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투박한 친근함의 표현일 수도. 어쩌면, 무지함과 무례함 사이
해외 살이에서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 첫 질문은 내가, 네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이다. 독일에서 "한국에서 왔어"라고 말하면,
놀랍게도 여전히 "북한이냐, 남한이냐(Nord oder Süd?)"를 묻는 사람들이 있다.
처음엔 당혹스러웠다. '설마 진짜 몰라서 묻는 걸까?' 싶었지만, 이제는 하도 많이 들어서 그 질문이 너그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사실 독일에서 "북한이냐, 남한이냐(Nord oder Süd?)"를 묻는 일은 꽤 일상적인 일이다. 아마도 본인들이 과거에 분단을 경험했던 국가였기에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한국은 멀고 낯선 땅이지만, '분단'이라는 단어만큼은 묘하게 익숙한 공통분모인 셈이다.
"당연히 남한이죠. 북한 사람들은 자유롭게 해외에 나올 수 없거든요." 설명을 덧붙이면 십중팔구 돌아오는 질문은 이렇다. "오, 그럼 김정은 만난 적 있어요? 김정은 알아요?" 그럴 때면 나는 그냥 웃고 만다. 그들에게 북한은 그저 뉴스 속의 자극적인 가십이었기 때문이다.
아이의 초등학교 등교 길에 교문 앞에서 만난, 같은 반 친구가 나를 보더니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허리를 숙였다. "곤니찌와(こんにちは)." 인사를 했다.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사뭇 진지한 그 아이의 얼굴을 보니 그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아마 그 녀석 딴에는 동양인 아줌마를 배려한 최고의 환대이자 인사였을 것이다.
마트 주차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주차를 하고 내리는 우리 부부를 보며 지나가던 한 아저씨가 외쳤다. "니하오!" 그분의 표정 역시 악의 없이 진지해서, 나는 그냥 "아아, ya..." 하고 멋쩍게 웃으며 지나쳐 버렸다.
물론 모든 순간이 이처럼 훈훈하지만은 않았다. 한 번은 마트에서 장을 보는데, 틴에이저 무리 중 한 명이 내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오며 개 짖는 흉내를 내는 게 아닌가. 순간 너무 놀라 나도 모르게 한국 욕이 튀어나왔다. 그런데 재밌는 건, 무리를 벗어나 혼자가 된 그 아이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녀석이 고개를 푹 숙이고 도망가는 '쫄보'가 된다는 사실이다.
너희들, 그저 친구들 앞에서의 호기였던 거니?
사실 독일 내에서도 이런 무례한 행동이나 근거 없는 "니하오" 소리는 '일상적 인종차별(Alltagsrassismus)'이라는 범주로 엄격하게 다루어지기도 한다. 결코 가볍게 넘길 일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나는 이들의 도발을 거창한 증오보다는 '무지한 아이들의 객기'로 정의하기로 했다. 상대의 무지에 똑같이 분노로 맞서기보다, 한 발짝 뒤로 물러나
그들의 유치함을 그저 바라보는 것이 내 정신 건강에도 훨씬 건강한 접근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굳이 인종차별이라는 무거운 단어로 정의하고 싶지 않다. 나에게 중국인이냐고 물을 때, "응, 나 중국 사람이야. 너 중국말할 줄 아니?"라고 덤덤하게 맞받아치면 열에 아홉은 당황해서 도망가 버린다. 그저 무지에서 비롯된 아이들의 장난일 뿐인데 내가 너무 심각하게 날을 세웠나 싶어 오히려 측은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
어쩌면 이들은 한국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잘 모를 것이다. 10살에서 15살 사이의 소년들의 치기 어린 장난에 일일이 상처받기엔 내 에너지가 아깝다. 독일에서 인종차별이 심하다는 말이 들려오지만, 적어도 성인 대 성인으로서 그런 불쾌한 느낌을 받은 적은 거의 없다. 설령 있었다 해도 내가 모르고 지나쳤다면 그만인 일이다.
결국 방법은 교육뿐이겠지만,
그건 내 영역 밖의 일이다. 해결할 수 없는 외부의 문제에 매달리기보다 내 마음을 지키는 대처법을 찾는 것이 현명하다.
그렇다. 아직도 북한에서 왔냐고 묻는다면, 혹은 엉뚱한 나라의 인사를 건네온다면, 나는 그것을 그들만의 '투박한 관심'이라 부르기로 했다. 수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만하면 받는 질문이지만, 이제는 그들의 호기심이 투박한 친금감의 표현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훨씬 더 나의 정신건강에는 도움이 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