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에서 시작된 수업

by 콩나물시루 선생님

"저는 드래곤이 좋아요."


드래곤...

한숨이 먼저 나옵니다.

오늘 수업이 제대로 이어질까 걱정이 앞섭니다.


주말 동안 숙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좋아하는 동식물 하나를 골라 생각해 오기'


수업을 시작하기 전, 한 명씩 돌아가며 말을 이었습니다.

"사자요."

"호랑이요."

"사슴벌레요."

저마다 관심 있는 동식물이 하나씩 튀어나왔습니다.


"드래곤이요."


아이의 말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아이 옆에 걸음을 멈춥니다.


'이것까지, 내가 설명해야 하나?'


선생님의 눈빛을 보고도 아이는 고개만 갸우뚱거리며 저를 빤히 쳐다봅니다. 주변의 다른 아이들도 저만 바라봅니다. 뭐가 문제냐는 듯, 어떤 표정 변화도 없습니다. 저만 답답했을까요. 입술 끝으로 작은 한숨을 몰아쉽니다. 좋아하는 동물을 고르라고 했으니, 아홉 살에게는 그게 같은 이야기였을지도 모릅니다.


"드래곤은 상상 속 동물이니, 현실에 있는 동물로 다시 말해 볼까?"

"그럼 아나콘다요."


... 아나콘다? 순간 표정이 굳어버립니다. 장난치는 걸까 싶어 아이를 바라보지만 아이는 눈을 반짝이며 선생님 대답만 기다립니다. 말문이 막혀 그냥 고개만 한번 끄덕입니다. 아이에겐 허락으로 비췄겠지요. 제 마음도 모른 채, 아이는 가슴을 펴고 환한 웃음으로 친구를 둘러봅니다.


조사한 내용을 정리해 오라고 하기에도, 관련된 책을 가지고 오라고 하기에도 아홉 살은 버겁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숙제로 좋아하는 것 하나만 떠올려 오라고 했습니다. 다른 아이에게 질문해 봅니다.


"원숭이 특징 하나 설명해 줄 수 있어?"


바나나를 먹어요.

엉덩이가 빨개요.

나무를 탈 수 있어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는 잠깐 생각하더니 말합니다.

"원숭이는 엉덩이가 빨간색인데, 짝짓기 시절에는 더 키지고 빨개져요."


응? 순간, 말이 바로 안 나옵니다. 아이의 설명에 그저 입을 벌리고 듣고만 있습니다.


"그리고 꼬리에 힘이 좋고, 손바닥이 사람보다 딱딱해서 나무 타기에 좋아요."


아이들 고개가 들리고, 몸이 조금씩 앞으로 쏠립니다.

"와! 대단하다."

"나도 저건 몰랐는데."

아이들 입에서 절로 탄성이 터져 나옵니다. 여기까지 바란 건 아니었는데.


연필 소리가 교실을 채웁니다. 이번에는 아이들이 정리한 학습지를 들고 서로에게 설명을 시작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호랑이를 소개하겠습니다."

"호랑이의 특징은 사자의 영원한 라이벌이고, 고기를 많이 먹어 똥냄새가 심합니다."


본인이 그린 그림을 친구에게 보여줍니다. 그림을 본 아이가 한참 생각에 잠깁니다.

"그럼 호랑이와 사자가 싸우면 누가 이기나요?"


저도 모르게 귀가 커집니다. 결과가 어떨지 저도 궁금해집니다. 아이는 멈칫하더니 잠시 말을 고릅니다.

"미안합니다. 제가 그런 조사를 못했습니다. 내일 찾아서 알려 주겠습니다."


아이의 목소리가 작아집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교실은 조용해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똥냄새는 왜 심한 가요?"

"육식동물은 고기를 먹습니다. 고기를 먹으면 냄새가 심하다고 합니다."

설명은 들은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른 꼬마 선생님을 찾아갑니다. 아이들은 그렇게 저마다의 방식으로 설명을 이어갑니다.


아이 곁으로 다가가 학습지를 내려다봅니다.


종이를 넘기다 손이 멈춥니다.

말을 붙이면 끊길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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