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어떻게 생겼니?
‘어떻하지…. 나 지금 속에 옷 하나도 안입었는데… 나 지금 가운 한장만 입고 어떻게 해? 화장실 가고싶으면 어떻게 해야하지?’
응급실에서 레지던트로 보이는 젊은 의사 한명은 내 아랫배에 손을 얹고서 계속 맛사지를 했다.
아프다고 그만해 달라고 여러번 말했으나 그 어떤 눈길없이 그는 나에게 자비없는 손으로 주먹만한 동그라미를 그려가며 아랫배를 계속 누르기만 했다...
<낯선 병원 그리고 홀로 된 나>
출산하지 3시간 경과.
큰 병원으로 전원한 나는 곧 차갑고 낯설은 공간에 혼자가 되었다.
“선생님… 너무 아파요. 지금 누르시는 거기가 너무나 아파요. 이제 그만 누르면 안되요? 너무 아파요”
“자궁이 수축하려면 맛사지를 계속 해줘야 해요. 지금 자궁이 수축이 안되서 어서 수축해야 해요… 아파도 조금만 참으셔야 해요…”
아까전까지만 해도 머리위에서는 남편과 주취의로 보이는 의사선생님의 대화가 들렸는데 레지던트같던 의사도 없고, 남편도 없고, 나 혼자밖에 없었다.
“보호자는 여기 사인하세요. 지금 빨리 수술 들어가야 합니다. 어서 동의서에 사인해요.
지금 응급으로 빨리 안하면 이거 자궁 적출까지 해야 할 수도 있어요. 아직 젊으신데 자궁은 살려야죠.”
“산모님, 본인 성함이 어떻게 되나요? 키랑 몸무게는 어떻게 되세요? 지금 계속 어지러우실까요?”
“선생님 저 안 어지러워요. 저 아무렇지 않아요. 배만 아프고 다른데는 괜찮아요, 그런데 지금 어디로 가는거에요? 왜 가야해요? 저기요 선생님, 배 그만 누르시면 안되요? 그쪽 지금 너무나 아파요.”
아득하던 그 목소리들은 어디간걸까?
난 지금 어디에 있는거지?
<수술 그리고 중환자실>
금요일 저녁 5시에 응급실에 도착했던 나는 밤 9시에 긴급으로 자궁 내 동맥차단술을 받았다.
응급상황이었고, 많은 사람들에 쌓인 채 엄청 밝은 전등밑에 누워있었다.
국소마취만 된 상태라서 사람들의 움직임을 느꼈다.
출산의 여파가 여전히 몸에 남아있던지라 몸을 비틀었으나 집도하는 의사는 차갑게 말했다.
"움직이시면 안됩니다. 지금은 절대 가만히 계셔야 해요. 움직이지 마세요"
다다다다다다…
누군가가 저 복도 끝에서 수혈팩 여러 봉을 들고는 급하게 수술실로 들어와서 내게 혈액을 공급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 다시 수혈팩이 수술실로 들어왔다.
그날 나는 전혈과 혈소판을 합해서 9팩의 수혈을 받았다고 들었고, 주변 가족들의 헌혈증 덕분에 큰 무리없이 수혈을 받을 수 있었다.
산부인과의 빠른 대응과 긴급하게 받은 수혈, 그리고 응급 수술 덕분에 다행히 나는 살아났다.
물론 수술직후엔 수십개의 하얀 백열등이 촘총하던 무서운 중환자실에서 밤을 지샜지만 그동안 출혈량은 크게 떨어졌고,
밤사이 경과만 지켜보면 다음날에 일반실로 올라갈수 있다고 했다.
중환자실은 정말로 지금 다시 생각해도 무서웠던 곳으로 기억된다.
내 옆에 계신 환자분은 호흡을 제대로 못하셔서 기계소리만 났었다.
나는 잠을 청하려 눈을 감았으나 시간을 보면 5분이 지났고, 또 다시 시간을 보면 10분이 지났다.
누군가는 2시간 간격으로 와서 피묻은 내 기저귀를 갈아주고 갔다.
지금까지의 내 인생에 가장 길고 아득하리 무서웠던 긴긴 밤이었다.
나처럼 홀로 중환자실 복도앞에 남아 있었던 남편도 아마 평생의 긴긴 방이였을테지...
<남편의 정성과 사랑>
남편이 정성스럽게 준비한 ‘출산을 축하해요’ 플랜카드,
풍선과 꽃과 케익이 가득한 산모의 방도 방의 주인을 잃고 울었다.
