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 많은 사람
참 많이 어렸던 것 같습니다.
정말 창피하게 왜 그랬을까요? 읽는 걸로 왜 그렇게 멋을 부렸는지 모르겠어요.
중학교 때는 헤르만 헤세를 읽었고 고등학교 때는 이외수와 이문열을 좋아하다가 흔하디 흔한 패턴으로 하루키로 넘어갑니다.
잠깐 동안 바나나에 빠지고 미미여사를 좋아하다 오쿠다 히데오의 유머에 잠깐을 웃기도 하였지만 하루키를 이기긴 힘들더군요.
언제쯤일까요. 양사나이에 대해 살짝 부아가 치밀어 오를 때쯤 하루키의 단편과 에세이에 빠지고, 제즈를 듣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얼마 후 하필 커트 코베인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몇 번의 계절이 반복되었고 그제야 알게 되었겠죠? "참 많이 어렸구나"
참 예뻤답니다.
자신의 매력을 한껏 뽐내듯 고운 등을 보인체 어깨를 맞대어 모여있는 책들과 자세히 좀 봐달란 듯 얇디얇은 서체로 자신의 이름을 등에 세긴 바이널 레코드 재킷의 늘어섬이 너무 예뻤어요.
가끔 수줍게 나와 있는 가름끈이 보이면 "아, 미안. 여기 까지였나? 그럴 리가 없는데" 하면서 꺼내어 살피다 한참을 붙들고 있기도 하고요.
유독 눈에 들어오는 서체에 이끌려 꺼내어 듣다가 "원래 이런 아이였어? 네가 변한 거니, 내가 몰랐던 거니" 하면서 한참을 돌려 듣기도 합니다.
그리고 고마웠어요.
쓰고 지은 사람의 마음이 그랬을까요. 계절마다 날씨마다 달라지는 변덕에도 때마다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과 음악이, 그리고 그 글과 노래를 지은 사람들이 너무 고마웠어요.
참 신기했답니다.
장은진 작가님의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를 읽었어요. 장마다의 글도 예쁘고 좋았고 나오는 모든 이의 모습도 정겹고 애틋했지만 글의 끝이 얼마나 행복하고 기뻤던지 눈물이 날 지경이었죠. 너무 기뻐 입고리는 올라가는데 감정이 얹혀 가슴이 아픈 거예요.
김애란 작가님의 「바깥은 여름」을 읽었어요. 이건 너무 아픈 거예요. 아프다고, 난 여기가 아프다고 하는데 아무도 듣지 않고 만져 주지 않는 느낌인 거예요. 아무리 빨간약을 덧칠해도 상처만 깊어지는 느낌에 읽는 동안 참 힘들었답니다.
김민철 작가님의 「하루의 취향」을 읽었어요. 너무 친구 같은 거예요. 왜 있잖아요. 오랜 동네 친구를 만나 여긴 가봤어? 이건 먹어봤니? 이건 무조건 봐야 해! 너무 재밌어... 하루 종일 붙들려 다녀서 녹초가 되었는데 얼굴은 한껏 붉어져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거. 아시죠?
백승연 작가님의 「편지 가게 글월」을 읽었어요. 너무 떨리는 거예요. 너무너무 들어가고 싶은데 문을 못 열겠는 거 아시죠. 편지 하나하나가 너무 소중하고 글월 하나하나가 너무 고운 거예요. 내가 보낸 것처럼 설레고 내가 받은 것처럼 얼마나 기쁘던지요.
단지 읽음에 저 모든 마음들이 날 웃게하고 울게 하는게 신기했죠.
네, 욕심이 생겼답니다.
쓰고 싶어 졌어요. 이제와 무슨 글을 쓰냐 묻는 이가 있었는데
'정말 쓰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게 다예요.'라고 답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사실이잖아요. 모두들 정말 쓰고 싶었을 뿐이잖아요. 저의 쓰는 것에 대해 응원을 해준 춘승에게 이런 말을 헀어요.
오늘 어느 블로그에서 읽은 글인데 마음에 박히는 문장이 있더라고요.
「놀기만 하기엔 너무 늙었고 소망 없이 살기엔 너무 젊은 나이]라는 문장인데 파우스트에 나오는 구절이라네요. 다 늦어 글 같은 걸 왜 쓰냐고 묻는 다면 지금 너무도 소망하는 게 바로 글 짓기이고 글을 짓기에 딱 좋은 나이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라고 하기엔 뭐 하고 뻔뻔함 이런 게 생기더라고요. 적절한 때에 적절한 소망이 생겼는데 안 하고 못할 이유가 없잖아요. 그래서 쓰기로 헀어요. 글!
드라마 '에스콰이어'에 이런 대사가 나오더라고요.
'일 머리 없으면 엉덩이라도 무겁게 책상에 붙이고 앉아 보고 또 보고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아웃풋을 내야 될 것 아닙니까.'
저 들으라 하는 소리 같아 엉덩이 붙이고 앉아 뭐라도 써보자고 해서, 쓰고 또 쓰고 지우고 고쳐 쓰다 보니 저런 글이 되었네요. 전 그저 글을 쓰고 싶었을 뿐이었어요. 훌쩍.
epil.
이제 한편 남았어요. 어쩌죠... 울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