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취미로 계속해서 연주를 하다가 중학교에 진학해야 하는 시기가 찾아왔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부모님께 진로를 국악으로 하고 싶다는 말을 했을 겁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인천의 어떤 중학교에 예술중점 학교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이 됩니다. 그중에 ‘국악’ 카테고리가 있었고 그곳으로 진학을 하고 싶어서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지만 그때 부모님은 너무 어린 나이에 진로를 결정해 버리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셨고 저는 그냥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엄마, 아빠가 싫다고 하면 굳이 안 해도 돼.’이런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엄마, 아빠를 너무 좋아하고 믿어서 그렇게 쉽게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그래도 굉장히 슬펐던 기억은 납니다. 아직도 담임선생님과의 그 면담은 잊지 못합니다. 그때의 교실 분위기, 선생님이 마치 ‘어떡해’ 하는 것 같은, 안쓰러워하는 표정 그리고 굉장히 슬펐던 감정까지. 선생님이 하셨던 말도 기억이 납니다. “수연아, 부모님이 반대하셔서 많이 속상했겠다. 그래도 부모님이 다 수연이를 위해서 정말 많은 고민 하시고 결정하신 거야. 좋아하는 거 다시 찾아보자.” 정확한 기억은 아니겠지만 대충 이런 말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초등학교 6학년 담임선생님이 진짜 좋으신 분이었습니다.) 이 위로를 받고 나서 그 잠깐은 슬펐어도 나름 아무렇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저는 일반 중학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대금을 전공하지는 못했지만 그만둘 이유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도 아주 꾸준히 국악청소년관현악단에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대금을 담당하시는 선생님이 바뀌게 되었죠. 저는 그 선생님과 꽤 친해졌고 제가 예술중점중학교에 가려다가 부모님의 반대로 가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쉬는 시간에도 혼자 연습하는 제 모습을 보시고선 저에게 진지하게 말씀하셨어요.
“너 정말 대금이 좋아? 전공하고 싶어?”
제 기억에 그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조금 아니, 아주 많이 소심했거든요. 제 의견을 잘 전달을 못하는 성격이었어요. 어쨌든, 그렇게 새롭게 오신 대금 선생님이 중학교 2학년 때 저희 부모님을 설득하셨습니다. 제가 대금을 좋아하는 모습, 다른 친구들보다는 잘하는 모습, 쉬는 시간에도 연습하는 열정정인 모습들을 보시고 그대로 전해주신 것 같아요. 그리고 전에 잠깐 말했던 소금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생각했다는 사건(?)도 언급을 하지 않았나 싶어요. 왜냐하면 대금을 전공하기로 하고 다른 레슨 선생님을 소개받았을 무렵 다시 만난 선생님에게 “너무 잘됐다. 그래, 크리스마스 선물을 소금으로 하는 초등학생이 어딨어.”라는 말을 들었거든요. 그때의 저는 정말 대금(소금)을 좋아했나 봅니다.
그렇게 저는 레슨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양재역 근처 지하 연습실이었고 내부는 살짝 어두웠습니다. 슬리퍼를 갈아 신고 문을 열고 들어가면 거실이 있었습니다. 거실에서는 소리가 엄청 울렸고(그래서 연습하면 잘하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자체 에코랄까요.) 방음부스가 있는 곳은 하나도 울리지 않아서 작은 소리까지 다 들리는, 답답한 곳이었습니다. 방음부스로 연습실과 레슨실이 구분이 되어있었고 굉장히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실에 탁자가 하나 있었는데 그곳에서 선생님과 부모님 그리고 제가 상담을 하게 되었어요.
저는 그때 처음 국립국악중고등학교, 국립전통예술중고등학교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에는 이 두 학교 말고도 국악고등학교는 더 있습니다만 제가 잘 모르기 때문에 제일 유명한 이 두 학교에 대해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국립국악고등학교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국악학교입니다. 그 원형은 국악양성소라고 볼 수 있겠죠. 이 학교는 보통 ‘국고'로 많이 줄여서 말하곤 합니다. 저도 이제부터 국고라고 말할게요.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는 그다음에 만들어진 학교로 ‘전예고'라고 부릅니다. 이 두 학교는 스타일이 조금 달라요. 국고 같은 경우는 정악(쉽게 말하자면 궁중음악)에 조금은 더 중점을 두었고 전예 고는 민속음악(산조, 판소리, 연희 등)에 조금 더 치우쳐진 학교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약간 ‘정악'이라고 한다면 국고를 떠올리고 ‘민속음악’이라고 한다면 전예고를 떠올리기도 합니다. 지금은 이런 인식(?)이 많이 없어지긴 했는데 예전에는 조금 심했을 것 같아요. 이제 저도 5년 전 이야기를 하는 거라서 현재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 두 학교의 교복은 스타일이 정말 다른데요...전예고는 앙드레김 디자이너 분이 교복을 만드셔서 굉장히 이쁜 것으로도 유명하죠. 어쩌면 여러분들도 SNS로 봤을지도 모릅니다. 국고의 교복은 나중에 사진으로 보여드릴게요!
여기서 약간의 국악인들만 아는 이야기를 하자면 약간 이 두 학교가 라이벌 같은 느낌입니다. 대학교를 대부분 이 두 학교에서 가거든요. 예전에는 국고가 조금 더 잘한다는 인식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만(제가 학교 다닐 때도 아주 조금은 그런 인식이 있었습니다.) 지금 보면 거의 비슷하다고 느껴집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게 대회장에 가면(특히 동아 콩쿠르처럼 큰 대회장) 국고와 전예고의 구역(?)이 있습니다. 편을 갈라서 모여있는 그 모습이 지금 생각하면 조금 웃기네요. 그때는 왜 그렇게 비교를 하고 견제했는지…
어쨌든, 레슨 선생님께 이런 국악고등학교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이 국악을 전공하기에 제일 좋은 루트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국고를 목표로 연습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저는 처음에 아주 열정에 불타올랐습니다. 당시 첫 레슨을 하기 전에 선생님께서 어떤 곡을 배울지 미리 알려주셨고 그 악보를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제 기억에 첫 곡이 ‘세령산’이었던 것 같은데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 조금 헷갈려요. ‘수연장'인지, ‘세령산'인지… 어떻게 이걸 까먹을까요. 어쨌든 ‘정악’을 먼저 배우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왜 하냐면 정악보에는 정말 많은 ‘꾸밈음'이 있습니다. 한 칸에 음이 적혀 있고 대부분 기호로 장식음이 함축되어 있어요. 이 표과 기호들을 외우지 못하면 연주를 아예 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선생님에게 잘 보이고 싶기도 하고 잘 배우고 싶어서 이 기호들을 조금 공부해서 갔습니다. 그래서 선생님께 아는 척을 조금 했죠. 그랬더니 선생님이 놀라시면서 칭찬해 주셨습니다. 이런 거 미리 공부해 오는 친구는 처음 봤다며 말이죠. 그 말이 제 기억에 콕 남았습니다. 엄청 기분이 좋았어요.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준비하면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레슨 하기 전에 긴장을 하기도 했지만 그때가 제일 편하고 재밌었던 시기 같아요. 아무것도 몰라서 틀려도 괜찮았던 시기. 조금 그립기도 하네요. 다음에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산조'의 시작으로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