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장 같았던 첫 출근과 신입의 어색함
누구에게나 첫 출근의 기억은 특별하다. 하지만 나의 첫 출근은 '특별'보다는 '혹독'에 가까웠다.
인턴 생활을 마치고 정식 발령을 받은 날이었다. 입사 동기와 함께 정문을 들어서는 발걸음은 기대와 설렘으로 가벼웠다. 하지만 그 감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명절을 앞둔 백화점은 인파로 붐볐고, 상품권 구매 줄은 끝없이 늘어서 있었다. 우리는 사무실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 채 인파 속을 헤매기 시작했다. 몇 번을 물어도 돌아오는 건 “잘 모르겠는데요?”라는 퉁명스러운 대답뿐이었다.
겨우 찾아 들어간 사무실의 문 앞에서 우리를 맞은 건 낯설고 차가운 공기였다. 그곳은 경리 사무실이었다. 점장 바로 다음가는 실세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점포의 금고를 쥐고 있는 핵심 부서였다. 자연스레 직원들 간의 기싸움도 만만치 않은 곳이었다. 그래도 신입사원의 패기로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넸지만, 고개를 들어주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나머지는 날카로운 키보드 소리로만 존재를 알렸고, 몇몇은 노골적으로 따가운 시선을 보냈다.
팀장과의 첫 대면.
“오늘은 그냥 옆에서 잘 보고 배워요.”
그 한마디를 남기고 다시 모니터 속으로 사라지는 뒷모습을 보며, 나는 이곳에서의 시간이 결코 만만치 않을 것임을 직감했다.
업무 분장이 시작되었다. 동기는 현금 관리를, 회계 전공자였던 나는 지출결의 심사 업무를 맡았다. 신입이 하기엔 꽤 버거운 일이었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건 인수인계였다. 업무의 흐름도, 제대로 된 설명도 없었다.
“그냥 해요.”
“다 그렇게 배워왔어요.”
몇 마디가 전부였다. 그 말속에는 ‘전공자라면서 이것도 몰라?’하는 듯한 차가운 뉘앙스가 숨어 있었다. 내가 던지는 질문은 귀찮은 것이 되었고, 돌아오는 설명은 암호 해독에 가까웠다. 무엇보다 두려웠던 건, 그들이 틀린 말을 해도 감히 지적할 수 없는 수직적인 분위기였다. 그 순간 깨달았다. 여긴 ‘배우는 자리’가 아니라 ‘증명해야 하는 자리’라는 것을 말이다.
게다가 누군가는 내가 자신의 자리를 침범했다고 느낀 듯했다. 말 한마디 없었지만, 경계심과 묘한 적대감이 공기 중에 팽팽하게 흘렀다. 매뉴얼이라고는 프린터로 뽑은 계정과목 정리표 한 장이 전부. 마감 시간이 다가오면 단말기 한 대를 놓고 보이지 않는 눈치싸움이 벌어졌다.
신입인 나는 늘 맨 마지막이었고, 모두가 퇴근한 뒤에야 겨우 단말기를 잡을 수 있었다. 그렇게 홀로 남은 사무실에서, 희미한 모니터 불빛에 기대어 몇 번의 밤을 버텨냈다. 알려주지 않으면 밤새서라도 알아낼 거고 결재 올려서 잘못되면 그때는 팀장한테 혼나면서 배울 거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신입사원이라 가능한 패기 아니었을까?
함께 배치된 동기가 현금 입금 처리 중 실수를 했다. 금액이 맞지 않았다. 당시 상품권은 현금으로만 구매할 수 있었기에 오가는 돈의 액수는 상상을 초월했다. 금액이 맞지 않으면 그 차액을 개인이 메꿔야 했다. 그에 대한 책임의 무게 또한 막중했다. 다음날 바로 은행 입금이 되어야 하기에 그 순간, 주위에 있던 선배들의 눈빛이 얼음장처럼 차갑게 날아와 박혔다. 실수는 동기가 했지만,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나 역시 그 차가운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나는 하던 모든 일을 멈추고 묶음 현금을 하나하나 뜯어 세기 시작했다. 수백 다발의 1만 원권과 수표들. 손끝은 떨리고, 마음은 더 심하게 요동쳤다. 얼어붙은 나를 잠자코 지켜보던 선배들이었다. 이윽고 그들이 하나둘씩 다가와 말없이 돈을 세기 시작했다. 숨 막히는 긴장감 속에서 아주 작은 연대감이 피어나는 순간이었다. 결국, 한 현금 묶음 안에 비정액 수표가 섞여 있었던 것을 찾아냈다. 그제야 모두의 얼굴에 안도의 웃음이 번졌다.
그날 밤, 사무실에 남아 있던 팀장은 갑작스레 신입 환영식을 열어주었다. 소박했지만 마음이 담긴 따뜻한 자리였다. 훗날 알게 된 이야기. 신입사원이 오면 일부러 힘든 일을 겪게 해서 어떤 사람인지 지켜보는 그들만의 신고식 같은 거였다고. 그날 말없이 남아 함께 돈을 세던 모습을 선배들도 속으로는 좋게 봤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얼음장 같았던 그날의 기억이 조금은 따스하게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두 번 다시 경험하기 싫었던 기억이다.
축하합니다! 이제 당신은 더 이상 '막내'가 아닙니다.
그래서 뭐가 달라졌냐고요? 일단 모두의 말투가 어색해졌고, 책임감은 갑자기 무거워졌으며, 왠지 모를 외로움이 찾아왔습니다. 그래도 딱 하나 좋은 점. 이젠 대놓고 커피 심부름은 안 시킨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