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장| 첫 배치, 낯선 자리

얼음장 같았던 첫 출근과 신입의 어색함

by 유블리안

누구에게나 첫 출근의 기억은 특별하다. 하지만 나의 첫 출근은 '특별'보다는 '혹독'에 가까웠다.



|Chapter 1. 설렘은 잠깐


인턴 생활을 마치고 정식 발령을 받은 날이었다. 입사 동기와 함께 정문을 들어서는 발걸음은 기대와 설렘으로 가벼웠다. 하지만 그 감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명절을 앞둔 백화점은 인파로 붐볐고, 상품권 구매 줄은 끝없이 늘어서 있었다. 우리는 사무실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 채 인파 속을 헤매기 시작했다. 몇 번을 물어도 돌아오는 건 “잘 모르겠는데요?”라는 퉁명스러운 대답뿐이었다.


​겨우 찾아 들어간 사무실의 문 앞에서 우리를 맞은 건 낯설고 차가운 공기였다. 그곳은 경리 사무실이었다. 점장 바로 다음가는 실세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점포의 금고를 쥐고 있는 핵심 부서였다. 자연스레 직원들 간의 기싸움도 만만치 않은 곳이었다. 그래도 신입사원의 패기로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넸지만, 고개를 들어주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나머지는 날카로운 키보드 소리로만 존재를 알렸고, 몇몇은 노골적으로 따가운 시선을 보냈다.


​팀장과의 첫 대면.


오늘은 그냥 옆에서 잘 보고 배워요.


​그 한마디를 남기고 다시 모니터 속으로 사라지는 뒷모습을 보며, 나는 이곳에서의 시간이 결코 만만치 않을 것임을 직감했다.


|Chapter 2. 가르침과 갑질 사이


업무 분장이 시작되었다. 동기는 현금 관리를, 회계 전공자였던 나는 지출결의 심사 업무를 맡았다. 신입이 하기엔 꽤 버거운 일이었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건 인수인계였다. 업무의 흐름도, 제대로 된 설명도 없었다.


“그냥 해요.”

“다 그렇게 배워왔어요.”


몇 마디가 전부였다. 그 말속에는 ‘전공자라면서 이것도 몰라?’하는 듯한 차가운 뉘앙스가 숨어 있었다. 내가 던지는 질문은 귀찮은 것이 되었고, 돌아오는 설명은 암호 해독에 가까웠다. 무엇보다 두려웠던 건, 그들이 틀린 말을 해도 감히 지적할 수 없는 수직적인 분위기였다. ​그 순간 깨달았다. 여긴 ‘배우는 자리’가 아니라 ‘증명해야 하는 자리’라는 것을 말이다.


​게다가 누군가는 내가 자신의 자리를 침범했다고 느낀 듯했다. 말 한마디 없었지만, 경계심과 묘한 적대감이 공기 중에 팽팽하게 흘렀다. ​매뉴얼이라고는 프린터로 뽑은 계정과목 정리표 한 장이 전부. 마감 시간이 다가오면 단말기 한 대를 놓고 보이지 않는 눈치싸움이 벌어졌다.


신입인 나는 늘 맨 마지막이었고, 모두가 퇴근한 뒤에야 겨우 단말기를 잡을 수 있었다. 그렇게 홀로 남은 사무실에서, 희미한 모니터 불빛에 기대어 몇 번의 밤을 버텨냈다. 알려주지 않으면 밤새서라도 알아낼 거고 결재 올려서 잘못되면 그때는 팀장한테 혼나면서 배울 거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신입사원이라 가능한 패기 아니었을까?


|Chapter 3. 동기의 실수는 나의 얼어붙음


함께 배치된 동기가 현금 입금 처리 중 실수를 했다. 금액이 맞지 않았다. 당시 상품권은 현금으로만 구매할 수 있었기에 오가는 돈의 액수는 상상을 초월했다. 금액이 맞지 않으면 그 차액을 개인이 메꿔야 했다. 그에 대한 책임의 무게 또한 막중했다. 다음날 바로 은행 입금이 되어야 하기에 그 순간, 주위에 있던 선배들의 눈빛이 얼음장처럼 차갑게 날아와 박혔다. 실수는 동기가 했지만,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나 역시 그 차가운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나는 하던 모든 일을 멈추고 묶음 현금을 하나하나 뜯어 세기 시작했다. 수백 다발의 1만 원권과 수표들. 손끝은 떨리고, 마음은 더 심하게 요동쳤다. 얼어붙은 나를 잠자코 지켜보던 선배들이었다. 이윽고 그들이 하나둘씩 다가와 말없이 돈을 세기 시작했다. 숨 막히는 긴장감 속에서 아주 작은 연대감이 피어나는 순간이었다. 결국, 한 현금 묶음 안에 비정액 수표가 섞여 있었던 것을 찾아냈다. 그제야 모두의 얼굴에 안도의 웃음이 번졌다.


그날 밤, 사무실에 남아 있던 팀장은 갑작스레 신입 환영식을 열어주었다. 소박했지만 마음이 담긴 따뜻한 자리였다. 훗날 알게 된 이야기. 신입사원이 오면 일부러 힘든 일을 겪게 해서 어떤 사람인지 지켜보는 그들만의 신고식 같은 거였다고. 그날 말없이 남아 함께 돈을 세던 모습을 선배들도 속으로는 좋게 봤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얼음장 같았던 그날의 기억이 조금은 따스하게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두 번 다시 경험하기 싫었던 기억이다.


|다음 회 예고


축하합니다! 이제 당신은 더 이상 '막내'가 아닙니다.

그래서 뭐가 달라졌냐고요? 일단 모두의 말투가 어색해졌고, 책임감은 갑자기 무거워졌으며, 왠지 모를 외로움이 찾아왔습니다. 그래도 딱 하나 좋은 점. 이젠 대놓고 커피 심부름은 안 시킨다는 것?