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로는 수많은 백성들의 행렬을 매일 볼 수 있었다. 백성들은 제단에 꽃을 바치고 소원을 빌었다. 백성들 중에는 이틀이 멀다하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었고, 아주 먼 고을에서 온 사람들도 많았다. 자주 오는 사람들은 대개 큰 근심을 안고 있었다. 자신이나 가족 중에 아픈 병자가 있는 사람들이 가장 많았다.
아로는 병이 있는 사람들에게 달모시꽃을 달여 만든 물을 나누어 주었다. 꽃물을 마신 사람들은 어김없이 기운을 회복하고, 머지않아 병도 나았다.
소문은 금세 퍼져나갔다. 백성들은 앞다투어 아로를 찾아와, ‘죽을병도 낫게 해준다는 신비한 약’을 달라고 졸라댔다.
아로는 사람들에게 달모시꽃을 달여 마시라고 말해주었다.
“달모시꽃은 한밤중에 피었다가, 이튿날 먼동이 틀 때 녹아서 달못으로 들어가 버려요. 그 꽃을 따서 달여 마시면 아픈 곳이 낫게 될 거예요.”
아로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달못 근처 여기저기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삼삼오오 모여 웃고 떠드는 사이 하루해가 지고 샛별이 떠올랐다. 잠시 후, 달못이 일렁이는가 싶더니 거대한 황금빛에 둘러싸인 월백이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월백은 찬란한 광채를 사방에 내뿜으며 하늘로 떠올랐다. 월백이 달집으로 들어가고 온 세상에 달빛이 환하게 내리자,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꽃이 피어나길 기다렸다.
사람들은 밤새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하지만, 달모시꽃은 나타나지 않았다. 하얗게 먼동이 트고, 달이 달못 속으로 들어가고, 동쪽 산봉우리에 해가 솟을 때까지도 달모시꽃은 나타나지 않았다.
허탕을 친 사람들이 아로에게 원망의 눈길을 보냈다. 한 노인이 불평했다.
“예끼 이보시오! 달모시꽃이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이오?”
어리둥절한 것은 아로도 마찬가지였다. 아로는 미안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달모시꽃은 있어요. 그 꽃으로 약물을 달인 걸요. 하룻밤만 더 기다려 보세요. 달모시꽃은 반드시 피어나요.”
사람들은 하룻밤을 더 기다려 보기로 하였다. 낮엔 부리마을로 내려가 하루를 보내고, 밤이 되자 다시 달못으로 올라와 꽃이 피어나길 기다렸다. 하지만, 그날 밤도 꽃은 나타나지 않았다. 어안이 벙벙해진 아로에게 전날의 그 노인이 말했다.
“달님께서 우리에겐 그 꽃을 허락하지 않으시나 봅니다. 꽃을 다시 보면 부디 약이나 잘 달여서 우리에게 좀 나누어 주시오.”
사람들은 터덜터덜 돌아갔다. 아로는 이틀이나 기다리고도 빈손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마음 아프게 바라보았다.
‘어찌 된 일이지? 왜 꽃이 피지 않는 거지?’
집으로 돌아온 아로는 하루 종일 밤이 되기만 기다렸다. 그리고 달이 떠오르자, 곧장 달못으로 달려 나갔다. 그러자 이게 웬일일까? 달모시꽃이 눈부신 빛을 내뿜으며 사방에 가득 펼쳐져 있었다.
아로는 두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 채 중얼거렸다.
“이건 용서야…….”
아로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달빛이 아로의 얼굴 위로 쏟아져 내렸다. 아로는 눈을 감았다. 눈물이 두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눈물은 달빛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였다.
아로는 달을 향해 몇 번이고 절을 올렸다. 그날 밤, 아로는 피어 있는 꽃을 모두 따서 약을 달였다. 달인 약은 항아리마다 가득 채워두었다.
다음 날부터 아로는 달못을 찾아오는 모든 이들에게 약을 나누어 주었다. 이제 백성들은 오직 아로를 만나기 위해 달못을 찾는 일이 많아졌다. 아로는 백성들의 친구가 되었고, 백성들은 아로를 사랑했다.
백성들은 아로를 산할머니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산할머니가 언제부터 부리산에서 살기 시작했는지, 어디에서 왔는지 묻지 않았다. 부리산에서는 언제든 신비하고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기 마련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