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을 깨고 나오다
"춥지는 않으세요? 어지러워요? 제가 잘 보이시나요?
현재 출혈량이 좀 많아요. 아무래도 지금 바로 이동을 해서 수혈을 받아야 할 것 같아요.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수혈 받으면 괜찮아 질꺼에요."
누워있는 침대의 발 끝에서는 분주함이 느껴졌고, 가운 한장만 홑겹으로 걸친 나는 곧 도착한 이동형 침대 위에 놓인채로 119 구급대원들에 의해 차가운 한기를 뚫으며 앰뷸런스로 이동을 했다.
이동거리는 약 15분, 싸이렌이 울리고 내 곁에는 남편과 의사선생님이 계셨다.
설마, 드라마에서 보던 장면이 내 인생에서도 연출되는 것인가?
<첫만남>
서로 붙어있지 않은 명확한 두개의 선.
핑크색인 듯 보라색인 듯, 두개의 줄로 완전히 분리된 독립적 존재를 표시한 이 특별한 기호는 우리의 첫 만남을 암시했다.
“축하드립니다. 현재 임신 5주차이고 태아의 크기가 6mm에요. 아직은 심장 뛰는 소리가 안 들리니 다음주에 다시오셔서 초음파 한번 더 보시지요”
1주일 후 듣게 된 뱃속에서의 기차소리.
“쿵궁 쿵궁 쿵궁 쿵궁 쿵궁 쿵궁 쿵궁…….”
세차게 들리는 심장소리는 나와 남편의 마음에 닿았고 우리의 ‘미리(mm)’가 되어 행여 다칠새라 내 품에서 40주를 고이 품었다.
39주차까지 치열하게 출퇴근하며 보냈던 시간을 뒤로하고 드디어 출산휴가에 돌입했다.
드디어 생명의 시작을 알리는 것인가, 39주차부터는 점차 치골과 골반에 통증이 가해지기 시작하고, 몸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었다.
치골 깊은 곳을 둔기로 맞은 듯한 통증, 곧 지금이라도 튀어나올것 같은 참외배꼽, 부풀어 터질 것 같은 남산만한 배는 이제 곧 안녕이다.
미리는 이 좁은 곳을 탈출하고 싶은 강한 의사를 나에게 온몸으로 전하고 있었다.
<출산일 당일 오전>
40주 출산 예정일 당일.
자궁에 눌린 방광은 매일 새벽 산모를 화장실로 불러낸다.
오늘은 규칙적인 통증이 더해졌다.
통증의 간격은 7분.
조금씩 아프다가 곧 괜찮아지고, 다시 자리에 누으니 또 생리통처럼 배가 아프다.
아, 오늘이 내 인생의 굵은 획의 순간, 운명의 그날인가
10대 고통 중에 4순위로 아프다는 출산이 오늘 역사적으로 이루어 지려나.
임신이 시작된 순간부터 두려웠던 출산... 오늘이 그 마지막 종착점이다.
태어나서 가장 두려움이 커지는 순간이었다.
너무나도 많이 무섭다. 얼마나 아플지 모르니 미지의 고통이 정말 무섭다.
20대 초반에 나를 낳았던 우리엄마는 평생의 고통과 눈물을 나 낳을때 다 쏟았다고 했다...
작년에 출산한 내친구는 20시간 진통을 했다는데…
점점 더 무서워지고 고통의 정도를 가늠할수 없는 극강의 공포가 나를 더 두려움속으로 가두었다.
새벽 4시부터 7분간격, 지금은 5분 간격으로 진통...
잠시후면 1분 간격으로 진통이 오겠지...
나 과연 의연하게 마칠 수 있을까...
정말 잘 해낼 수 있을까...
아침 일찍 병원과 통화를 마치고는 곧장 짐을 싸서 병원으로 출발했다.
다시 돌아올때는 혼자가 아니라 둘이 되어서 돌아 오겠지
그때까지 무사하길...
병원에 도착 후 내진을 해보니 자궁이 이미 4cm정도 열린 상태라 아마도 오전 중에 출산할 수도 있겠다며 분만실로 이동을 했다.
“선생님, 저 너무 무서워요. 무통 주사는 못맞나요?”
