복되는 계절과 같다.
지금은 낙엽이 지는 만추이지만, 이 끝이 곧 새로운 시작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눈앞의 길을 걷는 털 복슬복슬한 강아지처럼, 우리도 순수한 발걸음으로 이 계절의 끝과 다음 계절의 시작을 향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 가을의 기록은, 그렇게 시간을 통과하는 모든 존재에게 바치는 고요한 감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