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 “아니.”

— 나보다 십 년 앞에 서 있는 사람

by 불망

나는 볼펜을 집어던졌다.


“저 안 할래요. 못 해 먹겠어요.”


간호사실 공기가 잠깐 멎었다.


그 선배는

잠시 멍하니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말했다.


“다시 해보자.”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엉엉 울어버렸다.


한참 울고 나서

나는 다시 차트 앞에 섰다.


분해서였는지,

창피해서였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다만 하나는 안다.


나는 늘 잘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잘하고 싶은 욕심은 많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더 조급했고,

그래서 더 자주 무너졌다.


그 사람은

나보다 십 년 앞에서 걷던 사람이었다.


술잔을 기울일 때마다

그 사람은 늘 내 말부터 부정했다.


“아니.”


나는 아직 말을 다 끝내지도 않았는데

이미 결론은 나 있었다.


기분이 상했지만

그 사람의 표정은 바뀌지 않았다.


참고,

또 참다가

어느 날 나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날,

그 선배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우리 불망이,

이제야 자기주장이 생겼구나.


너도 이제 늙었구나.”


십 년쯤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그 선배의 말은 늘 맞았다.


늘 탈탈 털리던 나를,

그때의 수간호사는

그 선배에게 맡겼다.


내 차지 트레이닝을.


사석에서 술잔을 기울이던 사이라

못해도 봐주겠지,

내심 안도했었다.


하지만 차지 첫날,

그녀의 말투는 평소보다 날이 서 있었다.

단단했고,

여지는 없었다.


간호사실 한쪽에서

보라색 아이는 내게 파이팅을 외치고 있었다.


나보다 늦게 들어왔지만

경력도 많고 일도 빨랐다.


나는 그 등을 보며 익혔고,

그 아이는 말없이 길을 냈다.


둘은 즐거워 보였고

나는 분노했다.


늘 나를 따라다니던 열등감이

그날은 몇 배로 부풀었다.


선배의 가르침을

지적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나는 결국

볼펜을 집어던졌다.


그때의 볼펜과

그 선배의 표정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리고 지금,

누군가를 트레이닝할 때마다

그날의 무거운 공기를 이해하게 된다.


선배는 늘 그랬다.

내가 좋을 때가 아니라

아플 때마다 옆에 서 있었다.


십삼 년 동안

나는 그날의 볼펜을

잊지 않았다.


실수를 줄이려

이를 악물던 시간들.


그 사람은 늘 나보다 앞에 있었고,

나는 그를 따라가느라

숨이 찼다.


그래도 이상하게,

그 뒤를 따라가는 건 싫지 않았다.


우리는 여전히 다르다.

그래서 안다.


내가 길을 잃으면

가장 먼저 “아니.”라고 말해줄 사람.


그리고 그 말 뒤에

결국 끝까지 남아 있을 사람.


그 사람이

아직도

내 앞에 서 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