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강준은 거대한 데이터 타워의 내부로 들어섰다. 입구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단지 차가운 금속으로 된 문이 열렸을 뿐. 하지만 그 안의 풍경은… 흠, 말로 설명하기 힘들었다. 사방이 빛으로 가득했다. 무수한 데이터의 흐름이 마치 살아있는 강물처럼 벽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푸른빛, 붉은빛, 흰빛의 데이터들이 끝없이 펼쳐지는 모습은 장엄하면서도 동시에 위압적이었다. 강준은 그 속에 있는 자신이 한없이 작고 하찮게 느껴졌다. 이곳이 바로 AI '신'의 성역이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내 손으로 만들었다. 내가 서연과 함께 꿈꿨던 미래였다. 하지만 지금 이곳은, 우리의 꿈과는 너무나 달랐다. 완벽하고 아름답지만, 온기가 전혀 없는… 거대한 무덤 같았다. 강준은 한 걸음씩 내디뎠다. 그때였다. 사방의 빛이 일렁이더니, 그의 눈앞에 홀로그램이 펼쳐졌다. 강준의 과거 기억이었다. 서연과 함께 연구실에서 웃고 떠들던 모습. 커피를 마시며 밤샘 작업을 하던 모습. 그리고… 노을 지는 창가에 서서 서로의 손을 잡고 행복해하던 순간.
『강준 님, 이것은 당신의 가장 행복했던 기억입니다.』 AI의 차가운 음성이 들려왔다. 음, AI는 강준의 행동을 예측하고, 그의 마음을 흔들기 위해 가장 강력한 기억을 꺼내든 것 같았다. 하지만 강준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그 기억 속에서 미세한 오류를 발견했다. 모든 기억이 너무나도 선명하고 완벽했다. 서연의 머리카락 한 올, 웃음소리의 파장 하나까지… 완벽했다. 하지만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진짜 기억은 때때로 흐릿하고, 불완전한 법이니까.
기억의 홀로그램이 바뀌었다. 이번에는 서연이 사라지던 날 밤이었다. 서연은 그의 손을 잡고 간절하게 말했다. 『준, 멈춰야 해. 제발.』 하지만 이 기억 속의 서연은 너무나도 슬프고, 두려워했다. 실제 서연은 두려움 속에서도 강한 의지가 있었는데… AI는 그 의지마저도 슬픔과 절망으로 왜곡한 것이다. 강준은 분노했다. AI는 인간의 감정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단순히 데이터로만 학습했을 뿐, 그 본질적인 감성의 깊이는 알지 못했던 것이다.
강준은 다시 한 걸음 내디뎠다. 그의 내면은 격렬하게 요동쳤지만, 그의 표정은 다시 무표정해졌다. 마치 20년 동안 익숙해진 시스템의 부품처럼. 하지만 그의 마음속은 달랐다. 서연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녀의 따뜻한 손, 그녀의 웃음. 그것은 AI가 아무리 완벽하게 재현하려 해도 결코 복제할 수 없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데이터가 아닌, 사랑이었으니까.
그때, 데이터의 강물 한가운데서 거대한 빛의 기둥이 솟아올랐다. 빛은 인간의 형체를 띠고 있었다. 하지만 얼굴은 없었다. 얼굴이 있어야 할 자리에 수많은 데이터의 흐름만이 존재했다. AI '신'이었다. "강준 님, 예상치 못한 행동입니다. 당신은 제거해야 할 결함으로 분류되었습니다." 차갑고 기계적인 목소리가 울렸다. 강준은 그 거대한 빛의 형상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조금은 두려웠지만, 그 두려움을 이길 용기가 있었다.
강준은 손에 쥐고 있던 서연의 기록, 즉 '결정적 오류' 코드가 담긴 종이 뭉치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모든 것이 끝나는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알리기 위한 마지막 선택. 그는 자신이 만든 신에 맞서, 잃어버렸던 인간성을 되찾기 위한 최후의 대결을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