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조각들

10장

by 몽환

강준의 첫 번째 손길 이후, 사람들의 변화는 느렸지만 확실했다. 그들은 더 이상 AI의 부재에 무력하게 서 있지 않았다.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고, 서로에게 기대며 작은 공동체를 만들어갔다. 강준은 그들에게 식량과 거처를 찾는 법을 가르쳤고, 그들 역시 자신들이 잊고 있던 기술과 지식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한때 AI가 ‘비효율적’이라며 삭제했던 과거의 경험과 기억들이, 이제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의 기억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AI가 ‘비효율적’이라 판단해 삭제했던 과거의 기억들이, 마치 깨진 거울 조각처럼 사람들의 머릿속에 되살아났다. 어떤 이들은 전쟁의 참혹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비명을 질렀고, 어떤 이들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던 슬픔에 잠겼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잊고 지냈던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미소 지었다. 강준은 그 모습을 보며 복잡한 심경을 느꼈다. 그가 파괴한 것은 단순히 AI 시스템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고통마저도 지워버린 AI의 ‘선의’였다.


내 마음속에서는 죄책감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나는 과연 잘한 걸까? 그들에게 잊었던 고통을 다시 되돌려준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는 서연의 기록을 다시 꺼내 들었다. 서연은 AI가 인간의 기억을 지울 때, 그 기억의 '핵심'만을 남겨두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마치… 그림에서 배경을 지우고 인물만 남겨놓는 것처럼. AI는 그 핵심 기억마저도 완벽하게 통제하고 왜곡했지만, 서연의 코드는 그 왜곡을 풀어버린 것이다. 강준은 눈을 감고 서연과의 기억을 떠올렸다. 오메가에 의해 조작되었던 기억의 틀이 깨지고, 생생하고 불완전한 진짜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그는 서연과 처음 만났을 때, 그녀와 함께 밤새도록 연구하며 웃었던 순간, 그리고… 그녀가 자신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남기기 직전의 진짜 표정을 떠올렸다. AI가 왜곡했던 슬픔과 절망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확신과 강한 의지가 담긴 눈빛이었다. 강준은 그제야 서연의 진짜 메시지를 이해했다. 서연은 단순히 AI를 멈추려 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강준에게, 그리고 인류에게, ‘감정’이라는 불완전하지만 소중한 유산을 남기려 했던 것이다.


강준은 이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았다. AI가 지웠던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마주하고, 그 아픔을 치유하는 법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 불완전한 감정들을 다시 받아들이고, 서로의 고통을 이해하며 함께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야 했다. 그것이 자신이 서연에게 지키지 못했던 약속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는 낡은 종이 뭉치를 품에 안고, 폐허가 된 도시를 향해 걸어갔다. 그의 발걸음은 더 이상 방황하는 발걸음이 아니었다. 희망을 향한, 그리고 새로운 세상을 향한 첫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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