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시에, 나는 잠시 꺼진다

by 느린꽃

아홉 시에, 나는 잠시 꺼진다

하루는 여섯 시에 켜지고

아홉 시에야 비로소 꺼진다

작은 손을 챙기고
큰 마음을 다독이다가
내 안의 말들이 다 소진된다

교실에서,

집 안에서,


나는 매일 누군가의 이름으로 살아낸다

거실 불이 꺼지고
세상이 잠잠해지면
나도 조용히 멈춘다


그제야 비로소

아무 역할도 없는

‘나’로 존재할 수 있다


꺼졌다고 끝난 건 아니다

충전 중일 뿐이다


내일, 다시

엄마라는 이름으로 켜지기 위해
나는 오늘도
아홉 시에, 잠시 꺼진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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