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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가지 않기, 안 오기 없기

그곳도, 당신도. 이곳의 여러분도.

by 글짓는 날때

"뭐 하십니까? 잘 쓰고 계십니까?"

춘승의 전화였다.


나 : 빨리. 빨리!


춘승 : 뭘?


나 : 빨리! 밥 한잔, 아니 술 한끼 합시다.


춘승 : 왜 그래?


나 : 지금 글하나 발행했단 말이에요. 누가 읽기 전에 움직여야 해.


춘승 : 아놔... 움직이면 안 읽어? 그럴 걸 왜 써? 참, 뭐도 풍년이라더니 유난은. 그럽시다. 간만에 합정?


나 : 지랄도 풍년이라는 거죠? 합정이라, 그럼... 선술집?




춘승 : 사장님, 저희 오늘 뭐 먹어요?


"오늘 회드실 거면 광어가 숙성이 기가 막히게 됐어요. 아니면 아지(전갱이)도 좋고. 오늘 들어왔는데 기름이 차서 아주 고소해요. 구이 드실 거면 병어, 은대구 있고, 가마구이도 좋고 병어는 한 마리 남았어요."


춘승 : 아지? 광어?


나 : 병어 올려 주시고 아지 먼저 주세요. 오늘은 제가 살게요.


춘승 : 웬일이래, 러시 앤 캐시 같다며.


나 : 로또 같다면서요. 소중한 구독자님께 회 한 접시 못 사겠습니까.




춘승 :

"나쁘진 않아요. 안 읽히기는 것도 아니고. 좀 독특하달까. 그동안 읽던 글하고 결이 다르다고 해야 하나... 뭔지 모르겠는데 볼만은 합디다. 그런데 솔직히 내가 나오는 글은 좋아요 누르기가 좀 그렇데. 낯간지럽다고 할까. 그러고 보면 기껏 써놓고 볼까 봐 무섭다고 하는 게 이해가 되더라고요.


자기 이야길 꺼내놓는 건데, 이게 나한테만 소중하고 애틋하지 남한테도 그럴까 이런 생각도 들 거잖아요. 근데 또 몰입을 하고 공감을 해. 드라마 보는 거랑 같은 건가? 신기하단 말이지.


아니 근데 매번 뭐 쓸데마다 그렇게 쫄아서 그러면 나중엔 어떻게 쓸라고 그래? 혼자만 유난 떠는 거야 아니면 다들 그러는 거야. 남들이 보면 꼴값 떤다고 그럴까 봐 그래. 이제 처음 시작한 거고 고작 몇 편 쓴 게 전부인 사람이 뭘 그렇게 걱정부터 앞세우고 그래요.

편하게 써요.


나 :

"남들이 보면 정말 유난 떤다 할 수 있겠네요. 그런데요. 이제 뭐 방법 없어요. 아예 안 했으면 모를까 이젠 뭐 꼼짝 마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짓기로 했으니 꾸준히 짓는 수밖에, 그래도 이왕 짓는 거 잘 짓고 싶네.


아 맞다. 아세요? 저 구독자 생겼어요. 내가 구독하는 작가님도 많아졌고. 구독하는 작가님 글도 계속 읽어야 하고 좋아요 눌러주신 분들 글도 읽어 봐야죠. 그거 다 읽을 때까지만이라도 계속 써보려고요. 진짜 재미없어서 구독자 한 명도 없고 좋아요도 없으면 그때 그만둬도 되고... 자기라도 계속 읽어줍시다. 나도 계속 쓰게. 어쨌든! 아직은 재밌어. 좀 오래갈 것 같아요.


아, 그러고 보니 우리 이 집 서로 단골인 거 알고 이런 얘기하지 않았나? 이 집 문 닫을 때까지만이라도 가깝게 지내자고 했나. 뭐라고 했지. 좋게 지내자고 했나? 해튼 뭐 이런 얘기하지 않았었나?"


춘승 :

"아무도 안 보는데 나만 본다...? 에효. 이 양반아. 그럽시다. 나는 봐줄게. 계속 써봐요.

근데 괜찮겠어요? 그 지경까지 가면 난 좀 무서울 것 같은데.


뭐. 그건 그렇고 그때 아마 이렇게 얘기했을 걸요.

'여기 문 닫을 때까지 만이라도 딱 요대로만 지냅시다.'

라고 얘기했던 것 같네요.


아직 있잖아. 우리도 그대 로고, 사장님! 문 닫거나 이사 갈 계획 같은 거 없죠? 해튼 어디 딴 데 가기만 해. 어디 가기 없기입니다! 날팀장님도, 아니 날작가님도. 글이야 뭐 쓰면 읽던가"

.

.

"자주 오시기나 하세요. 아지 나왔습니다. 한잔씩들 따르세요."




info.

합정역 근처에 있는 조그마한 이자카야, '퓨전선술집'입니다.

친한 사람과 술 한끼, 밥 한잔 하기에 딱 좋은 집입니다.

쉬고 싶을 때 다찌에 앉아서 혼술 하기에도 좋고요.

감사하게도 20년 넘게 한자리에 있는 샘터 같은 단골집입니다.

어디 가지 않고 계속 거기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postscript.

하나씩 있는 소중한 단골집, 혹은 장소에 대해 글을 지어보려 했는데 또 쓰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되어 버렸네요. 요즘은 누굴 만나도 온통 쓰는 것에 대한 이야기뿐이라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지어놓고 보니 결국 장소에 대한 이야기도 쓰는 것에 대한 이야기도 아닌 그저 푸념과 엄살이 되어버린 것 같아 삭제할까 하다가 어렵게 서랍에서 꺼내었는데 다시 넣기 힘들어 두기로 합니다.

소중한 시간 뺐은 것 같아 죄송스러운 저녁입니다.

춘승의 말처럼 참. 유난이라면 유난일까요.


어디선가 춘승의 목소리가 들리네요.

"좋은 생각, 좋은 말만 쓰세요. 어지간히 걱정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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