“산모님 염려 말아요. 무통주사 안 맞아도 우리 엄마는 출산 잘하실 수 있으니 염려마시고 이따가 분만실에서 뵈요”
단호한 원장님은 무통주사를 권하지 않으셨고, 그저 나에게 출산 잘 할수 있다는 말만 남겨주셨다.
(요즘같은 2025년도 출산하시는 산모들은 무통없는 출산을 상상도 못하실테지...)
동네의 개인 산부인과 전문의로는 잔뼈가 굵은 베테랑 선생님이셨지만, 내가 겪어야 하는 출산과 고통은 선생님의 노하우와는 별개가 아닌가,
물론 이 동네의 초중고 아이들 수백명 아니 그보다 더 많은 아이들이 거의 대부분 이 산부인과에서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출산을 많이 하는 신뢰 높은 병원이었다.
하지만 나는 여느 산모들처럼 출산의 과정이 두려운 초짜 산모였고,
죽을만큼 아프다는 고통은 오늘 내가 감내해야 하는 엄청난 산봉우리였다...
<관장 그리고 진진통의 시작>
출산의 과정은 생각보다 부끄러움을 넘어서는 불편하고 수치스럽다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존재했다.
사람마다 상황을 받아들이고 인지하는 개인차가 있겠지만,
내가 이런 모든 과정을 타인의 시선 앞에서 오롯이 견뎌야 한다는 사실은 십여년이 지난 지금도 나를 매우 부끄럽게 한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일까,
왜 나는 이런 자세한 사실들을 병원에 와서야 정확하게 알게 되었을까.
아무도 나에게 알려주지 않았던 출산의 뒷이야기는 생각보다 용기가 필요하다.
관장부터가 정말 난처한 상황의 시작이다.
분만실 간호사선생님은 나의 장안에 주사기로 엄청난 양의 관장액을 넣었다.
허억,,,, 관장이 이런거야?
관장액이 장에 들어온지 대략 3~4분정도밖에 안지난것 같은데 급격한 속도로 나의 장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하체의 모든 관절뼈가 둔기에 맞은 듯 아픈상태에서 화장실까지 이동해야 하는 1분 1초는 내 배출의 욕구를 참아내기에 그마저도 고통의 시간이었다.
관장액은 장안에 것들을 한번에 배출시키지 못한채 여러차례 배설을 유발했고,
가진통에서 진진통으로 넘어간 내 통증은 점점 더 간격이 짧아져서 더 이상은 이동조차 할수가 없었다.
이동이 불가능한 나는 분만대 위에서 관장액으로 인한 후처리를 간호사 선생님들에게 넘겨야 했고,
나중에 알고 보니 이는 자연분만을 하는 산모들에게 일반적으로 발생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아, 나만 몰랐나...
진통으로 인한 고통은 점점 더 농도가 짙어졌다.
치골 뿐만 아니라 회음부부터 내 생식기관 전부위가 동시에 아팠다.
분만대에 올려진 내 몸에 많은 장치들이 달렸고, 이는 자궁의 수축상태와 태아의 움직임을 측정하여 분만의 결정적인 순간을 확인하기 위한것 같았다.
간호사들은 오염을 방지하기 위함인지 주요 부위를 쉐이빙했고,
배변하는 것처럼(쉽게 말해 응아를 하듯이) 항문까지 모두 열어서 힘을 주라고 했다.
요즘의 젊은 산모들은 브라질리언 왁싱을 하고 출산하러 간다하니 역시 똑똑하다.
미리 알았으면 나도 왁싱이나 아니면 쉐이빙이라도 내가 하고 갔을텐데...
자책한들 이미 내 몸은 분만대 위에 있어 소용없다.
하긴... 혼자 머리도 못 감고, 발톱도 못 깍고 신발도 못 신었던 어제의 나를 잊었던가…
아직도 기억하기 싫은 수치스러운 일이지만,,,
누군가의 시선 아래에 나의 배설은 적나라했다.
하지만 이성을 컨트롤 할수 있을만큼의 육체가 아니었다.
통증은 나를 몸부림치게 했고, 숨조차 못 쉴만큼 온몸이 뒤틀리게 아팠다.
