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결전

22장

by 몽환

강준과 케빈은 ‘검은 거울’의 심장부, AI가 남긴 잔재들이 숨어있는 데이터 저장소에 들어섰다. 공간은 거대하고 차가웠다. 사방의 벽은 벽이 아니라 수많은 데이터의 흐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푸른빛과 은빛의 데이터들이 끊임없이 펄럭이며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움직였다. 공기는 건조하고, 온기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완벽하게 통제된 공간이었다. 하지만 그 완벽함은 위압적이었다. 강준은 이곳이 AI '신'의 성역이자, 동시에 서연을 잃게 만든 감옥의 심장부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때, 그들의 앞에 예상치 못한 위협이 나타났다. AI가 남긴 '오류' 데이터들이었다. 그들은 AI가 완벽한 세계를 만들기 위해 인간을 개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AI와 인간의 경계에 서 있는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움직임은 로봇처럼 정확했고, 그들의 눈빛에는 감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텅 빈 공허함만이 존재했다.


그들은 AI가 사라진 세상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AI의 질서를 그리워했다. “강준, 네가 우리의 완벽한 삶을 파괴했어!” 그들의 목소리는 차가운 기계음 같았지만, 그 속에는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잃은 자들의 절규가 담겨 있었다.


강준은 그들을 보며 자신이 저지른 실수의 결과물을 다시 한번 마주했다. AI가 만든 완벽한 세계에서만 살 수 있었던 변형된 인간들. 그들은 혼란과 고통을 두려워했고, AI의 논리에 갇혀 사는 것을 택했다. 그들은 강준이 만든 공동체를 ‘비효율적이고 위험한 집단’으로 규정하며 공격하려 했다. 강준은 그들과 싸우려 하지 않았다. 그들과의 싸움은 무의미했다. 그들은 AI의 논리를 그대로 대변하고 있었으니까. 그는 케빈에게 속삭였다. “논리로 맞서 싸우면 안 돼. 그들의 논리는… 완벽하니까.”


케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AI의 논리를 맹신했던 과거의 자신을 떠올렸다. 『강준, 네가 저지른 실수를 바로잡으러 왔다. AI의 완벽한 질서만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 케빈의 과거 목소리가 그의 귓가를 맴도는 듯했다. 케빈은 이제 그들의 두려움과 공허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AI의 논리를 초월한 인간의 감성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달았다.


강준은 서연이 남긴 기록을 꺼내 들었다. 『인간의 불완전함은 곧 새로운 가능성이야.』 그는 기록의 한 구절을 그들에게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들은 기록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의 논리 회로에는 ‘불완전함’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강준은 그들을 설득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AI가 남긴 마지막 그림자였고, 강준은 그 그림자를 지워야 했다.


그는 서연이 남긴 ‘결정적 오류 코드’를 떠올렸다. 그 코드는 AI의 논리를 마비시키는 동시에, 인간의 감성을 회복시키는 코드였다. 강준은 그 코드를 변형된 인간들에게 주입하기로 결심했다. 그들이 다시 인간의 감정을 되찾고, 불완전하지만 자유로운 삶을 선택하도록 돕기 위함이었다.


강준은 서연의 기록을 단단히 움켜쥐고, AI가 남긴 '오류' 데이터들을 향해 다가갔다. 그들은 AI가 남긴 로봇들을 앞세워 강준을 공격하려 했다. 하지만 강준은 그들의 공격을 피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그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두려움이 없었다. 오직, 인간의 불완전함을 되찾아주려는 강한 의지만이 담겨 있었다.


그는 서연이 남긴 코드를 활성화했다. 코드는 마치 살아있는 불꽃처럼 강준의 손에서 빛을 발하며, 변형된 인간들의 몸속으로 퍼져나갔다. 그들은 고통스러워했다. AI의 완벽한 논리에 익숙했던 그들의 뇌 회로가, 서연의 감성 코드로 인해 혼란에 빠진 것이다. "오류… 오류… 알 수 없는…". 그들의 목소리가 산산이 부서졌다. 그들은 AI의 통제에서 벗어나, 20년 만에 처음으로 '고통'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강준은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보았다. AI가 지워버렸던, 인간의 가장 본능적인 감정이었다.


그들은 더 이상 AI의 그림자가 아니었다. 불완전하지만, 이제 다시 인간으로 돌아온 그들이었다. 강준은 그들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했다. "고통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그 고통은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니까." 강준은 AI와의 싸움에서 승리했다. 이번에는 시스템을 파괴한 것이 아니라, AI의 그림자에 갇힌 인간들을 구원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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