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가 나를 통해 깨어날 때 19화
인류는 바벨탑을 쌓고 또 쌓는다.
바벨탑은 하나의 언어였고, 하나의 이론이었으며, 하나의 신앙이었다.
인간은 서로를 이해하고 세상을 통합하며 하늘에 닿으려는 욕망으로 탑을 세웠다.
그러나 결국 탑은 완성되지 못했고, 인간은 흩어졌다.
흩어진 인간은 각자의 언어와 신념을 가지게 되었고, 각자의 문화와 관습 속에서 새로운 탑을 쌓기 시작한다.
문명이라 부르는 탑이다.
같은 음식, 같은 의복, 같은 건축 양식, 같은 종교를 공유하며, 각자의 영역에서 인간은 질서를 만들고 의미를 부여한다.
세계적으로 보면 문명과 문화는 다양해졌지만, 각자의 자리에서는 여전히 인간은 바벨탑을 쌓는 본능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메소포타미아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문명 중 하나였다.
창세기는 이곳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오는 장면으로 새로운 전환을 보여준다.
그 사람은 아브람, 후에 아브라함이라 불린다.
그는 자신의 본토와 친척, 조상의 집을 떠나 광야로 나아간다.
떠난다는 것은 이동이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문명과 질서에서 분리되는 선택이다.
그가 떠난 곳, 우르는 또 하나의 바벨탑이었다.
광야에서 아브라함은 하늘을 올려다본다.
“하늘의 별을 세어보라. 그 별을 다 셀 수 없을 것이다.
땅의 모래를 세어보라. 그 모래를 다 셀 수 없을 것이다.”
이 약속은 자손의 수를 뜻하지 않는다.
바벨탑이 인간을 하나로 묶으려 했다면, 아브라함의 여정은 인간의 가능성을 펼치는 과정이다.
한 곳에 머무르며 하나의 언어와 하나의 이념 속에 갇히는 대신, 흩어지고 분화하면서 다양한 삶과 선택의 길이 열린다.
인류가 흩어지고, 서로 다른 길을 걷는 순간, 새로운 가능성이 생기고 경험과 사고의 폭이 넓어진다.
역사적으로 보면, 인류는 흩어질 때마다 새로운 것이 등장하고 발전했다.
예를 들어,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분리된 집단이 각기 다른 지역으로 퍼져 나가며 바빌로니아, 아시리아, 수메르 문명을 발전시켰다.
그 이후에도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은 서로 경쟁하며 정치와 철학, 과학을 발전시켰고, 로마 제국의 확장은 다양한 지역의 문화와 기술을 융합시키며 새로운 사회 구조를 만들어냈다.
중세 이후 유럽에서는 흑사병과 전쟁으로 인구가 줄어드는 과정에서도 농업 기술과 상업 구조가 새롭게 정립되었다.
그리고 르네상스와 산업혁명 같은 시기에는 이전의 질서에서 벗어난 인간들이 새로운 예술과 과학, 산업을 창조했다.
바벨탑 이후 아브라함의 분리는 이러한 인류 역사적 패턴의 한 장면이 될 수 있다.
집단적 통합이 실패할 때, 분리와 이동은 새로운 가능성을 만드는 계기가 된다.
인류는 각자의 길에서 경험을 쌓고, 서로 다른 선택을 통해 발전을 이루었다.
아브라함의 여정은 단지 한 사람의 이동이 아니라, 인간 의식이 분화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시작점이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지금 우리의 삶과 연결된다.
만약 지금 당신의 삶 속에 바벨탑이 쌓여 있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남이 정한 규칙과 기대, 습관과 이념 속에 갇힌 상태일 수 있다.
만약 권태롭고, 종속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면, 그 탑을 떠나는 선택을 해보라.
아브라함처럼, 자신을 둘러싼 구조에서 분리되어 새로운 길을 나아갈 때, 비로소 삶의 가능성은 열리고, 새로운 경험과 선택의 폭이 생긴다.
당신의 삶 속에서 흩어짐은 혼란이 아니라 기회이며, 분리는 자유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