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 나는 아이를 갖지 않았다

— 좁혀지지 않는 간극에서

by 불망

산부인과는

매일 새로운 생명을 맞이하는 곳이지만,


나는 이 공간에서

단 한 번도

내 미래를 떠올리지 않는다.


이미 다른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갖지 않기로.’


그럼에도 이곳에서는

‘가짐’이 모든 기준이 되는 순간들이 너무나 많다.


특별히

아이를 좋아했던 것도 아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나는 연약한 누군가에게

내가 겪어온 상처와 닮은 흔적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누구나 선택은 할 수 있지만,

그 선택을 끝까지 지키는 일은

또 다른 문제였다.


그러나 그 선택은

언제나 조용히 나를 흔들었다.


능소화집에서

스스로 별이 된 그녀를 떠올릴 때마다.


가질 수 없어

버릴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선택이

내 마음에 조용히 남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결국

한 사람을 선택했고,

한 생은 내려놓았다.


그 뒤로 한동안

내게 날아오는 질문들은

거의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불망선생님, 결혼한 지 꽤 됐잖아요?”

“안 생기는 거예요, 아니면… 안 낳는 거예요?”

“난임센터 내려가봐요. 다를 수도 있잖아요.”


의문을 표하며,

때론 장난처럼 웃었지만

그 웃음 뒤에 감춰진 ‘당연함’은

늘 나를 잠시 멈춰 세우곤 했다.


나는 언제나 웃어넘겼다.


웃었다고 해서

그 말들이 덜 아팠던 건 아니지만.


일을 할 때도 그 거리감은 종종 드러났다.

나는 아이를 낳아본 적이 없기에

산모의 고통을 ‘경험’으로 설명해 줄 수 없다.


그래서 낳아본 선생님들을 붙잡고 묻곤 했다.


“샘… 제왕절개는 도대체 어느 정도 아픈 거예요?

정말 살이 베이는 통증의 몇 배쯤 되는 건가요?”


“자연분만은요…

생리통의 몇 배쯤 되는 거예요?”


그리고 결국 조금은 쑥스럽게

“그냥… 대략만이라도요…”

하고 덧붙인다.


질문하며 웃고 있지만,


그 웃음 아래에는


조금의 초조함,

조금의 무력감,


아주 얇게 얹힌 씁쓸함이 있었다.


나는 매일 누군가의 통증을 돌보고

그 통증이 지나가는 순간을 지켜보지만,


정작 그 통증의 바닥은

내 몸으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세계였다.


그 세계와 나 사이의 거리.

좁혀지지 않는 간극.


그렇다고 해서

내 선택을 후회하는 건 아니다.


… 아마도.


다만

이곳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고통과 탄생을

바라볼 때,


가끔은

내가 선택한 삶의 결이

조금 더 또렷해질 뿐이다.


나는 아이를 갖지 않았다.


대신


이 병동에서

수없이 많은 탄생의 곁에

서 있었다.


지금도,


나는

그 선택 안에서

여전히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