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칠맛과 익숙한 맛, 그 어디쯤 엄마의 손 맛
엄마는 음식을 참 맛있게 하신다.
어렸을 때를 떠올리면, 우리 집 주방은 쉴 틈이 없었다. 아빠는 사람들을 집으로 부르는 게 일상이었고, 엄마는 투덜거리면서도 기어이 상다리가 휘어질 만큼 풍성한 식탁을 차려내곤 하셨다.
나는 엄마의 그 손맛을 전혀 닮지 못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하기 전까지 내 손으로 밥을 차려 먹은 기억이 거의 없다. 결혼 후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엄마의 반찬통은 늘 우리 집 냉장고를 채웠고, 나는 그저 뚜껑만 열면 그만이었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친정집 문턱이 더 낮아졌다. 출근 전에도, 퇴근 후에도 나는 당연한 듯 엄마의 식탁에 숟가락을 얹었다. 그렇게 나는 마흔이 될 때까지, 제대로 된 요리라는 걸 해본 적 없는 사람으로 살았다.
독일 살이는 생각보다 금방 적응했다. 하지만 문제는 끼니때의 밥상이었다.
한국에선 당연했던 밑반찬들이 이곳에선 귀한 손님이 되었다. 한국에서 야무지게 싸 온 반찬들이 바닥을 드러내자, 나는 비로소 주방으로 향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유튜브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 해도 맛은 늘 형편없었다. 독일의 감자는, 종류마다 맛과 질감이 달랐고, 양파는 어쩐 일인지 너무 매웠다. 재료부터가 다른데 같은 맛이 날 리 만무했다.
“엄마, 거기엔 대체 뭘 넣은 거야?”
답답한 마음에 한국으로 전화를 걸어도 엄마의 대답은 늘 한결같았다.
“그냥 간장 좀 넣고, 소금 좀 치고, 눈으로 보면서 간 맞추면 되지. 니 입맛에 맛있으면 그게 정답이야.”
내가 원한 건 수치화된 레시피였지만, 엄마는 늘 그 대충으로 하는 손 맛 만을 강조했다.
그러다 문득, 친한 언니가 해주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이를 낳고 몸조리를 하던 시절, 엄마의 오이무침이 너무 먹고 싶어 친정으로 달려갔는데 언니는 엄마의 손끝을 집요하게 관찰하다가 결정적인 장면을 목격했다고 했다. 대수롭지 않게 투하되던 ‘하얀 가루’ 한 숟가락.
“엄마, 그게 뭐야? 소금을 그렇게 많이 넣어?”
“아니야, 이거 넣어야 네가 좋아하는 그 맛이 나.”
그것은 미원이었다.
그 기억이 떠오르는 순간, 묘한 해방감이 찾아왔다. 나는 짐 가방 구석에 비상용으로 챙겨 왔던, 왠지 쓰면 안 될 것 같아서 모셔두기만 했던 다시다 봉지를 꺼냈다. 처음에는 죄책감에 조금만, 그다음에는 조금 더 과감하게. 갈색 가루가 국물에 섞이자마자 코끝에 그 익숙한 냄새가 확 퍼졌다.
“엄마, 오늘 국 진짜 맛있다!”
아이의 엄지 척 한 번에 주부로서의 자존심이 조금 상하긴 했지만 타지에서 이 정도 치트키는 생존 전략이다. 어쩌면, 엄마의 손맛도이라는 게 대단한 비법이 아니라, 어떻게든 식구들 입맛에 맛있는 것을 넣어주려는 바람과 적당한 타협이 섞인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 나의 요리는 나름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물론 여전히 한계는 있다. 네 식구 먹을 국 하나, 반찬 하나 정도는 거뜬하지만 그 범위를 넘어서면 금세 허둥거리다 맛을 망치고 만다. 딱 우리 가족이 먹고살 만큼만 해내는 것, 이것도 타지 생활이 준 결핍의 또 다른 효과일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엄마가 유럽의 우리 집에 오셨을 때, 내가 차린 국을 드시며 무심히 던지신 말씀이 생각난다.
“뭐, 별 맛도 아니구먼. 김 서방이랑 애들이 아주 그릇째 먹네.”
잘 지내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엄마만의 투박한 표현법임을 알기에 나는 그저 웃음이 났다. 엄마의 손맛이 정확히 어떤 맛이었는지, 어떤 비율이었는지 여전히 다 알 수도 없고, 기억도 안 난다.
하지만 마음이 허기질 때면 본능적으로 엄마 밥이 그리워지는 것처럼,
우리 아이들에게도 내 음식이 그런 기억이 되길를 바라며, 훗날 아이들이 커서 어느 낯선 곳에 머물 때, 불쑥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엄마 밥 먹으러 갈게”
자장면은 그저 까맣기만 했고, 호박전은 밀가루 옷을 두껍게 껴입었다. 그래도 버리지 않고 끝까지 먹었던 그날의 나를 칭찬하고 싶다. 나의 첫 요리 걸음마였으니까.
두툼하기만 했던 수제비 반죽은 이제 얇고 찰진 만두피가 되었고, 까맣기만 했던 주방의 풍경은 노릇한 머핀 향기와 매콤한 깍두기 색으로 채워졌다. 기름 한 통을 다 뒤집어쓰고 치킨을 튀겨낸 날, 나는 비로소 주방에서 대체 불가의 주인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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