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전쟁의 서막
1999년, IMF의 상흔이 아직 가시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대학가에는 구직 공고보다 공공근로 모집이 더 많았고, 취업보다는 '고시' 혹은 '공무원시험'이 유일한 출구처럼 보이던 때였다. 나 역시 마음을 졸이며 한 줄의 희망을 노트에 적던 시절이었다. 당시에는 '취업 정보 카페'도 없고, 유튜브도 없었다. 누군가의 합격 수기 대신 전해 듣는 말 몇 마디가 전부였다. 스펙이란 말도 생소했던 시절, 학점과 어학성적이 유일한 기준처럼 여겨졌고, 자격증 하나만 있어도 '뭔가 준비한 사람'으로 보이던 때였다.
나의 준비도 그저 그 시대의 틀 안에 머물러 있었다. 수도권에 있는 전문대학 세무회계 전공자인 나는 마땅한 취업 루트가 많지는 않았다. 세무사, 회계사 자격증 획득을 하던가 아니면 전공 외 직군을 선택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오전엔 도서관, 오후엔 회계 학원, 그나마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조금이나마 이어가며 매일 구인란을 오려 붙였다. 하루하루 불안했지만, 불안은 곧 살아 있다는 증거였기에 버틸 수 있었다. 가끔은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지금 뭘 준비하고 있는 걸까?
이 질문의 답을 찾기보다는 그냥 잊고 지내는 날이 더 많았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불안 속에서 조용히 무언가 단단해지고 있었다.
내세울만한 스펙에 누구보다 잘난 것도 없었고, 특별히 뛰어난 특기도 없었지만, 다음 두 가지는 내세울 수 있었다. 자기소개서를 매일 포기하지 않고 앉아서, 고민하고, 쓰고, 또다시 시작하는 '끈기'와 누가 이기나 해보자! 는 '승부근성'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취업 여정은, 아직 한 줄의 합격 통보조차 받지 못한 채, 막막한 벽 앞에 서 있던 그 시절에서 출발했다. 안되면 또 하고 상처받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 그리고 그 과정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이 글을 연재하며 다시 확인하고 싶었다.
당시 나는 나 자신을 소개하라는 말이 가장 어렵게 느껴졌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를 써야 하는데, 막상 펜을 들면 머릿속이 하얘지고 했다. 경력도 없고, 특별한 스펙도 없던 나에게 자기소개서는 그저 눈치와 상식으로 채워 넣는 빈칸 같았다. 인터넷에는 '이렇게 쓰면 합격한다'는 매뉴얼이 떠돌았지만, 그 문장들은 어디선가 본 거리의 말일뿐, 내 안의 진심만큼은 담아보려 애썼다. 꾸미기보다는 솔직하게, 드러내기보단 담담하게.
맡은 일에 끝까지 책임지는 성실한 사람입니다.
이 문장은 거의 모든 자기소개서마다 들어갔다. 뻔하지만 거짓은 아니었다. 나의 단점은 뭔가 묻는 항목 앞에서는 오랫동안 읽어보다 결국 '완벽하려는 성격' 같은 모범답안으로 마무리하곤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한두 줄 고쳐 쓸 때마다, 내 안의 낯선 목소리와 마주하게 됐다. '나는 진짜 성실한 사람인가?' '책임진다는 말, 정말 무게를 아는 건가?'
자기소개서는 그렇게, 내 안의 질문을 끌어올리는 작업이었다. 수십 번 고쳐 쓰고, 고쳤던 문장을 다시 지우기도 했다. 하루는 도서관에서, 하루는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책상 앞에 앉아 무언가 대단한 표현을 쓰기보단, 하루를 견디고 살아낸 나를 믿고 쓰고 싶었다. 그렇게 한 장 두 장 써 내려간 종이들 속에는 아직 부족하고, 아직 흔들리지만, '어디서든 버티고 살아남을 준비가 된 사람'의 이야기가 조금씩 쌓이고 있었다.
그 시절, 채용 과정은 지금처럼 투명하지 않았다. 지원서를 내고 나면 합격자에게만 연락이 갔다. 전화 한 통, 등기 우편 한 장. 그것이 곧 합격의 전부였고, 연락이 오지 않는다면 아무 말 없이 탈락이었다. 불합격 메일조차 없는 시대. 대기하다 결국 잊히는 게 탈락의 방식이었다. 그래서 취업 준비생들 사이에는 자연스레 말이 돌았다.
연락이 없으면 탈락이야.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휴대폰을 확인했다. 그 당시 나의 휴대폰은 말 그대로 문자와 전화 밖에 안 되는 그런 폰이었다. 휴대폰으로 인터넷을 한다는 건 상상도 못 하던 일이었다. 학원 수업 중에도, 아르바이트를 하다가도, 도서관에서도 책상 위에 휴대폰을 신줏단지 모시듯 올려둔 채 시선이 자꾸만 그곳에 머물렀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아무런 신호도 없다는 사실 뿐이었다.
그 침묵 속에서 다시 자기소개서를 꺼내 썼다. 오늘은 조금 더 진솔하게, 내일은 좀 더 화려하게. 하지만 결과는 같았다. 반복되는 탈락, 그리고 다시 반복되는 자기 다짐. 어디선가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아니, 적어도 버틸 수 있는 사람으로 준비는 해야 하지 않을까. 그 생각만이 나를 책상 앞에 앉혀 두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마주친 구인공고, 누구나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그 대기업이었다. 그러나 막상 그 기업이 어떤 '인재상'을 원하는 곳인지는 솔직히 잘 몰랐다. 그래도 꼭 한번 붙어 보고 싶었고 내 안에 들끓고 있던 '승부욕'이 표출되던 순간이었다. 자신은 없었지만 "나 같은 인재를 놓치면 평생 후회 할 거다!"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제2장. 면접에서 살아남는 법.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써 내려간 자기소개서. 마침내 찾아온 눈물의 첫 면접, 그 순간을 이야기하려 한다.
긴장과 두려움 속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처음으로 말해야 했던 그날, 대답보다 떨림이 더 많았던 순간이었다. 겉으로는 웃었지만 속으로는 벅차게 흔들렸던 그 시간을 기록하며 그 시절을 다시 떠올려 보려 한다. 나의 첫 직장이자 마지막 직장의 그 순간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