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판을 내자
39주 0일, 내 아기는 나올 기미가 전혀 없었다. 자연진통을 기다리고 싶었지만 40주를 넘기고 싶지 않았다. 병원에 방문한 나는 39주 5일 제왕절개를 예약했다. 그전까지는 자연진통이 오길 바라면서.
제왕절개 날짜가 다가올수록 "유도분만이라도 시도해 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만 방법을 변경하려면 미리 산부인과에 연락해야 했다. 나는 밤을 새워가며 고민했다. 결국 "수술 이틀 전 토요일에 병원에 방문해서 내진을 해보고 결정하자"라고 마음먹고 그날 아침 일찍 병원을 찾았다.
출산은 아무도 모르는 거야.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예요.
후회 덜 남는 쪽으로.
후회하더라도 하고 후회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내진 후 결정하겠다는 내게 담당 의사 선생님께서는 내진을 백 번 해도 출산은 모르는 거라며 "후회가 덜 남는 쪽으로 선택하라"라고 조언하셨다. 옆에 있던 남편도 "그냥 해. 후회하더라도 하고 후회해!"라고 말했다. 그렇게 나는 유도분만 동의서를 작성하고 나왔다. 사실, 마음속엔 이미 답이 있었던 것 같다.
38주 5일째 되는 새벽. 산부인과로 향하는 길에 아빠에게 전화가 왔고 나는 눈물을 쏟았다. 마치 죽으러 가는 사람처럼 생이별을 앞둔 기분이었다. 사실 나는 출산이 두려웠다. 모든 인간이 미지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다고 하지만 출산은 다른 차원의 공포였다. 진통이 얼마나 아플지 무서웠고, 혹시 나나 아기가 잘못되진 않을까 걱정됐다. 남들이 다 하니까 쉬워 보였는데, 막상 내 일이 되자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니, 출산은 아주 무섭고 두려운 일이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아기가 알았던 걸까? 촉진제를 1단계부터 5단계까지 맞았지만 진통은 오지 않았다. 용기 내어 유도분만을 선택했지만, 진통조차 시작되지 않자 막연한 두려움은 더 커졌다. "그냥 제왕절개 할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자연분만은 능동적인 과정이라면 제왕절개는 누군가 나를 도와주는 수동적인 분만처럼 느껴졌다. 상대적으로 쉬워 보였달까. 7시간의 유도분만이 끝났고, 주치의가 말했다.
내일 새벽 6시에 다시 한번 해보죠
그렇게 나는 다시 한번 도전하기로 했다. 새벽 6시, 촉진제를 맞자마자 자궁수축이 시작됐다. "이번엔 되겠다!" 하지만 진통은 여전히 무서웠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임신했으니 결국 출산은 피할 수 없는 일. 오늘은 어떻게든 아기를 낳겠다는 마음으로 유도제를 맞았다. 갑자기 태아의 심장박동수가 130에서 80으로 떨어졌다. 태동측정기에는 빨간 불이 들어왔고 요란한 경보음이 울렸다. 간호사 여러 명이 급히 들어왔다. 나는 처음으로 산소호흡기를 꼈고 다행히도 간호사 선생님들의 빠른 대처로 아기의 심장박동수는 다시 안정됐다.
이제 할 만큼 했다.
이틀 동안 이어진 유도분만으로 나는 지쳤고 내 아이도 그랬던 것 같다. 결국 나는 제왕절개를 하기로 결정했다. 출산 방법을 수도 없이 고민했지만 이렇게 확고한 마음이 든 건 처음이었다. 그렇게 나는 "유도분만 실패 후 제왕엔딩"을 맞았다.
다들 출산이 가까워지면 아기를 본다는 기대감에 설렌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기대감보다는 두려움이 더 컸다. 아이의 생김새가 궁금했던 건 잠깐, 그보다 출산에 대한 막연한 공포가 더 컸다. 나는 항상 현명한 선택, 최적의 선택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출산 방법에서도 나는 일종의 정답을 찾고 있었다. 정답이 없는 게 정답이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엄마가 될 준비
그렇게 나는 엄마가 되었다. 엄마가 될 준비보다는 육아용품만 준비하기에 바빴던 임신 10개월. "이런 엄마가 되어야지", "이렇게 아이를 키워야지" 그런 고민조차 하지 못했다. 아니, 하지 않았다. 아직 준비가 안 됐는데 갑자기 엄마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출산한 지 54일 차인 오늘, 나는 아직도 '엄마'라는 말이 많이 낯설고 어색하다. 하지만 이 낯섦 속에서도 나는 천천히 엄마가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잊지 않으려 한다. 엄마이면서도 나로 살아가는 일도 소중하다는 것을.
낯설지만 따뜻한 하루들.
엄마가 된 후에도 ‘나’를 잃지 않기 위해 씁니다.
육아와 나 사이의 균형을 찾아가는 엄마가 된 '나'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