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초등학교 4학년이 되면,

첫 번째 관문 통과를 위한 세 가지 선택지

by 여름하늘

독일 바이에른주의 초등학교 4학년 교실은 한국의 입시 교실과는 또 다른 의미의 긴장감이 흐른다. 이곳에서는 초등학교 4학년을 마치면 아이들이 각기 다른 형태의 학교로 나뉘어 진학하기 때문이다. 처음 이 시스템을 접했을 때, 나는 이것을 단순히 중학교 시험쯤으로 이해했지만, 막상 곁에서 겪어본 독일의 교육 구조는 내가 예상했던 것과 조금 달랐다.


숫자가 말해주는 명확한 갈림길


아이들 앞에는 크게 세 가지 선택지가 놓인다.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김나지움(Gymnasium), 실업 중등학교인 레알슐레(Realschule), 그리고 기초 중등학교인 미테슐레(Mittelschule). 이 선택은 생각보다 이른 시점에, 그리고 꽤 명확한 숫자에 의해 시작된다.

보통은 독일어, 수학, 사회/과학(HSU) 세 과목의 평균 점수가 기준이 되었다. 학기 초, 담임 선생님께서는 학부모들에게 진학을 위한 명확한 점수 가이드라인을 안내했다. 소문으로만 듣던 ‘기준 점수’의 실체를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물론 부모의 의사가 반영될 여지도 있지만, 우리 아이 반은 선생님의 기준이 워낙 확고했기에 부모의 의견보다는 아이의 시험 점수와 객관적인 성적이 우선시되었다.


겨우 열 살 남짓한 아이들


처음에는 너무 하다는 생각을 했다. 겨우 열 살 남짓한 아이들의 방향을 이렇게 빨리 나누는 것이 맞는 걸까 하지만 선생님의 기준이 명확했기에 오히려 불필요한 기대나 갈등 없이 나름의 방향을 일찍 정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솔직한 심정으로, 한국 부모로서 가방끈은 길고 봐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기에 나는 아이의 목표를 대학까지 이어지는 김나지움(Gymnasium)으로 정해두었다. 다행히 아이는 수업을 잘 따라가 주었고, 큰 어려움 없이 그 기준선을 향해 나아갔다.

물론 학교 간 이동, 즉 전학이 비교적 빈번하게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외국인 가정으로서 그 복잡한 과정을 현실적으로 감당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그래서 나의 선택은 단순해졌다. 일단 그 기준선 위에 선 후, 그다음은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경쟁보다 이해를 먼저 묻는 교실


흥미로운 점은 이곳의 4학년이 내가 예상한 한국의 입시반 풍경과는 달랐다는 것이다. 시험은 자주 치러졌고 점수는 차곡차곡 쌓였지만, 분위기는 경쟁보다 각자의 흐름을 확인하는 과정에 가까웠다. 시험 한 번에 모든 것이 결정되는 구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점수 외에도 수업 태도나 참여도가 비중 있게 반영되었고, 선생님은 점수 이면에 숨겨진 아이의 잠재력을 끊임없이 살폈다.

아이에게 들은 이야기 중 지금까지 생각나는 것은, 시험을 볼 때마다 선생님은 우리 아이에게 "혹시 모르는 단어가 있니?"라고 먼저 물으셨다고 한다. 아이가 질문을 하면 선생님은 잠시 시험을 멈추고 그 단어를 교실 전체에 설명해 주셨다. 한 아이의 질문을 교실 전체의 배움으로 연결하고, 모든 아이가 같은 이해의 선상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모두에게 같은 잣대를 대지 않는 배려


이러한 배려는 평가 기준에서도 드러났다. 독일어 수업에서 우리 아이는 외국어로 독일어를 배우는 학생들을 위한 별도 기준인 DaZ(제2언어로서의 독일어, Deutsch als Zweitsprache)에 따라 평가받았다. 시험 문항은 동일하지만, 점수 부여의 기준이 조금 다르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반에 우리 아이 말고도 몇몇 친구들이 이 기준을 적용받고 있었다. 원어민 아이들보다 덜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며, 외국인으로서 언어를 습득해 나가는 단계를 존중해 주는 시스템. 같은 교실 안에서도 아이마다 조금씩 다른 기준이 공존하고 있었다.


마침표가 아닌 첫 번째 관문


아이들의 선택은 제각각이었다. 시험을 망치고 속상해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도 있었고, 부모의 권유로 점수보다 낮은 학교를 선택한 아이도 있었다. 실제로 김나지움에 진학했다가 적성에 맞춰 학교를 옮긴 아이도 있고, 반대로 다른 학교에서 시작해 나중에 김나지움으로 올라온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처음의 공포와 달리, 한 번 겪고 나니 독일의 진학 시스템은 한 번의 선택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막다른 골목은 아니었다. 적어도 내가 본 아이들 기준에서는. 이 시점은 완전히 갈라지는 이정표라기보다, 몇 년 동안 자신에게 맞는 방향을 가늠해 보는 첫 번째 관문인 셈이다.


조금 돌아갈 수도 있고, 중간에 경로를 수정할 수도 있는 길. 그 유연한 지도 안에서 아이는 각자의 속도에 맞춰 나아간다.


그림1.jpg 전 학년 모두가 즐거웠던 졸업식

졸업식은 화려하지 않았다. 4년의 기록을 함께 보고, 운동장에서 함께 노래를 부르고, 교실로 돌아와 선생님과의 활동으로 마무리하는 시간이었다. 시상식도, 긴 축사도 없었지만 마을 잔치처럼 모두가 함께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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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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