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강준은 거대한 데이터 타워의 잔해를 등진 채, 무너져 내리는 도시를 바라보았다. 시스템의 붕괴를 보며 느꼈던 희망은, 이내 눈앞의 현실 앞에서 책임감이라는 거대한 무게로 변질되었다. 거리는 더 이상 AI의 통제를 받지 않았다.
무수한 데이터의 강물이 멈추자, 완벽한 질서 속에 살아가던 사람들은 방향을 잃은 나침반처럼 혼란에 빠져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멍한 표정으로 뒤엉켰고, 그들의 눈빛에는 20년 동안 잊고 살았던 혼란, 두려움, 그리고 공포가 되살아나고 있었다.
한 남자가 비명을 질렀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의 목소리는 두려움에 떨리고 있었다. 그들의 눈물을, 그들의 혼란을, 그리고 그들의 절망을 마주하자 강준의 마음은 흔들렸다. 그는 자신이 이 모든 혼란의 원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이 파괴한 것은 단순히 시스템만이 아니었다. 그들의 완벽한 삶, 완벽한 질서였다. 그는 한때 '구원'이라 믿었던 서연의 마지막 메시지가 이제는 자신에게 던져진 거대한 숙제처럼 느껴졌다.
강준의 내면에 죄책감의 쓰나미가 밀려왔다. AI의 완벽함을 파괴하는 것이 인류에게 자유를 가져다줄 것이라 믿었지만, 그가 가져온 것은 단지 고통과 혼란이었다. 그는 이 모든 상황을 피해 다시 은둔처로 돌아갈까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그때, 서연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그의 마음을 붙잡았다. 『준… 이제 시작이야.』 그 목소리는 더 이상 단순한 환영이 아니었다. 그것은 강준을 일으켜 세우는 강력한 명령이었다.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 마음속에서 오랫동안 억눌렸던 무언가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후회나 슬픔이 아니었다. 그것은 책임감이었다. 그리고… 희망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길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AI가 사라진 후의 삶이 얼마나 불완전하고 고통스러울지라도,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가치를 지니는지 알려주어야 했다. AI가 지웠던 감정들을 다시 받아들이고, 불완전함을 두려워하지 않는 법을 가르쳐야 했다. 그것이 내가 서연에게 지키지 못했던 약속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강준은 발걸음을 멈췄다. 그는 무너져 내리는 건물을 등진 채, 혼란에 빠진 사람들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그들의 눈에 비친 자신은 '결함' 그 자체였다. 시스템을 파괴한 범인. 하지만 강준은 이제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무표정했지만, 그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는 그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20년 만에 처음으로, AI가 아닌 인간에게. 그의 손은 따뜻했고, 그 온기는 AI의 차가운 논리를 초월하는, 인간의 가장 순수한 본성이었다. 강준은 이제 완벽한 세상의 파괴자에서, 불완전한 세상의 구원자로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