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인형과 가위
어린시절의 추억의 놀이는 언제나 동생과 함께 종이를 오려서 옷을 입혀 놀던 종이 인형 놀이
문방구 앞에는 종이 인형들이 두꺼운 종이에 컬러인쇄되어 가위로 인형의 모형대로 잘라야만 인형을 만들수 있는 구조였다.
미미인형이나 바비인형은 언감생심 꿈도 꿀수 없었던 초등학교 1~2학년때의 나로서는 그저 종이에 예쁘게 그려져 있던 그 종이도화지의 여자아이가 너무도 예뻐보였고,
인형에게 입힐 수 있는 옷은 어린 나도 입고 싶었던지라 인형에게 옷을 입히면 마치 내가 그 옷을 입은 듯한 느낌을 공유할수 있었다.
80년대 후반 어린시절을 보냈던 사람들은 아마 기억하겠지만, 그 당시의 문방구앞은 늘 아이들로 문전성시로 붐볐다.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미끼상품들은 밖에 놓여져 있었고,
나도 늘 문방구 앞에서 서성거리며 종이인형이 그려진 도화지속 주인공에게 꿀 떨어지는 눈빛을 보내곤 했다.
4절지 정도의 도화지에는 팬티만 입은 여자 아이가 그려져 있고,
여백의 공간에는 종이아이에게 입힐수 있는 옷과 소품들이 그려져 있었다.
옷은 어깨에 걸려 입힐수 있도록 흰색의 여백이 있어서 종이를 오릴때 흰 부분이 오려지지 않도록 조심해야만 했다.
흰부분이 잘리게 되면 인형의 어깨위에 올릴수가 없기에 서툰 가위질로 속상했던 기억이 소환된다.
어린 여자아이의 즐거움과 설레임, 까르르 웃었던 기억은 풋풋하면서도 포근하다.
삐뚤빼뚤 가위질로 라인을 따라서 잘라 인형에 옷을 입히는게 전부였던 나의 종이 인형놀이.
여동생과 둘이서 아웅다웅거리며 놀았던 어린시절의 기억은 어른의 시각으로 돌아보면 정말 별것도 아닌 그저 사소한 놀이였지만, 그 시절의 나는 종이 인형이 가득 그려져 있던 그 4절 도화지가 정말 좋았다.
종이 도화지 1장에 50원, 100원이었던 그 시절 문방구 앞에 서서 한없이 종이인형을 바라보던 간절한 눈빛을 우리엄마는 모를거다.
엄마는 나의 종이인형을 버리기에 바뻤고, 종이인형을 사와서 오리고 있으면 왜 그렇게 화를 내고 불호령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아마 외벌이 아빠가 열심히 일하신 돈으로 쓸모없는 종이인형을 사와서 쓰레기만 만든다는 생각에 못하게 하지 않았을까...
엄마가 못 버리게 눈에 안띄이는 방법을 고심하던 어린 내 마음은 종이인형들을 책상 서랍안에 숨겨두거나 서랍을 뺀 그 뒷공간에 숨겨두기도 했었지만,
학교에 갔다오면 또 버려진 인형들에 대성통곡을 하며 울었던 그때는 어찌나 서러웠던지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엄마는 나에게 인형 그림을 도화지에 그려서 색칠하고 오리면 되는데 왜 돈을 이렇게 쓰냐고 했던 기억이 있다.
먹지를 사다주시며 이렇게 따라 그리면 되니깐 다시는 종이인형 사오지 말라고 혼줄도 났었지만 서럽고 속상했던 마음은 엄마가 하라는 대로 하지 않는 청개구리로 변신하고야 말았다.
시간이 점차 흐르면서 어느날부터는 점선 커트로 자를수 있는 종이인형이 나오면서 더이상 가위가 필요하지 않았고, 그렇게 세상이 변화하는 동안 나도 조금씩 성장했다.
초등학교 고학년, 중학생이 되어가면서 인형과는 조금씩 거리가 멀어져가고 있었다.
내가 어른이 되어 자녀가 생기고 나서 보았더니 더이상 아이들은 종이인형이라는 것을 가지고 노는것이 아니 스티커 놀잇감이 나의 어린시절의 종이인형 놀이를 대체하고 있었다.
종이를 자르는 수고로운 손의 움직임은 필요가 없어졌지만,
부족한 없는 아이들의 놀잇감을 바라보자니 내가 어릴적에 느끼던 그 손끝의 감성이 느껴지지 않아 건조함이 앞섰다.
어릴 적 손을 꼭 쥐어 종이를 잡고, 라인에 잘 맞춰서 가위질을 잘 하려고 애쓰던 그 어린 마음과, 종이인형과 그 위에 입혀지는 서너개의 옷들이 전부였던 그 시절은 부족한 것들만 가득한 시간이었다.
엄마에게 혼나면서 몰래 놀이를 하기도 하고,
숨겨놓으면서 소중하게 가지고 놀던 종이인형.
이제는 돌아갈수 없는 그 놀이이고,
그리고 이제는 종이인형이 더이상 판매되고 있지도 않지만,
부족한 어린시절 손끝에서 느껴지는 종이인형의 감성은 풍요로운 현실에도 그리워지는 어린 내 눈과 손의 감촉이다.
(이미지출처 :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