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좁혀지지 않는 간극에서
산부인과는
매일 새로운 생명을 맞이하는 곳이지만,
나는 이 공간에서
단 한 번도
내 미래를 떠올리지 않는다.
이미 다른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갖지 않기로.’
그럼에도 이곳에서는
‘가짐’이 모든 기준이 되는 순간들이 너무나 많다.
특별히
아이를 좋아했던 것도 아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나는 연약한 누군가에게
내가 겪어온 상처와 닮은 흔적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누구나 선택은 할 수 있지만,
그 선택을 끝까지 지키는 일은
또 다른 문제였다.
그러나 그 선택은
언제나 조용히 나를 흔들었다.
능소화집에서
스스로 별이 된 그녀를 떠올릴 때마다.
가질 수 없어
버릴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선택이
내 마음에 조용히 남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결국
한 사람을 선택했고,
한 생은 내려놓았다.
그 뒤로 한동안
내게 날아오는 질문들은
거의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불망선생님, 결혼한 지 꽤 됐잖아요?”
“안 생기는 거예요, 아니면… 안 낳는 거예요?”
“난임센터 내려가봐요. 다를 수도 있잖아요.”
의문을 표하며,
때론 장난처럼 웃었지만
그 웃음 뒤에 감춰진 ‘당연함’은
늘 나를 잠시 멈춰 세우곤 했다.
나는 언제나 웃어넘겼다.
웃었다고 해서
그 말들이 덜 아팠던 건 아니지만.
일을 할 때도 그 거리감은 종종 드러났다.
나는 아이를 낳아본 적이 없기에
산모의 고통을 ‘경험’으로 설명해 줄 수 없다.
그래서 낳아본 선생님들을 붙잡고 묻곤 했다.
“샘… 제왕절개는 도대체 어느 정도 아픈 거예요?
정말 살이 베이는 통증의 몇 배쯤 되는 건가요?”
“자연분만은요…
생리통의 몇 배쯤 되는 거예요?”
그리고 결국 조금은 쑥스럽게
“그냥… 대략만이라도요…”
하고 덧붙인다.
질문하며 웃고 있지만,
그 웃음 아래에는
조금의 초조함,
조금의 무력감,
아주 얇게 얹힌 씁쓸함이 있었다.
나는 매일 누군가의 통증을 돌보고
그 통증이 지나가는 순간을 지켜보지만,
정작 그 통증의 바닥은
내 몸으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세계였다.
그 세계와 나 사이의 거리.
좁혀지지 않는 간극.
그렇다고 해서
내 선택을 후회하는 건 아니다.
… 아마도.
다만
이곳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고통과 탄생을
바라볼 때,
가끔은
내가 선택한 삶의 결이
조금 더 또렷해질 뿐이다.
나는 아이를 갖지 않았다.
대신
이 병동에서
수없이 많은 탄생의 곁에
서 있었다.
지금도,
나는
그 선택 안에서
여전히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