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나 이유 없이 싫은 사람이 있다. 특별히 해를 끼친 것도 없고, 나와 직접적인 갈등을 빚은 것도 아닌데, 그 사람만 보면 마음이 불편하다. "저 사람은 그냥 꼴 보기 싫어." 이런 경험은 흔하지만, 동시에 쉽게 설명하기 어렵다. 왜 우리는 특정한 사람에게만 그런 감정을 강하게 느끼는 걸까?
심리학자 칼 융은 이 현상을 '투사(projection)'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투사는 본래 내 안에 있는 감정이나 성질을 타인에게 덧씌우는 심리적 메커니즘이다. 내가 받아들이기 힘든 내 모습이 다른 사람에게서 보일 때, 우리는 그 사람을 이유 없이 불편해하거나 과도하게 미워하게 된다.
회사 회식 자리에서 늘 나서서 말이 많은 동료가 있다고 하자. 그는 분위기를 띄우고자 애쓰지만, 나는 왠지 그가 거슬린다. "왜 저렇게 잘난 척하지?"라고 속으로 중얼거리지만, 사실 내가 억눌러온 주목받고 싶은 욕망이 그 안에서 반영된 것일 수도 있다. 반대로, 내가 늘 앞에 나서던 사람이라면, 그 동료는 내가 외면해온 수줍음과 조심스러움을 대신 보여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투사는 특정 상황에 국한되지 않는다. 가족, 직장, 친구, 심지어 낯선 사람에게도 일어난다. 이유 없이 불편하거나 과도하게 매혹되는 모든 순간에, 사실은 내 안의 그림자가 투영되어 있는 것이다.
HBO 드라마 〈석세션(승계)〉에서 로이 가족의 자녀들은 아버지 로건을 향한 복잡한 감정을 품고 있다. 특히 켄달은 아버지의 냉혹함과 권력욕을 증오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CEO가 되려는 과정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행동한다. 그가 아버지를 미워할수록,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행동은 로건과 닮아간다. 이것이 바로 투사의 역설이다.
또 다른 예로 〈작은 거짓말들〉의 르네타는 매들린의 과잉 친절과 참견을 견딜 수 없어한다. 하지만 사실 르네타 자신도 완벽주의적 통제욕을 가지고 있으며, 매들린의 모습은 그녀가 억눌러온 '인정받고 싶은 욕망'을 자극한다. 결국 르네타의 투사는 두 사람의 관계를 끊임없는 긴장 속에 가둔다. 이처럼 드라마 속 갈등의 상당 부분은 사실 인물들이 서로에게 투사하는 그림자의 충돌로 설명할 수 있다.
융은 이렇게 말했다."우리가 타인에게서 미워하는 것은, 대개 우리 자신 안에서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부분이다."
즉, 내가 싫어하는 타인의 모습은 사실 내 안의 억압된 자아다. 내가 욕망을 부정하면 욕망하는 사람을 미워하고, 내가 분노를 억누르면 화내는 사람을 혐오한다. 투사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 작동하지만, 동시에 나를 타인과의 불필요한 갈등 속으로 밀어 넣는다.
투사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나타난다.
첫째, 부정적 투사다. 내가 받아들이기 힘든 부정적 성질을 타인에게 전가한다. 예를 들어, 내가 게으름을 혐오하면, 주변 사람의 작은 휴식조차 "저 사람 너무 나태해"라고 과장되게 본다.
둘째, 긍정적 투사다. 반대로, 내가 억눌렀지만 갈망하는 자질을 타인에게 투사하기도 한다. 예컨대, 내가 용기를 갖고 싶지만 두려워할 때, 용감한 인물을 과도하게 숭배한다. 드라마 속 영웅 캐릭터에 과도하게 몰입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즉, 투사는 단순히 미움의 문제만이 아니라, 때로는 사랑과 동경의 근저에도 작동한다.
투사의 문제는, 내가 타인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데 있다. 나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내 그림자가 덧씌워진 모습을 보는 것이다. 그 결과 불필요한 갈등이 생기고, 때로는 관계가 왜곡된다.
예를 들어, 부모가 자녀에게 "너는 게으르다"고 반복적으로 말한다면, 그것은 사실 부모 자신이 억눌러온 게으름의 투사일 수 있다. 아이는 그 투사를 내면화하며 불필요한 죄책감과 자존감 손상을 경험한다. 이처럼 투사는 개인의 심리 문제를 넘어, 관계와 세대를 통해 전이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투사가 모두 해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투사는 오히려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내가 이유 없이 미워하는 사람, 혹은 지나치게 매혹되는 사람은 사실 내 그림자를 비추는 거울이다.
융은 강조했다."투사를 철회하는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그것은 자기 이해와 성숙을 향한 필수적인 길이다."
즉, 투사를 의식화하고 철회할 때, 우리는 타인을 더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고, 동시에 자기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당신이 이유 없이 불편해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 사람의 어떤 모습이 당신을 거슬리게 만드는가? 혹시 그것은 당신이 오랫동안 외면해온 내면의 한 조각은 아닐까?
이 질문에 정직하게 답하기 시작할 때, 투사는 단순한 미움의 메커니즘이 아니라, 자기 성찰의 거울이 된다.
다음 회 예고〈이태원 클라쓰〉의 새로이는 왜 복수할수록 장대희를 닮아갔을까? 우리가 누군가를 미워할 때, 사실은 그와 닮아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제6회에서는 "나와 닮아서 더 미운 얼굴"의 심리를 깊이 파헤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