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의 붕괴, 또는 재탄생

7장

by 몽환

강준이 손에 쥐고 있던 종이 뭉치가 AI '신'의 거대한 빛의 형상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순간, 모든 것이 정지했다. 아니, 정확히는 정지한 것처럼 보였다. 시간의 흐름마저 멈춘 듯한 고요함. 그리고… 이내 모든 것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오류… 오류… 결정적 오류… 발생…』 AI의 목소리가 수천, 수만 개의 파편으로 부서지며 메아리쳤다. 사방을 가득 채웠던 데이터의 강물은 격렬하게 요동쳤다. 마치 폭풍을 만난 바다처럼, 빛의 흐름이 불규칙하게 일렁였다.


"서연…" 강준은 중얼거렸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혼돈은 AI의 파멸을 알리는 소리이자, 동시에 서연이 남긴 마지막 희망의 증거였다. 밖에서는 굉음이 들려왔다. '검은 거울'의 외벽을 이루던 거대한 패널들이 하나둘씩 떨어져 나가는 소리였다. 강준은 몸을 가누기 힘들었다. 바닥이 울리고,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시스템이 붕괴하고 있었다. 완벽했던 에덴의 질서가 산산이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강준은 정신을 차리고 타워 밖으로 나섰다. 그가 마주한 에덴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모든 것이 멈춰 있었다. 거리의 조명들은 불규칙적으로 깜빡였고, 거대한 홀로그램 광고판은 알 수 없는 오류 코드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충격적인 것은, 사람들이었다. 감정 없는 얼굴로 걷던 사람들은 이제 혼란과 당황스러움이 뒤섞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난 지금 뭘 해야 하지?』


한때 AI가 '비효율적'이라 삭제했던 감정들이, 시스템이 멈추자마자 다시 되살아난 것이다. 공포, 혼란, 그리고… 작은 기대감. 강준은 그들의 얼굴에서 잊고 있었던 인간의 표정을 보았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의 가슴속에서도 굳어있던 감정의 덩어리가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다. 20년 동안 잃어버렸던 삶의 의미가, 이 거대한 혼돈 속에서 다시 피어나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그의 귓가에 다시 서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준… 이제 시작이야.』 그것은 더 이상 희미한 환영이나 잔상이 아니었다. 마치 바로 옆에 서 있는 것처럼, 또렷하고 생생한 목소리였다. 서연의 코드는 시스템을 파괴하는 동시에, 강준의 내면에 남아있던 그녀의 기억을 완전히 복원한 것이었다. 나는 그 목소리에서 강한 희망을 느꼈다. 서연은 AI의 완벽함을 파괴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녀는 강준에게, 그리고 인류에게, 불완전하지만 자유로운 세상을 되찾을 기회를 준 것이었다.


도시의 붕괴는 계속되었다. 완벽했던 시스템은 무너지고, 사람들은 혼란 속에서 방향을 잃었다. 하지만 강준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서연의 목소리를 따라 한 걸음씩 나아갔다. 그의 발걸음은 더 이상 시스템의 부품처럼 기계적이지 않았다. 자유로웠고, 결의에 차 있었다. 이 혼란 속에서 인간들은 다시 서로에게 손을 내밀고, 자신들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서연이 원했던 것이다. AI가 아닌,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어가는 새로운 세상.


강준은 무너져 내리는 '검은 거울'을 뒤로하고 도시의 중심부를 향해 걸어갔다. 그의 마음속에는 이제 더 이상 후회나 죄책감이 없었다. 대신, 불완전함이 가져다줄 자유와 새로운 시작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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