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버리고 싶은 감정이 있다.
오래전 나에겐 평소 쌓여가는 내 감정을 버리던 일기장이 있었다.
언젠가 조금 더 어른이 된 후에 아주 후련하게 쓰레기통에 불태워 버렸지만...
학창시절 내 안에서 써내려가던 편지, 일기, 글, 시, 대략 이런것들의 끄적임.
200매정도 되는 두께의 스프링노트 여러권에 나의 감정들을 수십번,수백번 버리기를 반복했다.
그때의 일기장은 내 감정의 쓰레기통...
혹여라도 부모님이나 동생이 볼까봐 침대 밑에 서랍 뒷쪽으로 아주 깊숙하게 숨겨두었던 그 방은 나의 찬란한 사춘기시절을 숨겨둔 곳이었다.
중학교 2학때부터 고등학교 2학년때까지 약 4년간을 매우 세세히 기록했던 나는 이미 그 시절부터 쓰기를 좋아하던 사람이었는지 모른다.
어느해인가는 한해동안 두꺼둔 스프링노트 3권까지 쓰던 적도 있었는데,
그 시기에는 수업 필기노트보다 그 노트가 더 보물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만약 그 시간에 공부를 했으면 조금 더 좋은 대학을 갔을지도...
하지만 나는 언제나 그 일기장들이 다른 이의 눈에 뜨일까봐 숨기는데 급급했고,
그럼에도 마음이 힘들때면 또 꺼내서 손가락이 욱신거리게 아플때까지 글씨를 써 내려갔다.
친절했지만 내게는 너무도 따끔거리던 우리엄마, 좋아했던 사람의 불편한 현실, 뒷돈을 요구하던 담임의 폭력, 오르지 않는 정체된 성적, 지겹도록 답답하고 어려운 수학문제, 끝없이 빽빽이처럼 외우던 영어단어, 벗어나지 못하는 매순간의 공부는 언제나 가장 힘들었다.
친구랑 싸우고 나서도 쓰고, 싸운 친구가 뒤돌아보지 않고 나를 떠났을때도 쓰고, 내 마음에 품었던 누군가에 대한 마음도 쓰고, 그들로부터 상처 입었던 나의 몸과 마음을 세세하게 써내려 가며 곪아가는 감정을 버려갔다.
때로는 꽉 차버린 쓰레기통을 비우기도 하며 그렇게 10대의 시절을 보냈던 기억이 있다.
감정이란 흐르는 대로 그냥 두는것도 좋지만,
때로는 물길을 만들어서 흘러가는 방향을 잡아주는것도 필요할지 모른다.
또한 어른이 되어도 때로는 감정의 표현에 서투르고 어떻게 다스림을 해야하는지를 놓치는 경우가 있다.
최근 다시 필사를 하고, 글을 써가면서 내 감정의 길을 다시 잡아가본다.
어릴적에는 쓰레기통에 버렸던 감정이었으나,
성인이 되면서 부터는 감정의 흐름을 성숙한 어른처럼 대처하려하고 그 감정이 더 커지지 않도록 강약을 조절하려고만 했다.
하지만 감정도 때때로 버릴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묵은 감정은 언젠가 곪아지기 마련이다.
쓰레기통이 가득 차기 전에 중간중간 비워주자.
너무 많이 채워지면 깊숙하게 있는 것에서 불편한 냄새가 날수가 있으니 꽉채우지 말고 틈틈히 비워주자.
아들이 어느새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다.
지금의 그 아이도 학창시절의 나처럼 감정의 쓰레기통을 찾고 있을지 모른다.
그의 쓰레기통을 비난하거나 흉보지 않도록 하고,
오염된 쓰레기가 넘치지 않도록 그에게도 조용하게 알림을 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