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 중 알게 된 한 친구가 차로 버스타는 곳 까지 데려다 주었다. 그 친구와 마지막 작별인사를 마치고 2년 가까이 공부한 플로리다를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애틀란타에 도착했다. 플로리다에서 애틀란타를 거쳐 시카고로 가는 여정이었다. 우선은 버스를 타고 애틀란타를 거치기로 하였다. 나름 그동안 고생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조금은 고급스러워 보이는 호텔에 머물렀다. 평소와 같았더라면 어림도 없었을 것이다. 싸구려 백패커 호스텔에 익숙했던 나에게는 조금은 사치와도 같이 느껴졌다. 체크인을 하고 주어진 방에 들어갔다. 고층 호텔이 좋긴 좋아보였다. 애틀란타 시내가 훤히 보였다. 하지만 공허한 기분은 숨길 수 없었다. 콘크리트 빌딩과 고속도로로 가득찬것 처럼 보이는 도시가 답답하게 느껴졌다. 빨리 떠나야 함을 암시하는 듯 했다.
그럼에도 세계 최대 수족관이라는 조지아 수족관에 가는 것은 빠뜨리지 않았다. 말 그대로 정말 어마어마한 수족관이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사람인 것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내가 저 안에 있었으면 어떨지 생각해보니 감사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수족관에 있던 동물들이 마치 나에게 나오고 싶다고 하는것 같이 느껴졌다. 그리고 얼마 후, 시카고로 향했다.
시카고도 도시 치고는 아름다워 보였다. 미시간호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바쁜 시카고인들의 머리를 식혀주는 듯 해보였다. 그러나 나의 마음이 쉽게 머물지는 못하였다. 그렇게 나를 종종 도와주었던 그리고 챙겨주었던 베트남계 미국인 응유엔 여사와의 통화를 마지막으로 곧 시카고를 떠났다. 그녀가 유독 마지막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너가 정착 하게 되면 연락줘.”
그러고는 나에게 그녀의 집 주소를 알려주었다. 이메일 주소도 아니고 집 주소다. 편지를 보내라는 일종의 암시와 같이로 느껴졌다. 아마도 그녀와는 평생 연락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와 그리고 절에 계시던 스님을 비롯 베트남 도반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크게 들었다. 먼 국 타지에서 가족같은 정을 느끼게 해준 사람들이었으므로.
곧 나는 시카고를 떠났다.
내가 선택한 행선지는 한국도 아니고 유럽도 아니었다. 그곳은 다름아닌 인도였다.
미국 시카고에서 인도 뉴델리로 향하는 비행기 안이다.
나의 긴 영적 여정이 막 시작되려는 시점이다.
그런데, 매우 운이 좋았다. 좋은 조짐처럼 느껴졌다.
나의 비행기 좌석은 통로 좌석.
‘첫 여정부터 운이 좋구나!’
더 운이 좋았던 것은, 나와 다른 여성의 좌석 사이에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간도 충분히 넓었다. 심지어, 비행 중 명상도 할 수 있었다. 시카고에서 인도까지는 약 14시간이 걸린다.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앞좌석의 스크린이 작동하지 않았다.
약 14시간의 비행이었다. 스크린이 작동하지 않으면 비행이 지루할 수 있었다. 한 객실 승무원에 따르면 이 좌석은 스크린이 작동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편안하면서도 비행이 지루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