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테스트기에 아주 진한 빨간색 두 줄이 생겼고, 나는 처음으로 산부인과를 찾았다. 의사 선생님이 "이게 아기집이에요"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이제 임신이 된 거구나'하고 안심했다. 하지만 그건 단지 시작이었다. 아기집이 보인 뒤엔 난황이 보여야 하고, 그다음엔 아기가 있어야 하며 그다음엔 심장소리를 들어야 한다. 마치 게임 퀘스트를 깨듯, 다음 단계를 통과해야만 하는 여정이었다.
될놈될: 될 놈은 된다
임신 초기 2주마다 병원에 방문하면서 "혹시나 잘못되었으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이 종종 스쳐 지나갔다. 초기 유산이 많다고 들었기 때문에, 나도 예외는 아닐 수 있다는 불안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마음속으로 "될놈될"을 외쳤다. 될 놈은 되고 태어날 아이는 결국 태어난다는 믿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위한 나만의 주문이었다.
불안은 임신 초기만의 감정이 아니었다. 임신 10개월을 보내고 보니 매 순간 막연한 불안감이 닥치는 순간이 있었다. 1차 기형아검사, 2차 기형아검사에서 결과가 좋지 않을까 봐 걱정했고, 정밀 초음파에서는 신체적인 결함이 있을까 불안했다. 태동이 느껴지는 막달이 되면 조금 편안할 줄 알았는데, 인터넷에서 본 막달 사산 글들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출산이 다가왔을 땐 출산 중에 아기나 산모가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들이 어찌나 눈에 들어오던지, 그럴 때마다 나는 애써 "될놈될"을 되뇌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특히 임신, 출산에서는.
나이를 먹을수록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한정적이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임신과 출산을 통해 더 절실히 깨달았다. 임신을 한다는 것 자체가 흔히 사람들의 말하는 "신의 영역"이며, 출산 또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자연진통을 기다렸지만 기미가 없어 유도분만을 했고, 그마저 실패해 결국 응급제왕절개를 하게 됐다. 이 모든 것은 내 출산 시나리오에 없었지만, 그렇게 출산은 이루어졌다.
무엇보다 10개월 임신 기간 동안 다양한 퀘스트(?)를 지나오며 건강하게 출산한다는 것이 얼마나 기적과 같은 일인지 알았다. 그 기적을 이룬 모든 이들, 우리 곁의 부모들,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찬란한 존재인지 새삼 깨달았다. 사람들은 '아이가 태어나면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뀐다'라고 말한다. 나는 그 말을 조금 다르게 느꼈다. 세상을 보는 눈이 아닌 사람을 보는 눈이 바뀌었다. 그냥 존재하고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모든 사람이 존귀한 기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낯설지만 따뜻한 하루들.
엄마가 된 후에도 ‘나’를 잃지 않기 위해 씁니다.
육아와 나 사이의 균형을 찾아가는 엄마가 된 '나'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