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초등학교의 방과 후 ‘Hort’

교육과 보육 사이, 독일 공립 초등학교에 적응할 수 있었던 이유.

by 여름하늘

유치원에서의 자유와 초등학교의 질서를 지나, 그 사이를 이어주는 또 하나의 공간이 있었다. 아이를 맡기고 나는 비로소 나의 시간을 다시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곳의 이름은 Hort(호르트)였다.




Hort는 학교와 연결된 방과 후 돌봄 공간이다. 단순히 아이를 맡아두는 곳이 아니라 점심 식사와 숙제 시간, 그리고 다양한 활동이 이어지는 생활의 연장선이다. 독일어 공부가 절실했던 엄마인 나도, 직장인 부모들도 아이를 맡기고 각자의 일상을 이어갈 수 있었다.


따뜻한 식사와 숙제 지도, 부모의 짐을 덜어주는 시간

우리 아이가 다녔던 Hort에는 자체 조리실이 있어 매일 따뜻한 식사가 제공되었다. 부모의 일정에 따라 어떤 아이는 점심만 먹고 귀가하고, 어떤 아이는 저녁까지 그곳에 머무르기도 한다. 우리 아이는 보통 오후 4시까지 이곳에 머물렀다. 점심을 먹고 정해진 시간에 다 함께 숙제를 마친 후 집으로 돌아왔다.


내게 가장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던 건 이 숙제 시간이었다. 독일어 수업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찼던 나에게 아이의 숙제까지 책임지는 일은 쉽지 않았다. 아이의 알림장을 펼칠 때마다 부모로서 느끼는 압박감은 상당했다. 그때 Hort 교사들의 체계적인 지도는 큰 힘이 되었다. 내가 아이에게 “엄마는 도와줄 수 없어”라고 말하며 자립심을 강조할 수 있었던 뒷배경에는 사실 이 든든한 시스템이 있었다.

그림5.jpg 우리 아이 기준 최고의 찬사, 한국 급식만큼 맛있다!라는 말


놀이 속에서 자라는 언어와 사회성

이곳은 전 학년 통합으로 운영된다. 보통 교사 세 분이 약 20명의 아이를 돌보며, 아이들은 형, 누나, 동생들과 자연스럽게 섞여 지낸다. 실내 체육관, 음악 활동, 공방, 그리고 자유로운 놀이 시간까지. 아이들에게 Hort는 또 하나의 학교라기보다 훨씬 큰 놀이터에 가까웠다.


돌이켜보면 우리 아이는 이곳에서 독일어를 몸으로 배웠다.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만난 가장 안전한 사회였다. 교실보다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은 놀면서 말을 건네고, 실수하고, 다시 말한다. 놀이가 곧 대화가 되고 대화가 곧 언어가 되는 시간. 그 과정 속에서 아이는 조금씩 이곳의 구성원이 되어갔다.


그림2.jpg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Hort 선생님들께서 준비하신 아이들 사진첩. 맨 앞장에는 장문 편지도 함께 있었다


전문 보육 교사들의 세밀한 관찰


Hort의 교사들은 ‘Erzieher(에어치어)’라 불리는 전문 보육자들이다. 단순한 돌봄을 넘어 아이의 생활 전반을 함께 책임진다. 한 번은 교사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은 적이 있다. 아이가 쓰는 숫자의 모양에 대한 조언이었다.


한국식으로 쓰는 숫자 1, 4, 7, 9가 독일에서는 다르게 읽힐 수 있으니, 혼란을 겪기 전에 교정해 주는 것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부모조차 놓치기 쉬운 작은 습관까지 세밀하게 관찰하고 이를 학부모와 공유하는 태도. 그 순간 나는 이곳이 단순한 돌봄 공간이 아닌, 정교하게 설계된 교육 시스템임을 다시금 체감했다.


그림4.jpg 숫자를 독일식으로 쓰면 좋겠다는 편지와. 우리 아이가 가장 좋아했던 Fasching 파티 안내문 그리고 늘 나를 위해 장문의 편지로 모든 사항을 안내해 주셨던 선생님들


학교와 Hort, 유기적인 협력의 현장


학기 상담 날, 상담실 문을 열었을 때의 장면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담임 선생님 옆에 Hort 선생님이 함께 앉아 계셨기 때문이다. 담임 선생님은 교실 내에서의 학습과 적응을 이야기하고, Hort 선생님은 방과 후 생활에서의 모습을 덧붙였다. 두 전문가는 서로의 관점을 공유하며 아이의 상태를 입체적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부모인 나는 그 긴밀한 협력 과정을 신뢰하며 지켜보기만 하면 됐다.


그날 이후 나는 학교와 Hort의 공조 체계를 전적으로 믿게 되었다. 독일어에 능숙하지 못한 부모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전문가들을 믿고 아이를 맡기는 것이었다.



Hort는 부모를 위한 지원 시스템인 동시에, 낯선 땅에 선 아이와 내가 각자의 자리에서 단단해질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준 기다림의 공간이었다. 나는 서로 촘촘하게 얽혀 있는 독일의 교육 안전망 안에서 비로소 안전하게 안착할 수 있었다.


누군가 독일 초등학교 적응을 고민한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Hort 등록을 권할 것이다.

금,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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