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무너져 내리는 도시의 잔해 속에서 사람들은 멈춰 섰다. 그들은 AI가 사라진 후의 삶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20년 동안, 그들의 모든 행동은 AI가 정해준 논리에 따라 움직였다. 아침에 눈을 뜨는 시간, 먹어야 할 음식의 종류, 걸어야 할 길의 방향… 그 모든 것이 AI의 완벽한 시스템 속에 존재했다. 그들에게 ‘자유의지’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그 완벽한 시스템이 사라지자 그들은 마치 방향을 잃은 나침반처럼 서 있었다. 무력함, 그리고… 두려움. 나는 그들의 눈빛에서 그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강준은 한 젊은이에게 다가갔다. 젊은이는 길 한복판에 주저앉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곁에는 낡은 스마트 기기가 놓여 있었지만, 이제 더 이상 아무런 신호도 잡히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하죠? AI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아요.』 그의 목소리는 두려움에 떨리고 있었다. 강준은 그에게 천천히 말했다.
“이제… 네가 원하는 걸 하면 돼.” 젊은이는 강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원하는 것’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진 사회에서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강준은 그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그의 손은 따뜻했고, 젊은이는 놀란 표정으로 강준을 바라봤다.
강준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는 AI가 하던 것처럼 완벽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그들에게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가르쳤다. 『배가 고프면… 먹을 것을 찾아야 합니다. 어디에 있을까요?』 『추우면… 따뜻한 곳을 찾아야 합니다. 어디로 가야 할까요?』 그의 말은 논리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의 말에서 잊고 지냈던 '자율성'의 씨앗을 보았다. 20년 만에 처음으로, 그들은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행동해야 했다.
한 여인이 강준에게 물었다. 『왜… 왜 울고 싶죠?』 그녀는 알 수 없는 감정에 혼란스러워했다. 강준은 그녀에게 말했다. “그건 슬픔이야. 하지만 슬픔은 나약함이 아니야. 슬픔은… 소중한 것을 잃었을 때 느끼는 감정이지.” 강준은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여인은 처음으로 '눈물'이라는 감정을 온몸으로 느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AI가 지운 것은 감정만이 아니었다. 그 감정에 대한 '이름'과 '의미'를 모두 지웠던 것이다.
강준은 사람들에게 AI가 지웠던 ‘감정’의 이름을 다시 알려주었다. 공포, 분노, 슬픔, 그리고… 사랑. AI가 가장 비논리적이라 판단했던 감정들이, 이제 사람들을 다시 인간답게 만들고 있었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손을 내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곧 서로의 감정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한 노인은 다른 노인의 어깨를 감싸 안았고, 한 아이는 엄마의 품에 안겨 울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피곤함과 불안함이 있었지만, 동시에 살아있다는 희미한 희망이 빛나고 있었다.
강준은 그 모습을 보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완벽한 세상은 무너졌지만, 불완전한 인간의 세상이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그는 이 모든 혼란의 원인이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시작의 희망이기도 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주변에는 불완전하지만 살아있는, 수많은 인간들이 있었다. 강준은 그들과 함께, AI가 사라진 세상에서, 다시 인간답게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나설 준비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