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독일 유치원

하지만 모두에게 완벽할 수는 없었다.

by 여름하늘
독일 유치원은 참 좋은 곳이다.


자연 친화적이고, 아이의 자율성을 존중하며, 무한한 탐색의 기회를 준다. 하지만 그 모든 장점도 우리 아이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적어도 내 기억은, 내 아이에게 독일 유치원은 그저 춥고 낯설고, 견뎌내야만 하는 외로운 공간이었다.


둘째로 태어나 늘 양보받고 사랑받는 데 익숙했고, 타인에게 먼저 다가가는 법을 배우기도 전에 우리는 독일로 왔다. 그래서였을까. 유치원에서 아이는 늘 혼자였다.


혼자 놀아도 괜찮아.

나는 아이에게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사실 괜찮지 않았던 건 나였다.


독일 유치원은 보통 세 살부터 여섯 살까지 함께 생활하는 혼합 연령반(Altersmischung)으로 운영된다. 큰 아이들이 작은 아이들을 돕고, 서로 다른 발달 단계의 아이들이 어우러지며 사회성을 배운다는 취지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 아이에게 그곳은 종종 만만한 아이가 되어야 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또래들과 어울릴 때면 한 발 뒤로 밀려나기 일쑤였고, 결국 아이는 말이 통하지 않아도 괜찮은 어린 동생들 곁에 머무르곤 했다. 그 모습이 내 눈에는, 섞이지 못한 아이가 선택한 차선책처럼 보여 마음이 아팠다.


독일의 유치원 교육 철학은 자율성에 뿌리를 둔다.


정해진 프로그램 없이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을 스스로 선택한다. 밖에 나가고 싶으면 나가고, 안에서 그림을 그리고 싶으면 그리면 된다. 선생님은 정해진 구역 안에서 아이들을 지켜볼 뿐이다. 누군가에게는 이상적인 교육 방식일 것이다. 하지만 사회성이 서툰 이방인 아이에게 그 자유는 어쩌면 방치와 다름없는 막막함이었는지도 모른다.


아이가 집에 돌아와 오늘도 혼자 놀았다고 말할 때마다 내 마음은 너무 아팠고, 미안했다.

언어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기질 탓이었을까. 아직도 그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없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큰 아이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으며 비교적 빨리 적응했는데, 유독 작은 아이에게는 먼저 손을 내미는 친구가 없었다. 친구들과 뜨겁게 ‘우정의 허그’를 나누는 문화를 지금도 어색해하는 아이를 보면, 그 시절 아이가 느꼈을 거리감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하게 된다.


그럼에도 내가 경험한 독일 교육 시스템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입학 준비 과정(Vorschule)이었다.

입학을 앞두고 한 6개월 전부터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직접 유치원을 찾아와 아이들을 만난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학교에 데리고 간다. 학교에서 한두 시간 시간을 보내고 다시 유치원으로 데려다준다. 그 시간에 아이들은 비로소 문자로서의 ABC와 숫자를 처음 접한다.


낯선 학교가 아닌 익숙한 유치원에서, 익숙한 친구들과 함께 배우기에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학교라는 세계를 준비한다. 그리고 자신이 곧 초등학생이 된다는 자부심을 조금씩 배워간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마치 호제(Matschhose)를 입고 밖에서 뛰노는 건강한 교육,

학교 선생님이 직접 유치원으로 찾아와 아이의 손을 잡아주는 세심한 연계 시스템.

분명 독일의 교육 시스템은 훌륭했다.


하지만 시스템이 훌륭하다고 해서, 모든 아이가 그 안에서 행복한 것은 아니었다. 비 오는 날 흙바닥에서 뒹구는 ‘건강한’ 교육과, 구석에서 홀로 놀던 우리 아이의 쓸쓸함은 어딘가 아이러니했다.


그 시절 나는 아이의 외로움을 그저 적응의 과정이라 믿고 싶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스며들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버텼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시간을 견디고 있던 건 아이만이 아니었다.


사랑하는 딸에게.

너의 외로움을 자율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며 견뎌야 했던 그 시간,

너는 자라고 있었고, 엄마도 너를 통해 자라고 있었단다. 잘 버티고, 견뎌내서 고마워.



그림3.jpg 어떤 사진을 들여다보아도, 우리 아이는 늘 한 발짝쯤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유치원 마지막 날, 선생님께 드린 선물은 새집이었다. 유치원 마당에 둘, 아이들 이름을 적은 작은 새집 하나. 마지막 인사마저 자연과 연결하는 그 발상이 참 독일답다 싶어 웃음이 났다. :-)

금,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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