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10개월 동안 뭘 하지?
임신을 확인하자마자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이 긴 시간 동안 뭘 하지?’ 나는 ‘생산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임신 기간 동안 태아를 건강하게 잘 키워내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일이지만, 그걸로만 만족할 수는 없었다. 새로운 직장을 들어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기에, 무얼 하면 좋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임신 10개월이라는 시간을 조금 더 ‘알차게’ 보내기 위한 몇 가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블로그를 다시 해보자!
대학생 때 취미 삼아했던 블로그가 꽤 큰 규모로 성장했던 적이 있었다. "대외활동 경험 하나도 없는 3학년의 대외활동/취업 도전기"라는 컨셉으로 운영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다. 친구들도 블로그 검색을 하다가 종종 내 블로그에 왔다며 말하곤 했다. 심지어 첫 인턴 생활 중, 상사가 내 블로그를 우연히 발견했을 정도다. 당시엔 그게 왜 그리 부끄러웠는지, 고민도 없이 블로그를 닫아 버렸다. 지금도 후회하는 중이다.
아무튼, 임신기간 동안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블로그라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좀 다르게 시작했다. 대단한 주제는 아니었다. 동네 맛집, 카페, 제품 등을 리뷰하는 흔한 블로그였다. ‘생산성’과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였지만, 나는 이 활동에 꽤 진심이었다. 하루에 한 번은 꼭 어딘가를 방문했고, 그 경험을 정리해서 포스팅했다. 열심히 하다 보니 블로그 체험단에 선정되기도 했고, 맛집 탐방이나 제품 체험 같은 것들이 경제적으로 꽤나 도움이 됐다.
막달까지 운동하는 임산부 되기!
임신 초기를 제외하고는 38주까지 주 2회씩 필라테스를 했고, 하루에 기본 만보 정도는 걸었던 것 같다. 운동 덕분인지 임신 기간 동안 8kg 밖에 늘지 않았고 출산과 동시에 원래 몸무게로 돌아오는 건 식은 죽 먹기 만큼 쉬웠다. 필라테스를 꽤 오래 했기 때문에 운동에 은근한 자부심이 있었고, 그렇기에 자연분만을 당연히 잘할 줄 알았다. 사람 일은 모른다고 했던가, 나도 결국 '제왕엔딩'을 맞이했다.
용돈을 벌자!
블로그 체험단을 하면서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긴 했지만, 실질적으로 현금을 받는 것이 아니었다. 소소하게라도 현금을 받을 수 있는 알바를 찾고 있었는데, 마침 이모가 운영하는 학원에서 주 2회, 3시간씩 수업을 맡아보지 않겠냐는 제안이 들어왔다. 좋은 기회였다. 그렇게 9개월 차까지 알바를 하면서 용돈도 벌고, 매주 두 번씩 일터에 나가는 즐거움도 누렸다. 집에만 있던 나에게는 정말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그때 알게 됐다. 나는 ‘밖에서 일해야 살아나는 스타일’이라는 걸. 집에서 조용히 우아하게 쉬는 그런 성격은 아니었나 보다. 임신 기간에도 편하게 쉬지 못하는 내 성격이 가끔은 아쉽기도 했다.
이제 와서 돌아보니, 임신이라는 명백한 '쉴 수 있는 이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몸은 쉬었지만 마음은 끝내 쉬지 못했던 것 같다. 오히려 직장을 다니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생산성'이 빠진 삶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내가 얼마나 나 자신을 '무엇을 하느냐'로 평가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그래서 임신 10개월은, '존재만으로도 괜찮다'는 연습의 시간이 되었다. 나를 일에서 떼어놓고도 사랑할 수 있는지, 가만히 있어도 소중한 존재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그걸 매일 조금씩 배워야 했다. 앞으로 어떤 삶을 살든, 그 열 달은 내 안의 속도를 조금 늦추는 법을 가르쳐준 시간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쉬는 건 어렵지만, 적어도 나 자신을 덜 몰아붙이는 연습은 계속될 것이다.
낯설지만 따뜻한 하루들.
엄마가 된 후에도 ‘나’를 잃지 않기 위해 씁니다.
육아와 나 사이의 균형을 찾아가는 엄마가 된 '나'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