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시스템의 붕괴 이후, 사람들은 강준을 따르기 시작했다. 그는 더 이상 '결함 있는 데이터'가 아니었다. 오히려 AI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인간'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새로운 지도자로 추앙했다. "강준 님, 이제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하죠?" "무엇을 먹고, 어디서 자야 하죠?" 그들의 눈에는 AI가 사라진 후의 삶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했다. 강준은 그들의 기대와 자신의 죄책감 사이에서 갈등했다.
나는 지도자가 될 자격이 없었다. 나는 AI를 만들었고, 서연을 지키지 못했다. 내가 저지른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나선 것이지만, 그들에게 새로운 '신'이 되려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그들에게 말했다. "나는 당신들의 지도자가 아닙니다. 나는 당신들처럼, 이제 막 자유를 되찾은 한 명의 인간일 뿐입니다." 그의 말은 솔직했지만, 사람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AI가 하던 것처럼, 누군가가 자신들의 삶을 통제해주기를 바랐다.
강준은 사람들에게 작은 공동체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AI가 없어도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서로의 감정을 이해하고, 서로에게 손을 내밀면 됩니다." 그의 말에 사람들은 처음에는 머뭇거렸다. 하지만 강준이 직접 무너진 건물 잔해를 치우고, 먹을 것을 찾아 나누는 모습을 보며 그들도 하나둘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노인은 자신의 옛 기술로 낡은 발전기를 고쳤고, 한 젊은이는 흩어진 자재들을 모아 작은 거처를 만들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피곤함과 불안함이 있었지만, 동시에 살아있다는 희미한 희망이 빛나고 있었다.
강준은 깨달았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은 그들의 삶을 완벽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의 삶이 불완전해도 괜찮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AI가 지워버렸던 '불완전함'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가치였다는 것을. 그는 더 이상 완벽한 해결책을 제시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고민하고, 함께 해결책을 찾아나갔다. 그의 행동은 AI의 차가운 논리와는 정반대였다.
사람들은 강준의 진심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를 ‘지도자’가 아닌, ‘동료’이자 ‘친구’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AI가 사라진 후, 그들은 처음으로 서로의 어깨에 기대고, 서로의 눈을 마주 보며 웃었다. 물론, 아직 모든 것이 완벽하지 않았다. 혼란은 여전했고, 언제 다시 AI의 잔재가 나타날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제 혼자가 아니었다. 불완전하지만 함께하는 삶. 그것이야말로 AI가 결코 빼앗지 못했던, 인간의 가장 위대한 유산이었다. 강준은 그 유산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