덩그러니 방에 준비되어 있던 축하 선물들은 다른 이들에 의해 무심히 정리되었다.
남편의 슬픔이 저릿하다.
아기는 산부인과 신생아실에서 3일을 홀로 보낸 후 집에 와 친정 엄마의 품에서 품어졌다.
남편은 입원해 있는 일주일 내내 병실에서 내 옆을 지켰고, 출산 후부터 돌기 시작된 모유를 아기에게 전달하는 셔틀이 되기도 했다.
병원에 있는 동안 기저귀 갈아주기를 마다하지 않고 극진하게 나를 살펴주기를 여러날이었고, 아기의 모습을 사진 찍어와 나에게 보여주는 번거로움도 기꺼이 해주었다.
여러해가 지나고서야 알았다.
남편은 가족 분만이라는 출산방법을 견디기 어려웠던 사람이었다는것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렇게 많은 출혈을 보게 되었고,
병원에 입원해 있던 나를 간호하는 동안 계속 볼수 밖에 없었던 혈액의 흔적이 그의 깊은 트라우마로 남았다는 사실을...
병원에서 사용했던 물티슈의 냄새를 거북해했고, 상당히 오랜기간 잠자리도 거부했던 그는 홀로 힘든 시간을 견뎌야만 했다. (실제로도 생각보다 많은 남성들이 가족분만에 따른 정서적 부작용을 겪는다고 하니 출산시 남편도 함께 분만에 참여할지를 선택하는건 상당히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그때의 남편을 생각하면 여전히 눈시울이 뜨겁고 또 곁을 지켜주었던 감사의 마음이 크다.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가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꽃망울을 터트렸고,
따뜻한 햇살과 부드러운 바람의 감촉의 배웅을 받으며 진짜 나의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와의 첫 만남>
위기와 고비가 많았던 나의 첫 출산은 일주일의 여정을 끝으로 그제야 아기와 나의 만남을 허락했다.
아기의 손가락은 5개, 발가락도 5개, 눈코입 모두가 있어야 할 제자리에 다 있어서 신기했다.
작았고, 귀여웠고 그새 태어나 며칠은 지났다고 벌써 배냇짓을 하고 있었다.
아, 너무나 예쁘다.
<성장한 아이, 그리고 엄마인 나>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던 아기는 어느새 고등학생이 되어 나의 울타리를 떠나려 한다.
세상에서 온 아기를 만난때가 나는 지금도 이리 생생한데 언제 이렇게 큰 아이로 자랐을까 싶다.
출산의 두려움 때문에, 그리고 산부인과 원장님의 어려운 조언 때문에 남들처럼 소중한 동생을 만들어 주지 못했다.
아이는 형제 없이 혼자 외동으로 자라났다.
이제는 곧 우리의 품을 떠나서 저만의 세상에 나가야 하지만 우리 곁에 있는 동안에는 아이의 걸음을 방해하는 돌이 있다면 그 돌맹이를 옆으로 조금 치워주는 정도로 아이의 앞 길에 도움을 줄까 한다.
잘 할꺼라 믿으니 우리의 믿음처럼 아이는 괜찮은 사람으로 빛나게 성장할 것이고, 그가 살아갈 찬란한 앞길을 크게 응원해 주겠다.
아들아, 내 곁으로 와 주어서 고맙다.
좋은 사람으로 잘 성장해줘서 더 고맙다.
사랑한다.
<2009년의 아들은 2025년에 여전히 사춘기>
격하게 아들의 사춘기를 겪고 있는 현재의 아들...
이 글을 쓰다보니 정말 죽을 고비를 간신히 넘기며 아들을 출산했던 16년 전 생각이 떠오른다.
항상 아들과 남편에게 상냥해야겠다는 결심을 하지만 이 결심은 오히려 무너질 때가 더 많다.
오늘도 고 1학년 2학기중간고사 이후 투덜거리며 오답노트를 작성하는 아들에게 한소리 하며 화를 냈다.
투정부리며 입을 삐쭉거리던 아들은 오늘 새벽4시에 일어난 탓에 너무 힘들다며 저녁 7시부터 침대에 들어가 잠들어버렸고, 나는 아이의 잠든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그의 머리칼을 조심스레 쓰다듬으며 혼자 되뇌여본다.
아들아, 오늘 유독 투정도 부리고 불편한 마음에 엄마에게 짜증도 많이 냈지만,,,
엄마는 너를 많이 많이 사랑해.
건강하게 지금처럼만 잘 자라나주렴..
그리고 어서 이 격변의 사춘기가 지나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