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의 안부인사 Wie geht's?

안부를 묻는 입이 떨어지기까지 이방인의 서툰 언어가 진심이 되는 순간

by 여름하늘
독일에 살며 우리는 인사만큼은 정말 열심히 주고받았다.


"Hallo!", "Guten Morgen!" 친절한 미소도 잊지 않았다. 매일 마주치면서도 인사는 딱 그 두 마디뿐이었지만, 모르는 체 지나치지 않는 게 어디냐며 스스로를 다독이며 꼬박 1년을 보냈다.


독일인의 "Wie geht's?"는 상대의 안부를 궁금해하고 답을 기다리는
즉, 대화를 시작하고 싶다는 신호다.


그런 면에서 독일어의 "Wie geht's?"는 조금 특별하다. 영어의 "How are you?"와 문법적으로는 같지만, 그 무게감은 전혀 다르다. 영어의 안부가 특별한 대답을 기대하지 않는 스쳐 가는 인사라면, 독일인의 "Wie geht's?"는 정말로 상대의 안부를 궁금해하고 대화를 시작하고 싶다는 신호다. 나에게 "Hallo"만 하는 이웃과 "Wie geht's?"를 묻는 이웃, 그 한 문장의 차이는 우리 사이의 심리적 거리 그 자체였다.


분명 아침에 학교 앞에서 반갑게 인사했던 엄마를 오후에 마트에서 마주치면, 그녀는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지나쳤다. 이런 일이 반복될 때마다 자신감은 바닥을 쳤다. '내가 말을 못 알아들어서일까?', '그녀는 정말 나를 못 알아본 걸까?' 밤마다 곱씹으며 상처받기도 했다.


독일은 이제 여러 혈통이 섞인 다문화 사회다. 어느 집 엄마는 "나는 폴란드 사람이고 남편은 러시아 사람이에요. 우리 집에서 아이만 독일 사람이지요"라고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다. 하지만 국적을 불문하고 이 땅에 사는 이들은 대체로 차가운 편이다. 친절하게 웃어주지만, 그 웃음 뒤에는 보이지 않는 단단한 벽이 있다. 그들만의 리그에 끼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결국 해답은 소통에 있었다. 내가 독일어에 조금씩 익숙해지자,
드디어 그들의 "Wie geht's?"가 시작되었다.

번역기나 어설픈 미소로 넘기는 것은 한두 번이다. 내가 적응하려 노력하고 언어가 발전하는 모습을 보일 때, 그들은 비로소 한 마디를 더 건네주었다. 사실 그들은 내가 공부를 하는지 마는지 관심이 없다. 그저 내가 먼저 다가가 자신감 있게 인사를 건 때, "어?" 하며 반응이 오면 지체 없이 "Wie geht's?"를 던졌다. 나름의 전략이라면 전략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나 조차도 외국인을 대하는 반응이 따뜻하지만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문득 생각해 보면 나 역시 한국에서 외국인을 마주했을 때 그리 따뜻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낯선 이방인에게 선뜻 먼저 다가가 안부를 묻는 일이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지, 그들도 어쩌면 나만큼이나 서툴고 조심스러웠을 것이다.


어느 날,

우연히 마주친 학교 선생님이 웃으며 말씀하셨다. "Frau. Lee, 독일어가 정말 많이 늘었군요!" 사실 그날은 친구들과 연습했던 문장들을 현실에서 써본 날이라, 나에게 선생님은 아주 훌륭한 대화 파트너였을 뿐이었다.

영어로만 대화하던 아이 친구 엄마도 "Lee, 처음 만났을 때 너의 영어보다 지금의 독일어가 훨씬 좋아"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우리 가족에게 늘 따뜻한 미소를 보여주던 동네 아저씨는 대화가 통하기 시작하자 본격적인 '호구조사'와 함께 안부를 묻더니, 남편의 먼 출퇴근 길을 걱정하며 이직 제안이 담긴 명함까지 우편함에 넣어주셨다.


그림1.jpg 같은 이웃과 사계절을 몇 번 지내다 보면, 그 사람들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내가 느끼듯, 그들도 우리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는 것 같다. 우리 앞집 슈타인 아저씨의 선물


성인의 외국어 학습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더디다. 이런 훈훈한 에피소드가 생기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불킥'의 밤이 있었는지 감히 다 말할 수 없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쥐구멍에 숨고 싶은 순간도 많았다. 하지만 나를 알아줄 때까지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나에게는 나만 바라보는 아이들이 있었으니까. 내가 이 낯선 환경을 창피해하고 위축되면, 아이들은 나보다 먼저 그 불안을 읽어낸다. 내 아이들이 최소한 본인들의 목소리는 당당히 내며 살길 바랐기에, 엄마인 내가 먼저 철판을 깔고 입을 뗄 수밖에 없었다.


모국어로는 누구보다 '똑순이'였던 내가 외국어 앞에서는 한없이 못난 사람이 되는 경험은 괴롭다. 하지만 꾸준한 노력과 시간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오늘 포기했다가, 내일 다시 시도하기를 반복했다.


언어라는 산을 하나 넘으니 이제 또 다른 거대한 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전히 아날로그 방식을 고수하는 독일의 행정 처리. 그곳에서는 유창한 언어 실력보다 더 중요한 무기가 있었다.


바로 빈틈없는 서류 준비와 인내심이었다.
금,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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