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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도...마음도..너무나 고팠던 날

4화. 배도...마음도..너무나 고팠던 날

by 무명 흙



초등학교 4학년 어느 날이었다.
친구들이 청소년수련관에 있는 수영장에 놀러 가자고 했다.
물놀이를 좋아하던 나는 당연히 너무 가고 싶었다.

“얼마야?”
가장 먼저 물었던 건 입장료였다.
하지만 친구들도 정확히는 몰랐다.
“비싸진 않아. 부모님한테 말하면 돈 주실걸?”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친구들.

그래도 난 얼마가 필요한지 알고싶었다 내가 알아야 조금이라도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래서 무엇보다 ‘얼마인지’가 가장 중요했다.

집으로 돌아가 엄마에게 말했다.
“친구들이랑 수영장 가기로 했는데, 비싸지 않대. 나도 가고 싶어.”
그 순간 엄마는 조용히 물으셨다.
“얼마인데…?”

생각해보면, 엄마에게 중요한 건 가격이었다.
어디로 가는지, 뭘 준비해야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돈이 없었으니까.

나는 애들이 ‘부모님은 다 아실 거’라고 했다며,
몰라, 그냥 보내줘! 라고 떼를 썼다.
엄마는 난처해하셨고, 그 옆에 있던 작은누나가 말했다.
“입장료랑 밥 먹을 거 생각하면 만 원쯤 필요하지 않을까…”

엄마는 잠시 말이 없더니 말했다.
“무슨 그런 큰돈이 필요해… 안 가면 안 되겠니…”

나는 울기 시작했고, 떼를 썼다.
결국 엄마는 조용히 주머니를 뒤적였다.
꺼내신 건, 엄마가 가지고 있던 전 재산.
구겨진 천 원짜리 두 장, 500원짜리 하나,
100원짜리 다섯 개.
그리고 작은누나가 가져온 600원까지.

3,600원.
그게 엄마와 누나가 가진 전부였다.
엄마는 조심스럽게 그 돈을 내 손에 쥐어주셨다.

어렸을 때 입었던 작은 수영복과 수영모를 챙기고
나는 신나게 집을 나섰다.

친구들과 만나 버스를 타고 수련관 수영장에 도착했다.
입장료는 2,000원.
버스비 350원.
남은 돈은 1,250원.
돌아가는 버스비를 빼면, 내 손에 남은 돈은 900원.

물놀이가 너무 신났다.
물에서 놀다 나오니 배가 고팠다.
수영장 매점으로 친구들과 향했다.

그땐 육개장 사발면이 유행이었는데 가격은
800원이었고, 친구들은 그것뿐만 아니라
삼각김밥, 핫바까지 신나게 집어 들었다.

나도 라면을 들고 계산대로 갔다.
그런데 지갑을 열어보니
내 손엔 950원밖에 없었다.

어디서 잃어버린 건지 기억나지 않는다.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
겨우 라면 하나 먹는 건데, 그것조차 못 먹게 생긴 상황.

나는 멍하니 친구들이 라면에 물 붓고 핫바 데우는 걸
그저 서서 바라보기만 했다.

‘더 싼 게 있을 거야.’

간절히 바랐고,
찾아낸 건 작은 짜장범벅 컵라면.
600원짜리.
정말 한 입이면 끝날 정도의 양.

눈물을 삼키고 그걸 들고 갔다.
친구들이 말했다.
“야, 넌 왜 그거 먹어? 큰 거 먹지.”

나는 늘 그랬듯,
“나 별로 안 배고파.”
라고 말하고는
혼자 천천히, 정말 천천히
조금씩 떠먹었다.

그 순간, 누가 툭 건드리기만 해도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하지만 꾹 참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 익숙한 척.

지금 생각하면, 친구들에게
“돈 잃어버렸어. 몇 백 원만 빌려줘.”
라고 말했으면 될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빌리면 갚아야 하니까’
그마저도 못했다.
초등학생 나에게는
그 몇백 원도 부담이었고,
나는 그걸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건,
엄마의 전재산이 3,000원이었다는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니도 수련회를 보내주지 못했던 아버지와 같은 마음이지 않았을까..

그 마음이 얼마나 무거웠을지.
얼마나 아프고, 또 미안했을지.

나는 아직도,
그날의 짜장범벅 맛을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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