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 ] 내일 아침에 봬요

— 알고도 남겨둔 말

by 불망

유니폼을 처음 입던 날,

나는 거울 앞에 서서

조용히 다짐 하나를 했다.


이 일을

돈벌이로만 생각하지 말자고.


그래서였을까.


내 일이 아닌데도

다인실 식판을

겹겹이 들고

복도를 걷던 날들이 있었다.


누가 시킨 일은 아니었다.


“착한 간호사네요.”


그 말을 듣고 돌아가던 날이면

한 시간 거리 집을

버스 대신

걸어가곤 했다.


발걸음마저 이상하게 가벼웠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조금 변해 있었다.


한 모양으로 묶는 머리가 싫어

단발로 머리를 잘랐고,

유니폼에서 이름표도

가끔 떼어두곤 했다.


입가의 웃음도

어느 날부터는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그날도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채

병동을 뛰어다니던 날이었다.


그 환자는

늘 힘없이 침대에 누워 있었다.


보호자 없이

늘 혼자였던,

연세 많은 환자.


사흘 내내

침대에서 내려오지 않은 채

내가 묻는 말마다

반대로만 대답하던 사람이었다.


“환자분,

복강경 부위에 물 닿으면 안 되니까

다음 외래 진료 오실 때까지

샤워는 안 하셔야 해요.


꼭 필요하면

방수테이프 붙이고 씻으셔야 해요.”


“응, 방수테이프.

어디서 사?”


“약국이요. 환자분.”


“씻으라고?

씻지 말라고?

약국에서 뭘 사라고?”


십 분쯤

같은 말을 주고받다가

나는 결국

설명을 내려놓았다.


“내일 퇴원하실 때

보호자분 몇 시쯤 오세요?


내일 보호자분께

다시 설명드릴게요.”


내 말에

그 환자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 보호자 따로… 없어.

시누가 올 거야 아마…”


그러더니

내 손을 잡았다.


“그동안 참 고마웠어,

아가씨…

내가 참

덕분에 고마웠어…”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머릿속에는

오만 가지 장면들이

한꺼번에 스쳐 지나갔다.


사흘 내내

말이 엇갈리던 순간들.


속으로

답답해하던 순간들.


자글자글한 주름 사이로

그분의 울음이

조용히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말했다.


“내일 가시기 전에

우리 또 봬요.”


나는 알고 있었다.

그 말을

지키지 못할 거라는 걸.


그래도

그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


회진을 돌다가

나는 그분의 병실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침대는 이미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문득
유니폼을 처음 입던 날이
떠올랐다.


거울 앞에서
조용히 했던 다짐.


이 일을
돈벌이로만 생각하지 말자고.


어느새
흐릿해져 있던
그날의 다짐을


다시 떠올린
날이었다.


나는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병동의 밤이

또 조용히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