아, 신랑은 어디간거야…
아빠가 없는 동안 애기 나오면 어떻해…
어디갔어,,, 나 너무 무서운데…
산모도 고통스럽지만 아이는 산모보다 몇 배 더욱 고통스럽다고 들었다.
다만 그 기억을 하지 못할 뿐.
산고의 고통을 이겨내는 산모의 아름다움은 없었다.
신비로운 생명의 탄생, 모성, 남편이 함께하는 가족 분만, 탯줄을 자르는 아빠의 이벤트, 출산 직후 산모가 아기에게 바로 젖 물리기 등의 모습은 어쩐지 불편한 출산을 미화한 것처럼 느껴졌다.
메슥꺼리고 신물이 올라오던 입덧을 시작으로, 출산이 다가올수록 터질듯이 부풀어 버린 배, 곧 튀어나올 것 마냥 볼록하게 바깥으로 삐져나온 배꼽, 수십마리의 지렁이가 기어가듯 붉게 세로선으로 찢어진 피부, 단 9~10개월만에 급격하게 10kg 이상 증가한 체중, 터질 듯 부푼 가슴까지 이 모두가 임신하고 10개월동안 나를 여성이 아닌 새끼를 품은 암컷으로 만들었다.
태어나서 처음 맞이하는 생소하고 참을 수 없는 신체적 고통, 끝없이 계속되는 진통에 절로 움직여지는 몸부림, 관장과 배설, 난자하게 밑으로 흘러내리는 선혈, 회음부 절개, 젖몸살… 불편하고 여성이 감내해야 하는 불평등하게 느껴졌고 도저히 도덕적인 이성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불편한 일들이 나의 아랫부위 앞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극강의 고통 그리고 출산>
어느 덧 오전이 지났지만 생각보다 출산이 지연되었다.
간호선생님들도 계속 대기상태로 나를 주시했고 자궁문은 거의 다 열렸지만 아이는 좀처럼 천천히 움직였다.
진통 중에 너무 고통스러워 몸을 비틀면 누군가의 손이 내 몸으로 들어와서 자궁을 건드리는 것 같았다.
보이지 않아서 잘 모르겠으나 아마 간호선생님의 손이 내 산도안으로 들어와 아기의 길을 먼저 열었던 것은 아닌가.
통증의 간격은 점점 짧아져서 어느 틈에 3분, 2분,… 이젠 간격도 없이 그냥 계속 진통…
하늘이 하얗고 귀에서는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
기억나지 않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남편은 아이가 나올 수 있도록 내 배를 위에서 아래로 엄청나게 밀었다고 하는데 진짜였을까?
엄마가 진통하면서 이를 너무 꽉 물지 말라고 했는데 자꾸만 어금니 부위로 힘이 들어갔다…
남편의 손을 꼭 잡고 정말 응아를 하는 것 처럼, 내 생식기의 모든 문을 활짝 열 것처럼 다시 한번 힘을 주었다…
“산모 조금만 더 힘을 줄께요. 조금만 더요. 잘했어요. 아기 나옵니다. 천천히요. 네 아기 나옵니다.
13시 48분 문소라님 아들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응애”
아,,, 끝났다.
정말 신생아의 울음은 응애구나…
그 순간에 이런 생각이 들다니 그래도 정신을 잃지 않으려 했나보다.
3.48kg의 우람한 아기는 158cm밖에 안되는 내 몸 안에서 10개월동안 무럭무럭 자라 예정일에 약속처럼 우리에게 모습을 보여줬다.
의료진들이 아기의 얼굴을 나에게 보여주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힘주느라고 눈을 감고 있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땀과 눈물로 시야가 뿌옇게 되서 아기가 잘 안보였을지도…
<분만 그리고 출혈>
무언가 이상하다.
의사선생님과 간호선생님들이 이상하게 분주해지기 시작했고, 아직 나는 두시간째 분만실에 누워있다.
내 몸은 조금씩 한기를 느끼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물으셨다.
"엄마 혹시 추워요? 어지러운가요?"
나의 체온을 재고 눈동자를 확인하며 시간이 멎은듯 나의 변화를 주시했다.
나에게 다른 기운이 들어오고 있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