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국가에서 왜 춘절을?

'중국식 설날'을 국가가 기념하는 인도네시아의 아이러니

1월 말에서 2월 초.
자카르타 글로독 거리와 쇼핑몰이 붉게 물든다.
용춤(Barongsai)이 울려 퍼지고, Angpao 봉투가 넘쳐난다.
심지어 관공서와 은행도 공휴일로 쉰다.


“여긴 이슬람 국가 아니야?”
놀라는 이들에게, 인도네시아의 복잡한 역사를 이야기해야 할 때다.



'중국문화 금지령'에서 '국가명절'까지

1965년, 수하르토 장군은 쿠데타를 계기로 권력을 잡은 후,
중국계를 ‘공산주의 세력’으로 간주하고
중국 관련 문화 일체를 금지했다.
중국어, 중국 신문, 학교는 물론이고
춘절에 행해지던 ‘용춤(barongsai)’조차 금지되었다. ‘린(林)’ 같은 성씨도 인도네시아식으로 개명해야 했다.

하지만 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 속에
극심한 빈곤과 정치 불안이 겹치면서
자카르타를 중심으로 반화교 폭동이 발생했고,
수백 명의 화교가 희생되며 전국적인 충격을 안겼다.

이 사건 직후, 32년 동안 장기 집권했던 수하르토는 결국 대통령직에서 하야했고,
이듬해 취임한 압두르라흐만 와히드(Gus Dur)는 중국계 인도네시아인의 권리를 회복하기 시작했다.

그는 중국문화 금지령을 폐지하고,
2002년부터 중국계 설날인 ‘임렉(Imlek)’을
공식 공휴일로 지정했다.
이슬람 국가에서 춘절이 국가명절이 된 순간이었다.




자카르타의 춘절은 '중국 문화' 아닌 '인도네시아 다양성'이다

이후, 춘절은
‘화교만의 문화’가 아니라 ‘다양성을 축하하는 국가 명절’로 인식됐다.
많은 이슬람계 인도네시아인들도 함께 춘절을 즐기고, 쇼핑몰과 시장은 붉은 장식과 세일로 활기를 띤다.

이는 단순히 문화적 개방이 아닌,
인도네시아가 다민족·다문화 국가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민족의식이 없다'기보다는,
‘누구의 문화든 국가의 일부로 수용하는 힘’이라 봐야 한다.




이슬람 다수의 나라에서,
'소수자였던 문화'를 국가가 인정하고 축하하는 건 인도네시아가 가진 관용과 복합성을 잘 보여준다.

여전히 인종차별과 정치적 논란이 남아 있지만, 그 붉은 장식들엔 단지 화려함이 아닌
"우리는 함께 살아간다"는 조용한 선언이 담겨 있다.





by 23년 차, 자카르타 언니






참고 자료

Tempo: Kenapa Tahun Baru Imlek Jadi Hari Libur Nasional?


BBC Indonesia: Sejarah diskriminasi terhadap etnis Tionghoa

Historia.id: Gus Dur dan Pembebasan Budaya Tionghoa

[칼럼] 1740년 화교 학살 사건
https://share.google/6V9qWeBETrPu0UAxB

Tempo: "Riwayat Larangan Imlek di Era Orde Baru"

Kompas: "Gus Dur dan Penghapusan Diskriminasi terhadap Etnis Tionghoa"

<그림 출처 ceknricek.com- 바타비아 화교학살 / 반 르우펜(Van Leupen) 그림의 한 부분 17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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