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보다 십 년 앞에 서 있는 사람
나는 볼펜을 집어던졌다.
“저 안 할래요. 못 해 먹겠어요.”
간호사실 공기가 잠깐 멎었다.
그 선배는
잠시 멍하니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말했다.
“다시 해보자.”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엉엉 울어버렸다.
한참 울고 나서
나는 다시 차트 앞에 섰다.
분해서였는지,
창피해서였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다만 하나는 안다.
나는 늘 잘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잘하고 싶은 욕심은 많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더 조급했고,
그래서 더 자주 무너졌다.
그 사람은
나보다 십 년 앞에서 걷던 사람이었다.
술잔을 기울일 때마다
그 사람은 늘 내 말부터 부정했다.
“아니.”
나는 아직 말을 다 끝내지도 않았는데
이미 결론은 나 있었다.
기분이 상했지만
그 사람의 표정은 바뀌지 않았다.
참고,
또 참다가
어느 날 나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날,
그 선배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우리 불망이,
이제야 자기주장이 생겼구나.
너도 이제 늙었구나.”
십 년쯤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그 선배의 말은 늘 맞았다.
늘 탈탈 털리던 나를,
그때의 수간호사는
그 선배에게 맡겼다.
내 차지 트레이닝을.
사석에서 술잔을 기울이던 사이라
못해도 봐주겠지,
내심 안도했었다.
하지만 차지 첫날,
그녀의 말투는 평소보다 날이 서 있었다.
단단했고,
여지는 없었다.
간호사실 한쪽에서
보라색 아이는 내게 파이팅을 외치고 있었다.
나보다 늦게 들어왔지만
경력도 많고 일도 빨랐다.
나는 그 등을 보며 익혔고,
그 아이는 말없이 길을 냈다.
둘은 즐거워 보였고
나는 분노했다.
늘 나를 따라다니던 열등감이
그날은 몇 배로 부풀었다.
선배의 가르침을
지적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나는 결국
볼펜을 집어던졌다.
그때의 볼펜과
그 선배의 표정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리고 지금,
누군가를 트레이닝할 때마다
그날의 무거운 공기를 이해하게 된다.
선배는 늘 그랬다.
내가 좋을 때가 아니라
아플 때마다 옆에 서 있었다.
십삼 년 동안
나는 그날의 볼펜을
잊지 않았다.
실수를 줄이려
이를 악물던 시간들.
그 사람은 늘 나보다 앞에 있었고,
나는 그를 따라가느라
숨이 찼다.
그래도 이상하게,
그 뒤를 따라가는 건 싫지 않았다.
우리는 여전히 다르다.
그래서 안다.
내가 길을 잃으면
가장 먼저 “아니.”라고 말해줄 사람.
그리고 그 말 뒤에
결국 끝까지 남아 있을 사람.
그 사람이
아직도
내 앞에 서 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